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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어머니대회 토론중에서〉난치병 앓는 학생을 친자식처럼

2012년 11월 22일 12:03 공화국

평양제산소학교 함옥숙교원

13일 4.25문화회관에서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2012.11.10)에 따라 아들딸들을 많이 낳아 키우고 자식들을 훌륭히 키워낸 녀성들에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로력영웅칭호를 수여하는 모임이 있었다. 난치병에 걸린 학생들을 스스로 맡아 훌륭히 키워낸 평양제산소학교 함옥숙교원(49살)에게도 로력영웅칭호가 수여되였다.

교육과 치료를 함께

함옥숙교원은 제4차 전국어머니대회(15일)의 연단에서 토론을 하는 영광도 지녔다.

그는 토론에서 량심으로 나라를 받들어야 함을 이야기하였다.

자기가 한 일은 스스로 하고싶어 한 일이였다, 그래서 고생도 별로 힘든줄 몰랐다고 하는 그는 1984년 처녀때부터 교단에서 20여년간을 일해오고있다.

평양시교외의 소학교에서 선배교원들의 조언과 모범을 본받으며 교원으로서의 걸음마를 떼였다.

2009년 어느날 학령아동조사를 나갔던 그는 어느 한 가정에 다리와 손을 쓰지 못하고 언어장애가 있는 녀애가 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그애도 나라의 기둥감으로 자라야 한다고 생각한 그는 주저없이 그애를 자기가 맡을 결심을 하였다.

이듬해 4월 개학날 아침 집으로 찾아온 함옥숙교원이 《공부하러 가자.》고 하는 말에 집식구들과 동네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날부터 함옥숙교원은 매일 아침과 저녁 그애를 업고 다니며 교육은 물론 치료도 도맡아 하였다.

매일 오전과 오후에 수업을 치르고는 유치원을 못다닌 그애에게 우리 말과 글, 셈세기 등을 가르쳤다.

녀학생의 병이 선천적인것이 아님을 알게 된 그는 고려의술을 자습하고 침과 뜸, 수기치료를 하여주면서 짬시간에 약초를 뜯어 보양을 시켰다.

교원의 수고를 고맙게 여기면서도 완쾌될수는 없는것으로 손맥을 놓았던 그 녀학생의 부모들과 친척들도 합세하여 적극적인 치료에 나서 지난 3월 그애는 나서 처음으로 걸음을 떼게 되였다.

온 동네사람들과 학교 교원, 학생들이 떨쳐나 눈물로 그 학생과 함옥숙교원을 축하해주었다고 한다.

영웅의 구실

이후에도 그는 전문병원에 입원한 녀학생을 위해 매일 수십리 밤길을 걸어다니며 미진된 개별수업을 하군 하였다.

그러면서도 담당학급의 모든 학생들이 공부도 잘하고 소년단조직생활도 잘하도록 따뜻이 이끌어주었다.

어느날인가 길을 가던 그는 처녀때 담임하였던 한 졸업생이 중학교 교원으로 일하고있다는 소식을 알게 되였다.

《수업에 빠져 놀음에만 정신팔려있던 철없던 애가 어엿하게 자라 저와 함께 교단에 서있다. 그날의 선생님의 모습을 잊을수 없다고, 선생님이 아니였다면 오늘의 나를 생각할수 없다던 그 말에 교육자의 긍지를 느꼈다.》

언제인가 《로동신문》에 실린 니시도꾜제2초급학교 리정애교장의 소행에 대한 기사를 보고 감동을 금치 못하면서 총련의 교육자들에 비하면 자기들은 복속에서 복을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자책하며 후대교육을 위한 일을 찾아한 그였다.

11일 함옥숙교원은 뻐스를 타고 함께 가던 사람이 보여주는 신문을 보고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그는 신문에 실린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의 구절구절을 눈을 비비며 다시 읽었다.

만장의 축하속에 로력영웅메달을 가슴에 달던 날 아버지의 기대에 보답하였다는 생각과 함께 영웅의 구실을 하자면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는것으로 어깨가 더 무거워졌다고 한다.

깨우쳐주는 교수방법을 더욱 세련시켜 전반적12년제의무교육제가 원만히 시행되도록 하는데서 소학교교원들의 몫도 크다고 하면서 그는 자기의 실력을 부단히 높여 모든 학생들을 최우등생으로 키울 결심을 피력한다.

(평양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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