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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어머니대회 토론중에서〉근 40년간 2백여만m의 천 생산

2012년 11월 22일 13:05 공화국

자강도 9월방직공장 직포공 박화실녀성

자강도 9월방직공장 직포공 박화실녀성(55살)은 제4차 전국어머니대회에서 경공업부문의 로력혁신자대표로서 토론하였다.

근 40년간 천짜는 직포공으로서 가정보다 공장을 위해, 인민들의 입는문제해결을 위해 헌신해온 그의 토론은 각계층 어머니대표들을 감동시켰다.

자강도 랑림군의 인산고등중학교를 졸업할 당시 박화실녀성은 천짜는 일을 하는것이 리상이였다고 한다.

그는 소원대로 1973년에 9월방직공장의 직포공이 되였다.

이곳 공장은 김일성주석님과 김정일장군님의 현지지도를 여러차례 받았다.

박화실녀성이 공장에 들어온 다음해 11월 김일성주석님께서는 이곳 공장을 현지지도하시였다.

그는 김일성주석님께서 다녀가신 영광의 일터에서 일을 잘해보리라고 굳은 마음을 다졌다.

직포기는 그의 정든 기대였고 아무리 일을 해도 힘든줄도 몰랐으며 성차지 않았다.

일에서 늘 대중의 앞장에 서던 그는 1980년 25살 처녀시절에 조선로동당원의 영예를 지녔다.

그로부터 2년후 그는 뜨락또르공장에서 일하는 로동자와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었다.

시집살림살이를 하면서 시부모와 남편공대를 하고 아이들을 돌보며 천짜는 일을 하자니 잠이 그립고 힘든 때가 많았다고 한다.

박화실녀성은 《그때마다 좀 편안한 직종으로 옮길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입는문제해결을 위해 바치시는 주석님의 로고를 생각하니 직포공을 그만둘수 없었다.》고 한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시기에도 마찬가지였다.

《나라가 어려움을 겪는데 제집 하나 돌보자고 직장을 그만둘수 없었다. 남편도 많이 도와주었다.》

그는 더 많은 직포기를 맡으면 맡을수록 더 많은 천을 짤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기대운동을 벌려 종전의 8대로부터 12대의 기대를 맡아보는 등 선진작업방법을 적극 받아들여 해마다 인민경제계획을 넘쳐 수행하였다.

그는 지난해 1년동안 2년분 천생산과제를 앞당겨 수행하였으며 올해 년간계획도 10월까지 180%로 초과수행하였다.

그가 지금까지 근 40년간 직포공으로서 일하면서 짠 천은 도합 212만여m에 달하며 직포기사이를 오고간 순회길을 다 합치면 38만km가 넘는다.

지금까지 공장에서 400여명의 직포공도 키워낸 박화실녀성은 방직공업부문에서 수십년세월 직포공으로 많은 천을 짠 녀성로동자의 본보기로 되고있다.

박화실녀성은 공장에서 유일한 모범로동자영예상수상자이며 선군시대 공로자이다.

그는 올해 4월 김일성주석님의 탄생 100돐을 맞으며 주석님의 존함이 모셔진 시계표창까지 받았다.

박화실녀성은 《나라의 배려에 비해보면 정말 한일이 적다. 공장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하여 인생의 마무리를 잘하겠다.》고 결의한다.

(평양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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