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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련의 힘〉《푸에블로》호사건, 《조선신보》가 전개한 언론전의 현장

2025년 10월 12일 13:00 총련

《누가 상대이든 조선은 반드시 이긴다》

1968년 1월 23일 조선령해에 불법침입한 미국의 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가 조선인민군 해군에 의하여 나포되였다. 전쟁접경의 상황속에서 11개월에 걸쳐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대결전이 벌어졌다.

신문사가 대결전의 전초선

《1968년은 업무가 계속 밀려와 몹시 바쁜 한해였습니다.》

조선신보사에 입사하여 3년째인 리창구씨(82살)는 편집국 편성부에서 《조선신보》의 지면제작을 맡았다.

《푸에블로》호사건의 첫 보도기사는 1월 25일부 《조선신보》에 실렸다.  27일부는 《미제침략자들은 함부로 날뛰지 말라!》의 표제아래 총련중앙의 성명을 전했다. 당시 《조선신보》는 주 6일(월~토/4페지) 발행되고 일요일은 휴간일이였는데 1월 28일에 림시로 《〈일요일〉호》가 나왔다. 신문 1면에 인민군 해군에 의해 나포된 미군간첩선의 선원들이 두 손을 들고 걸어가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 실렸다.

《푸에블로》호사건의 첫 보도기사가 실린 《조선신보》

《독자들에게 전해야 할 소식이 계속 들어오니 같은 날에 4페지 신문을 두차례 인쇄해 〈제1부〉,〈제2부〉로 발행한적도 있다.》고 리창구씨는 회고한다.

입사 6년째인 한육구씨(81살)의 직장은 공무국 조판부였다.

《그때는 주 6일의 〈조선신보〉 이외에 조국의 주요론설이나 해설글을 실은  8페지 〈다불로이드판 조선신보〉를 수시로 찍어냈고 6월부터는 매주 일요일에 8페지 〈조선주보〉를 발행했어요. 물론 〈조선시보〉(일어), 〈인민조선〉(영어, 프랑스어, 에스빠냐어)의 발행도 있었고 게다가 신보사에서는 〈상공신문〉,〈조선청년〉,〈조선녀성〉을 비롯한 총련의 각 단체 신문도 인쇄했지요. 편집도  바빴겠지만 공장의 분주함은 훨씬 더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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