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련의 힘〉청상회가 그려보인 우리 모두의 앞날, 함께 가는 길
2025년 09월 19일 08:45 총련《유족한 동포사회》와 《꽃봉오리들의 찬란한 미래》
그들이 《30대 청년상공인들을 중심으로 하는 체계정연한 통일적인 조직체》를 새로 내올데 대한 구상을 처음으로 알게 된것은 1995년의 봄에서 초여름의 사이였다. 재일본조선청년상공회(청상회)가 결성되기 수개월전의 일이다.

1995년 9월 6일 재일본조선청년상공회 결성대회가 진행되였다.
30대 동포들의 고민과 갈등
1970년 8월 《재일조선젊은상공인들의 중앙모임》이 열리고 많은 지방과 지역들에서 진취적인 2세 동포들을 중심으로 젊은상공인협의회가 조직된 때로부터 20여년이 지난 시점이였다. 극복해야 할 상황이 있었다. 재력과 열정을 갖춘 상공인들에게 이끌리여 계속 활발하게 활동하는 협의회가 있는 반면 두드러진 활동도 없이 친목회수준에 머물고있는 협의회도 있었다. 또한 많은 경우 각각의 활동이 지방, 지역의 범위에 한정되여 더 큰 틀에서의 발전을 보여주지 못하고있었다.
협의회를 대신할 《통일적인 조직체》를 내올데 대한 구상에 접한 그들의 첫 반응은 제각각이였다.
중앙청상회 초대 간사장을 맡았던 리홍일씨(66살)는 당시 조청중앙 일군, 2대 간사장을 맡았던 리장오씨(65살)는 총련중앙 경제국의 일군이였다.
《총련에 중앙과 본부, 지부, 분회에 이르는 정연한 조직체계가 꾸려져있고 상공회, 조청을 비롯한 계층별 단체가 자리잡고있는 조건에서 30대를 중심으로 한 조직을 새로 내오는것은 쉽지 않음이 분명했다.》(리홍일씨)
《어려운 요구라고 여겨졌지만 조청을 졸업한 30대가 총련의 기존조직들과 거리를 두는 현실을 외면할수 없었다. 》(리장오씨)
중앙청상회 초대 회장을 맡았던 송원진씨(68살)는 당시 도꾜 다이또지역 젊은상공인협의회의 간사장이였다.
《총련분회나 상공회에서 자기 아버지가 사업하고있는 관계로 그 조직에 속해 생활하는것을 꺼리는 30대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이 의지할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야 할 필요성은 느끼고있었다.》(송원진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