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원수님께서 마식령스키장건설장을 또다시 돌아보시였다


김정은원수님께서 마식령스키장건설장을 또다시 돌아보시였다.(조선중앙통신)

김정은원수님께서 마식령스키장건설장을 또다시 돌아보시였다.(조선중앙통신)

2일발 조선중앙통신에 의하면 김정은원수님께서 마식령스키장건설장을 또다시 돌아보시였다.

김정은원수님께서는 산세험한 건설장을 여러차례 찾으시여 공사를 최단기간내에 다그쳐 끝낼수 있는 대책들을 세워주시였다.

원수님께 하루빨리 완공의 보고를 드릴 일념을 안고 산악같이 떨쳐나선 군인건설자들은 세인을 놀래우는 기적과 혁신의 불길을 세차게 지펴올리며 공사성과를 계속 확대해나가고있다.

원수님의 력사적인 호소문과 현지말씀에서 제시된 과업을 결사관철하기 위해 《마식령속도》창조의 숨결을 끊임없이 높여가는 군인건설자들과 돌격대원들의 애국충정의 마음에 떠받들려 마식령전역에서 모든 대상건설이 끝나게 될 날은 하루하루 다가오고있다.

김정은원수님께서 마식령스키장건설장을 또다시 돌아보시였다.(조선중앙통신)

김정은원수님께서 마식령스키장건설장을 또다시 돌아보시였다.(조선중앙통신)

김정은원수님께서는 먼저 특색있게 꾸려지고있는 호텔을 돌아보시였다.

원수님께서는 군인건설자들이 당에서 비준해준 설계의 요구대로 호텔을 산골맛이 나게, 자연환경과 친숙하게 잘 꾸리고있는데 대하여 만족을 표시하시였다.

원수님께서는 천연화강석과 통나무를 배합하여 호텔외벽을 처리한것도 좋고 마감층 베란다도 스키를 형상하여 건설하니 정말 멋있다고, 호텔계단부도 새맛이 나게 형성하였다고 말씀하시였다.

복도와 침실 등 호텔의 모든 요소요소가 산골냄새가 푹푹 난다고, 마치 자연속에 들어온것만 같은 기분이라고 기뻐하시였다.

마식령스키장의 호텔은 대상의 특성과 용도에 맞게 설계하고 시공할데 대한 당의 건축미학사상이 철저히 구현된 흠잡을데없는 건축물, 표본이라고 말씀하시였다.

김정은원수님께서 마식령스키장건설장을 또다시 돌아보시였다.(조선중앙통신)

김정은원수님께서 마식령스키장건설장을 또다시 돌아보시였다.(조선중앙통신)

김정은원수님께서는 초, 중급주로휴식장을 돌아보시였다.

원수님께서는 당의 의도에 맞게 휴식장을 잘 건설하였다고 하시면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체력을 단련할뿐아니라 즐거운 휴식의 한때를 보낼수 있게 스키장의 모든 휴식터들을 손색이 없이 꾸려야 한다고 지시하시였다.

김정은원수님께서는 완공된 여러 스키주로도 기쁨속에 보아주시면서 건설자들이 공법의 요구대로 주로를 잘 닦았으며 푸른 잔디까지 정성껏 심어놓으니 보기 좋다고 말씀하시였다.

지난 10월 15일에 대화봉에 첫눈이 내리였으며 11월 중순부터 눈이 본격적으로 내린다는 보고를 받으신 원수님께서는 마식령스키장이 겨울을 부르고 겨울이 마식령스키장완공을 기다린다고 말씀하시였다.

원수님께서는 당이 구상하고 발기한 마식령스키장건설이 이제는 완공을 눈앞에 두었다고 하시면서 이것은 전적으로 군인건설자들의 공로이며 그들의 영웅적위훈이 낳은 자랑찬 결실이라고 말씀하시였다.

김정은원수님께서 마식령스키장건설장을 또다시 돌아보시였다.(조선중앙통신)

김정은원수님께서 마식령스키장건설장을 또다시 돌아보시였다.(조선중앙통신)

원수님께서는 마식령스키장건설을 군대에 맡기기를 정말 잘하였다고, 인민군대가 거창한 대자연개조사업을 진행하였다고, 《마식령속도》라는 새로운 시대어가 인민군대에 의하여 더욱 빛나게 되였다고 하시면서 이런 군대를 가지고있는것은 당의 긍지이고 자랑이라고 말씀하시였다.

원수님께서는 인민군대가 올해에만도 문수물놀이장과 미림승마구락부건설을 비롯하여 인민을 위해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가, 이제 마식령스키장까지 완공되면 마식령지구에서 인민의 행복의 웃음소리가 더 높이 울리게 될것이다, 현대적인 스키장에서 웃고 떠들 인민들과 청소년들을 생각하면 혁명을 하는 보람을 느끼게 된다고 말씀하시였다.

원수님께서는 건설자들에게 오래오래 손저어주시며 마식령스키장건설에 참가한 전체 건설자들은 모두가 애국자들이라고, 그들이 세운 위훈은 부강조국건설력사에 길이 남을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

통신은 끝으로 김정은원수님께서 마식령스키장을 세상에 둘도 없는 스키장으로 훌륭히 완공하는데서 나서는 과업과 방도들을 가르쳐주시였다고 전하였다.

(조선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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