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와 변호사들〉아이찌, 오사까(6)


2013년부터 일본의 5지역에서 진행된 무상화재판은 작년 7월의 히로시마판결을 끝으로 종결되였다. 변호단에 소속하여 활동한 변호사들의 목소리를 소개한다.

青木有加변호사

소중한 만남을 통해 무상화재판에 참여하는 의의를 간직하였다.

그중 하나가 아이찌변호단의 동료이자 동기인 김명애변호사와의 만남이다.

처음으로 그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그가 조선학교출신이라는것과 조선을 조국이라고 부르는 그의 조국관에 접하였다. 그때까지만 하여도 재일조선인들사이에도 분단이 있다는것은 상상을 못했었고 모두다 똑같은 재일조선인이라는 인상이였기때문에 놀랐다.

내가 변호사로 활동하기 시작한 2015년은 당시 아베정권이 일본을 전쟁을 할수 있는 나라로 만들기 위한 움직임을 로골적으로 드러낸 해이기도 하였다. 어느날 아이찌변호단의 矢崎변호사와 이야기하다가 그것이 화제가 되였는데 《전쟁에 대해서도 일본사람들은 자기들의 가해책임을 전혀 상상하지 못하는것 아닌가.》 하는 위기감을 느꼈다. 그때 동시에 고등학교시기 동창생이였던 어느 재일조선인과 김명애변호사가 떠올랐고 그 사람들이 헤이트스피치 등 비방중상의 표적이 되고있는 현실이 있음을 통감하고 도대체 나는 뭘 하고 있었는가 하고 자신을 돌이켜보았다. 그러면서 이러한 사회상황을 해소하려고 나서는 사람이 있는데 그들처럼 행동하지 않는다면 나자신이 차별에 가담하는것으로 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번 소송에 변호사로 참여하는 과정에 어느새 일본과 조선반도를 둘러싼 전후보상문제도 다루게 되는 등 자신이 당사자로서 무엇이라도 해야겠다는 심정으로 행동하게 되였다. 그리고 나의 활동이 밝은 미래로 이어진다는것을 이러한 만남을 통해 간직할수 있었다.

나는 무상화재판의 변호단에 참여하면서 재일조선인 변호사들에게서 조선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내가 평화와 인권, 평등에 대하여 생각할 때 자연스럽게 그분들에 대하여 생각하게 된다. 조선학교와의 만남이 없었더라면 이런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것이다.

가해의 력사를 마주하는것은 비참하고 무거운 책임이 동반된다. 그래서 그런지 일본사회에서는 이런것들이 잘 공유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이 공유되였을 때 일어나는 변화와 그에 따른 효과는 클것이기때문에 조선학교와 그 관계자들과 친분을 맺은 내가 량자를 잇는 역할을 수행해나가고싶다.

丹羽雅雄변호사

1980년대 후반부터 軍属의 전후보상과 指紋押捺의 거부문제, 재일조선인 고령자들의 無年金문제 등 재일조선인들과 관련된 수많은 재판을 맡아왔다. 오사까의 조선학교와의 만남은 東大阪市가 오사까조선학원에 대해 오사까조고 운동장의 토지를 반환할것을 요구한 소송 (2007년 1월 31일에 시측이 제소, 2009년 11월 20일에 서로간에 화해가 성립)의 학원측 대리인을 맡았을 때다. 이후에 제기된 무상화재판은 《운동장소송》당시와 똑같이 일본의 가해의 력사를 마주한다는 립장에서 망설임없이 맡아나섰다.

그후 변호단 발족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이 재판은 피해당사자가 중심이 되여야 하지만 이와 함께 중요한것은 이번 소송을 법률이라는 좁은 틀에 가두지 말고 국가의 탄압과 억압에 대한 반대여론을 조성하여 투쟁해야 한다는것이였다. 피해당사자와 변호단, 지원자가 삼위일체가 되는것이 이 투쟁의 성격을 좌우하는 핵심문제가 된다고 보았다.

내가 대학생이였던 1970년전후에는 조선고급학생들에 대한 폭력사건, 습격사건이 빈번히 일어나 그들이 무사히 학교를 다닐수 있도록 十条역앞에서 시위투쟁을 해본 경험이 있다. 그 무렵에 나는 明治시대 이후의 일본의 식민지지배나 식민주의의 실태가 어떠했는가에 대해 엿볼수 있었다. 지금은 그것이 헤이트스피치라는 형태로 나타나고있으나 이미 50년전부터 재일조선인에 대한 차별적인 상황이 똑같이 있었다.

이 재판의 본질은 일본사람들이 일본이란 나라의 가해의 력사를 얼마나 똑바로 마주할수 있는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재일조선인들과 조선학교를 둘러싼 상황은 오늘도 식민주의정책을 계속하고있는 일본국가와 사회의 반영이다.

나는 재판에 종사하여 가해의 책임을 마주하겠다는 립장이지만 이것은 나뿐만이 아니라 일본국가와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사람들의 미래에 대한 책임이다. 그런 차원에서 볼 때 무상화재판에서 승소한 오사까의 1심판결의 경험을 살려 운동을 계속 이어가는것이 매우 중요하다. 투쟁을 계속해야만 사회나 정치가 크게 변했을 때 새로운 지평이 열릴것이다.

(정리- 한현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