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와 변호사들〉아이찌(5)


2013년부터 일본의 5지역에서 진행된 무상화재판은 작년 7월의 히로시마판결을 끝으로 종결되였다. 변호단에 소속하여 활동한 변호사들의 목소리를 소개한다.

矢崎暁子변호사

사법수습생시절의 담당변호사였던 松原拓郎변호사의 영향으로 고등학교무상화제도와 조선학교를 둘러싼 문제를 알게 되였다. 도꾜변호단의 성원이였던 그는 당시 조선대학교 법률학과의 강사를 맡아하고있어 대학에서 수업이 있으니 함께 가보지 않겠냐고 제안하였다.

그때 나는 《조선대학교가 어떤 곳이지?》하고 뭔지 가슴이 내려앉는것 같았다. 그러나 동시에 《내가 그렇게 느낀것은 왜일가.》 하고 생각하니 내가 《조선》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있다고 자각하게 된것이다. 그것이 너무 충격적이여서 오히려 반드시 가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였다.

조대생들의 론문지도를 돕고있었을 때 그들에게 《왜 변호사가 되고싶은가.》고  동기를 물어본적이 있다. 그들은 《재일동포사회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서슴없이 대답하였다.

《내가 지금까지 아무것도 모르고 살아왔구나.》고 느꼈다. 그후 바로 내가 알면서도 외면했던 사실을 떠올리게 되였다. 고등학교시절 동창생들앞에서 자신의 민족적뿌리에 대해 토로한 재일조선인 동창생이 있었다.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난것이다.

그때로부터 내가 사회적다수자로서 차별에 가담해온데 대한 매듭을 짓고싶다는 생각을 가졌고 변호사가 되면 꼭 변호단에 소속하여 활동할것을 결심하여 오늘에 이른다.

나는 자신의 내면에 있는 차별의식과 편견을 마주함으로써 인간적으로 성장할수 있었고 그저 평등을 말하는것만으로는 뿌리깊게 박힌 편견을 극복할수 없다는것도 배웠다. 여론을 크게 바꾸는것은 쉽지 않지만 내 주변에서부터 바꿀수 있도록 착실히 행동해나가겠다.

中島万里변호사

2012년말 우연히 사법수습을 받기 전의 연수에서 矢崎변호사의 지도를 받았다. 당시 제소하기 전이였던 원고들의 학부모와 변호사들이 모인 자리에 동석하였다. 이것이 내가 처음으로 고등학교무상화문제를 알게 된 계기였다.

변호사등록을 한 직후인 2014년에 변호단에 가입하였는데 담당한 원고들의 생각에 접하는 과정에 자기에게 내재하는 차별성을 깨닫게 되였다.

담당했던 두명의 원고들은 어느날 나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조고생과 일본 高校生을 차별해서는 안되는 리유는 서로가 같은 高校生이기때문이 아니다. 변호사선생님과 우리도 똑같지 않다.》

처음에는 그들의 말에 《아니, 우리는 똑같은 사람이지.》라고 생각했다. 일본학교도 조선학교도 같은 년령대의 아이들이 공부하고 운동도 하면서 즐겁게 학교생활을 보낸다. 그런데 나는 그때 학생들이 말하려는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았다. 두사람이 말하려는것은 더 본질적인 문제가 아닐가-.

그리하여 나는《똑같은 사람이니까 차별해서는 안되는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 다르기때문에 그 다름을 전제로 공정하게 보아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한편 변호단에서 활동하던 시기에 우연히 차별을 당하는 경험도 하였다.

나는 자기에게 내재하는 차별성을 마주할수록 가해력사의 배경을 가진 일본의 사회적다수자임을 망각한 사람들의 언행이 시급히 극복해야 할 과제로 비쳐졌다.

원고들은 여러 장면에서 《모두가 같은 꿈을 꾸며 열심히 배우는 학생들인데 왜 차별할가.》《일본사람들도 응원하고있으니 힘내세요.》 라는 말을 듣고 어색한 느낌을 받았을것이다. 이 사건의 원고는 조선고급학교 졸업생들이였지만 문제의 진정한 당사자는 우리 일본사람들이다.

변호단에서의 경험은 가해와 피해의 당사자들이 함께 모여 피해자의 대리인을 맡는 특수한 상황이였다. 만약 여기에 문제해결의 실마리가 있다면 기탄없이 서로의 생각을 말하는 관계를 만드는것, 이것이 바로 밝은 미래로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피해자들이 직접 이야기하지 않으면 문제가 알려지지 않는 측면이 있는데 우리가 이를 묵인해서는 안된다.

가해력사의 배경을 가지며 일본사회의 다수자인 우리가 진정한 해결을 위한 운동을 견인해나가야 한다.

(정리- 한현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