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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어머니대회 토론중에서〉영예군인의 안해, 12명 대식구의 며느리

2012년 11월 22일 13:03 공화국

량강도 갑산군 읍 주민 조명실녀성

제4차 전국어머니대회의 연단에는 12가정 대식구의 며느리도 올랐다. 량강도 갑산군 읍 주민 조명실녀성(41살)이였다.

량강도 청년과

강원도 원산시의 한 유치원에서 교양원을 하던 조명실녀성은 량강도가 고향인 한 청년을 알게 되였다. 그런데 군사복무중에 있던 그 청년이 불행하게도 다리를 상하게 되였다.

조국보위에 청춘을 서슴없이 내댄 그의 높은 정신세계에 감동된 그는 그와 끝까지 일생을 같이하기로 마음먹고 량강도 갑산군으로 향하였다.

강원도에서 량강도는 수천리나 떨어진 곳으로서 말씨도 사람들의 성격도 달랐다.

《불원천리 찾아온 처녀를 집떠났던 딸처럼 맞아주는 시부모님들의 정에 끌려 혼자 다진 그 결심을 더욱 굳히게 되였다.》

그때까지만도 영예군인청년은 처녀의 진정을 계속 거부하고있었다.

불구의 몸인 자기를 위해 한 처녀의 앞길을 막을수 없다는것이였다.

퇴원하여 집으로 돌아온 청년은 자기 집뜨락에 서있는 처녀를 보며 당장 집을 나가라고 펄쩍 뛰였다고 한다.

얼마후 처녀는 영예군인청년의 안해가 되였다.

궂은일마른일 가림없이

그가 시집온 때는 나라가 고난의 행군을 겪던 때였다.

시집식구는 모두 시형의 가족과 출가안한 시동생, 시누이까지 모두 12명이나 되였는데 식량부족으로 20리나 떨어진곳에 밭을 일구고 농량을 자체해결해야 했다.

농사일을 별로 해본적없는 그였지만 이를 악물고 곡식도 가꾸고 집짐승도 길렀다.

험한 산길에 등짐을 지고 퇴비를 져날랐고 밤늦게까지 김을 매였다.

차츰 가세가 회복되고있는데 시누이와 시동생들이 출가할 나이가 되였다.

맏며느리구실을 해야 하는 그는 시형의 어린 딸도 돌보면서 세간살이들을 장만하여 시누이와 시동생들을 시집장가보내였다.

어느날은 집짐승을 길러본 경험없는 자기가 뜯어온 독풀을 먹고 돼지가 죽어넘어졌고 감자로 짓는 밥의 물을 잘 잡지 못해 죽을 쑨적도 있었다.

시동생과 시누이들의 지청구에 눈물이 솟았다.

《왜 이런 산골에 시집을 왔을가 하고 생각한 적도 없지 않았다.》

집안이 화목해야 모든 일이 잘된다고 외우군 하던 어머니의 이야기를 되새기며 자기를 다잡군 하였다.

웃어른들과 아래사람들을 간격없이 따뜻이 대해주는 그의 마음씨에 시부모들은 물론 시누이와 시동생도 감격하였다.

대식솔을 맡아 누구나 부러워하는 집으로 꾸려가는 그의 진정에 감동된 동네사람들은 그를 두고 《찍어놓은 맏며느리감》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전국어머니대회에 참가하고 토론까지 하고나니 더욱 머리를 들수 없다고 하는 그는 자책하는바가 크다며 이렇게 말한다.

《제집일만 하느라고 애쓴 저에게 차례지는 영예가 송구스럽기만 하다. 한가정의 며느리라면 누구나 해야 할 일이 아니겠는가.》

사회의 세포인 가정이 화목해야 온 나라가 화목해지고 모든 일이 잘된다고 하신 김일성주석님의 가르치심을 명심하고 집에 돌아가면 집식구들에게 대회장에서 보고 듣고 느낀 모든것을 다 이야기해주어 그들모두가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데 앞장서도록 할것이라고 말한다.

(평양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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