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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차 《꽃송이》 1등작품〉중3 작문 《피줄보다 더》

2026년 02월 27일 08:00 꽃송이1등작품

니시도꾜제2초중 중3 우다스레네스

《우다스레네스》–이것이 내 이름이다.

이름은 이래도 나는 민족교육을 9년간 받아서 《우리의것》을 배우고 자란 《조선학생》이다.

나의 아버지는 네팔인이고 어머니는 조선사람이다.

나에게 이름을 다신것은 고모인데 내 이름에는 《사랑이 어린 하느님》이라는 뜻이 깃들어있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내가 혹시 네팔에서 자랐으면 어떻게 되여있었을가?)

또 이렇게도 생각해본다.

(아버지, 어머니는 왜 날 조선학교에 보내셨을가?)

나는 조선학교가 정말 좋다.

우리 말과 글, 우리 노래와 력사를 배우는것이 정말 좋다. 특히 우리 말을 할 때 신이 나고 기분이 참 좋다.

그래서 나는 국어시간이 무척 좋고 회화훈련이나 시읊기시험련습에 열중한다. 6학년때는 구연대회에서 《금상》을 탔고 《꽃송이》현상모집에서는 시부문에서 1등을 하였다. 소년단축하단으로 연단에 선적도 있다.

나는 조선력사공부도 꽤나 좋아한다.

선조들이 우리 말과 글, 문화와 전통을 어떻게 지켜오셨는가를 배울 때 선대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가슴속을 꽉 메워서 눈물이 날번 한다.

이렇게나는 9년간 민족교육을 받아서 자랐지만 5살부터 7살까지 아버지의 고향인 《네팔》에서 살았다.

네팔에서의 생활도 즐거웠다. 유치원을 다니던 나는 동무들과 재미나게 놀고 집에 돌아가면 가족과 함께 텔레비죤을 보면서 웃고 맛있는 료리를 먹으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휴일날에는 아버지가 운전하시는 오토바이를 타고 음식점에 가거나 물고기잡이를 하거나 상점에서 옷을 사거나…. 내가 네팔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것은 집에서 보이는 《에베레스트》이다. 내가 살던 《뽀카라》라는데서는 저 멀리에 하얀 눈과 안개로 뒤덮인 《에베레스트》가 보인다. 하늘을 찌르듯이 솟은 모습은 정말 장관이다.

네팔에서 불편없이 살던나는 7살이 되던 해에 일본에 돌아오게 되였다.

네팔에서의 생활과 일본에서의 생활은 많이 달랐다. 그래도 새 생활에 익숙되는데 그리 많은 시간은 걸리지 않았다.

조선학교에 다닌다고 들었을 때는어떤 학교인지 잘몰라서 불안보다는호기심이더컸다.

조선학교에 다니게 되여서 조선말과 글, 조선력사와 문화를 배우니 절로 마음이 뜨끈해지고 절로 피가 끓었다.

(이런 감각은 첨 느껴본다야!)

나로 하여금 《우리》를 알게 해주고 나에게 《조선사람》의 피가 흐른다는것을 인식하게 해주며 우리 《동포》들속에 품어준 《조선학교》는 인차 나의 보금자리가 되였다.

나는 《조선학교》에서 보내는 하루하루가 너무 좋아서 네팔에서 살았던 나날을 어느새 잊은채 15살을 맞이했다.

나는 중급부 3학년이 되였다.

음악시간에 《네팔의 민족음악》에 대하여 조사하게 되였다.

나는 어릴 때 기억이 되살아났다.

나는 집에 가서 어머니에게 왜 나를 《네팔사람》이 아니라 《조선사람》으로 키우셨는지 물어보았다.

어머니는 《네팔에서도 넌 재미나게 지냈어. 그러나 네팔학교를 다니고 네팔어를 쓰는 널 보면서 역시 엄마가 사랑하는 우리 말과 글, 력사를 모르고 자라는데 대한 섭섭함이 있어. 그래서 조선학교에서 조선사람으로 키우고싶다고 생각했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생각이 깊어졌다.

(혹시 내가 계속 네팔에서 살았다면 나는 조선말과 조선의것을 모르는채 살았을것이다. 조선말로 사람들을 웃겨서 《재담》에서 금상을 타는 일도, 자기 경험과 느낌, 주장을 조선말로 지어서 《꽃송이》현상모집에서 1등을 하는 일도 없었을것이다.)

그렇게생각하니나를 《조선학교》에 보내주신 부모님에 대한 감사를 느꼈다.

아버지, 어머니는 나를 《네팔사람》으로 키우는지 《조선사람》으로 키우는지 많이 고민하셨다고 보지만 나는 부모님의 선택과 결정은 옳았다고 진심으로 생각한다.

그림: 김금실

나는 생각한다.

사람이 살아나가는데서 《피줄》도 중요하지만 보다 중요한것은 《어디서 무엇을 배우며 누구들과 어떻게 사는가.》라고 .

내 몸에는 《네팔》과 《조선》의 피가 함께 흐른다. 네팔에서 쓰는 언어와 문화를 배우고 자연속에서 아름다운 경치를 보며 재미나게 논 시간도 나에게는 소중했다.

그러나 나는 지금 조선학교에서 조선말과 글, 조선의 력사를 똑똑히 배우고 우리 동무들과 지내며 우리 동포들속에서 자라는 이 시간이 너무도 소중하다.

《피줄》과 《국적》도 중요하다. 그러나 지금은 나처럼 《피줄》과 《국적》이 섞인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이 더 중요하게 제기된다.

《나는 누구인가?》는 이제 《피줄》과 《국적》만을 의미하는것이 아니라 《어디서 무엇을 배우며 누구들과 함께 지내고 누구들을 위해서 사는가.》에 의해 정해진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앞으로도 조선학교에서 우리 말과 글, 우리 문화와 력사를 더잘 배워서 우리 동무들과 함께 우리 학교와 우리 동포사회를 더 아름답게 꾸려나가기 위해 배우고 또 배울테다!

그렇다! 나는 《조선사람》이다!

《조선학생 우다스레네스》이다!

기쁨의 목소리

나는 우리 말과 우리 글이 무척 좋아서 열심히 배우는데 중급부 마지막 현상모집에서 1등을 했다고 들어서 너무 기뻐 하늘을 날을것만 같았습니다. 《조선》과 《네팔》의 량쪽 피줄을 이은 내가 왜 자기를 《조선사람》이라고 가슴펴고 말할수 있는가를 많은 사람에게 전하고싶었습니다. 이 글을 읽어서 조선학교에서 배우는 뜻, 조선사람으로 사는 뜻을 생각해주면 참 기쁩니다.

〈단평〉어디서 어떻게 사는가가 《나》를 만든다

이 글은 《아버지는 네팔사람, 어머니는 조선사람,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으로 독자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는다. 필자는 네팔에서의 생활을 소중히 여기면서도 우리 학교에서 우리 말과 글, 우리 력사를 배우며 동무들과 동포들속에서 자라온 시간이 자신을 키운 뿌리임을 분명히 한다.

《정체성》이란 피줄이나 국적만으로 정해지는것이 아니라 어디서 무엇을 배우며 누구들과 함께 지내고 누구들을 위해서 사는가에 의해 형성된다는 필자의 해명은 깊은 울림을 준다. 한 학생을 《조선사람》으로 키워낸 우리 학교의 힘과 가능성을 새삼스레 느끼게 하는 인상깊은 글이다. (복)

(조선신보)

제48차 《꽃송이》 1등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