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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백일홍》 6/권정웅

2023년 08월 10일 09:00 단편소설 백일홍

왜 남들처럼 번화한데서 보람있게 살지 못하고 온 세상을 다 들추어봐도 단 하나밖에 없을 이런 산중의 길목지기를 한단말인가?

남편은 철길에서 사철 살다싶이 하고 자기는 텅 빈 방안만 지키고 앉았어야 한다, 이것이 무슨 락인가? 꿈꾸어오던 행복은 다 어디로 갔단말인가?

그는 눈에 빤히 보이고 손끝에 가칫가칫하는 그 무엇을 잡지 못하고 애타게 헤매는것 같았다.

역장이였던 아버지를 따라 수없이 이사도 했지만, 그래도 가는 곳마다 비록한적하기는 하지만 언제나 자그마한 거리가 있었다. 그래 고중도 순순히 나올수 있었으며 거리생활은 거의 타고난것처럼 느껴졌었다.

한데 일년도 못되는 동안 갑자기 신세가 거꾸로 서는듯하였다.

금녀는 영호의 통학거리를 내걸기는 했지만, 실은 이제 더 물에 뜬 나무잎처럼 정처없이 밀려다니기가 딱 싫어났던것이다.

남편은 야속하게 이쪽 사정을 통 몰라주는듯했다.

광부의 아들이며 포병생활 일곱해, 그리고 선로원생활을 시작한 그는 너무나 생각이 단순하고 조지식한것 같다.

방안에 침묵이 흐른다.

…현우혁은 구들이 뜨거워나서 두세번 자리를 고쳐앉으며 안해의 심정을 그려보고있다.

옆에 누운 이마가 번듯하고 안장코인 영호가 팔을 내저으면서 잠꼬대를 한다.

영호를 보고있노라니 옛일이 물밀듯 떠오른다.

영호 아버지는 전쟁때 이 지점의 선로감시원이였다. 시한탄을 제거하다가 폭발되여 순직하였다. 그러나 현우혁이 호송하던 포탄렬차는 무사히 통과했다. 그뒤 제대되여 선로감시원의 가족을 찾았다. 그리하여 3년만에 폭격에 어머니마저 잃고 초등학원에 가있는 영호를 찾아내고야 말았던것이다.

그뒤 현우혁은 되도록 영호를 제 아버지의 뜻을 이은 믿음직한 철도일군으로 키울 결심을 했다.

(영호의 통학거리를 연장시키고 내가 헐하게 일해서는 안되지.)

이렇게 생각한 현우혁은 모든것을 다 잊어버리려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바람이 분다. 모래알같은 눈이 창문을 후려갈긴다.

《여보 먼저 자오. 난 ×지점을 좀 순회하고 오겠소.》

현우혁은 움쭉 일어나며 모자를 접어든다. 그리고 곁따라 일어서려는 금녀의 어깨를 눌러앉히고 밖으로 나섰다.

눈보라가 얼굴에 뿌려진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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