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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와 변호사들〉규슈, 아이찌(3)

2022년 08월 17일 13:00 민족교육

2013년부터 일본의 5지역에서 진행된 무상화재판은 작년 7월의 히로시마판결을 끝으로 종결되였다. 변호단에 소속하여 활동한 변호사들의 목소리를 소개한다.

김민관변호사

무상화재판에 참여하면서 함께 싸운 변호사들의 존재가 힘의 원천의 하나가 되였다. 이것이 7년간의 재판투쟁을 통해 얻은 가장 중요한 재산이다.

재일동포들에 대한 헤이트스피치는 최근년간 사회적문제로 부각되고있는데 이는 10년, 20년, 30년전의 인터네트 환경이 현재처럼 발달하지 않던 시기에도 존재했던 문제일것이다. 우리 학교가 생겨서 지금까지 일본사회에서 재일조선인자녀들을 위해 운영되는 학교의 지위는 변하지 않았다.

고등학교무상화의 실현을 위해서는 《우리는 지금도 패배하지 않았다》는 마음으로 활동을 계속 벌려나가야 한다. 사법의 판단에 좌지우지되지 않고 신념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번 재판을 통해 우리를 응원해주는 일본사람들이 새로 많이 생겼다. 이 흐름은 재판이 끝난 후에도 계속될것이고 그렇게 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한편으로 앞으로는 동포들이 자신들이 놓여진 립장을 바로 리해하고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 학교에는 사람육성이라는 측면에서 무한한 가능성의 토대가 있다. 동포뿐만 아니라 일본의 지원자들이 학교에 모여드는 리유도 거기에 있지 않을가.

고등학교무상화와 유보무상화의 실현을 요구하여 활동하면서 동시에 동포들을 대상으로 하여 민족교육의 귀중함을 알려나가는 활동도 벌려나갈것이다. 그렇게 하여 무상화재판의 경험을 더 큰 힘으로 바꾸어나가겠다.

배명옥변호사

1심, 2심 그리고 최고재판소에서 패소판결이 내려지는 과정에 재일조선인이 일본사회에서 살아나가는 어려움을 절감하지 않을수 없었다.

특히 우리 학교를 졸업하여 조선학교 학부모로 살아가는 과정에 부닥치게 되는 난관의 크기를 재인식하였다.

재판투쟁을 끝까지 벌렸기에 맺어진 인연이 있고 거기에는 확고한 희망이 있다.

변호사가 되면서 4.24한신교육투쟁에 대해 공부할 기회가 있었다. 학창시절에는 찬란한 력사로만 여겨졌는데 력사서적을 다시한번 읽어보니 당국의 페쇄조치로 인해 일시적이나마 우리 학교가 없어진 시기가 있었음을 새로 알게 되였다.

하지만 4.24를 력사로 배운 세대는 그러한 사실보다는 당시 민족교육을 지키기 위하여 견결히 투쟁한 선대들의 모습을 기억하며 계승하고있다. 이것이 가능한 리유는 선대들의 뜻을 이어 우리가 오늘도 계속 투쟁하고있기때문이다.

이기지 못했다고 하여 주저앉으면 력사속에 패배자로서 각인될것이다. 그러나 선대들은 그러지 않았다. 페쇄된 이후에도 학교를 재건하여 各種学校인가를 획득하며  지금에 이른다. 그러기때문에 당시의 투쟁은 참으로 의의가 있었다고 평가할수 있는것이다.

고등학교무상화투쟁을 비롯한 재일동포들의 인권옹호운동은 그런 문맥을 알고 신심을 가지고 벌려나가야 한다.

(정리- 한현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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