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음악예술의 오늘〉국립민족예술단 (하)
2012년 08월 24일 15:17 문화・력사최승희 춤가락을 현대적미감으로
고전의 재조명, 조선무용의 전통계승
창립이래 65년동안 조선민족의 유구한 문화예술의 전통을 최전선에서 굳건히 지켜온 국립민족예술단은 작년 11월 무용가 최승희가 창작한 민족무용극《사도성의 이야기》를 반세기만에 재형상하였다. 고전작품의 재조명은 단순한 과거회귀가 아니라 오늘의 예술적미감을 추구하는 방향에서 이루어졌다.
반세기만에 상연
조국해방전부터 《조선의 무희》로서 세계를 무대로 활약한 최승희는 현대조선민족무용의 기초를 마련하고 그 춤체를 완성시킨 인물이다. 그는 해방전 조선에서 무용가동맹 위원장, 국립민족무용극장 총장 등의 중책을 지니며 활동하였으나 인생의 우여곡절도 겪었다. 60년대 이후 오래동안 그의 예술은 각광을 받지 못하였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작년에 1969년에 세상을 떠난 최승희의 유해를 애국렬사릉에 안치하도록 조치를 취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조선무용의 전통을 계속 고수발전시키기 위해 최승희의 춤체를 살려나갈데 대해여 여러차례에 걸쳐 강조하시였다.
그러면서 장군님께서는 2008년 4월 3일 국립민족예술단이 민족무용극 《사도성의 이야기》를 재형상할데 대한 과업을 제시하시였다. 그때로부터 3년을 거쳐서 완성된 《사도성의 이야기》는 최승희의 생일(1911년 11월 24일) 100돐이 되는 해인 2011년 11월 26일 평양대극장에서 약 반세기만에 상연되였다.
《사도성의 이야기》의 주된 등장인물은 사도성 성주의 딸인 금이와 군졸인 순지 그리고 성주의 신임을 받는 아한이다. 순지와 금이의 사랑이 깊어가는데 질투를 느낀 아한은 달밤에 거니는 그들을 보고 성주에게 일러바치자 성주는 순지를 파직시켜 고향마을로 내려보내게 한다. 그 직후에 왜적이 쳐들어온다. 성주는 아한을 선봉장으로 내세웠으나 그의 변절로 관군은 패하게 된다. 금이는 출전을 각오하고 아버지앞에 나라를 지킬 맹세를 다진다. 백병전을 벌리던 금이는 고향에서 마을사람들을 의로운 싸움에 불러일으킨 순지의 도움으로 적을 물리치고 승전하게 된다. 나라를 위한 싸움에서 공을 세운 금이와 순지가 고향마을사람들과 군사들, 성주의 축복을 받는다.
현대적미감에 맞게 형상
민족예술단의 창작가들은 최승희의 작품을 그저 재현한것은 아니다.
창작가들은 고전작품을 재형상한다는것이 쉬운 작업이 아니였다고 회고한다. 50년대 《사도성의 이야기》에서 음악은 소피리, 아쟁 등 고전악기를 쓴 《옛날식 선률》이였다. 춤가락 또한 활기가 없었다. 당대의 예술작품으로서는 그것들이 훌륭한 요소이기는 하여도 오늘의 인민들이 좋아하고 그 내용을 쉽게 리해할수 있도록 하자면 21세기의 창작가들의 색다른 취향을 돋울 필요가 있었다.
민족예술단의 창작가들은 작품에 담겨진 민족적인 맛을 살리면서도 현대적인 선률이 작품에 관통되도록 음악을 연주하는 악단을 개량된 민족악기와 양악기로 구성한 배합관현악형식으로 바꾸었다. 무용은 최승희의 춤체를 그대로 살리는것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현대적미감에 맞게 참신하게 개작하였다.
《사도성의 이야기》를 재형상할데 대하여 과업을 제시하신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극장문제, 배우들의 의상과 관련한 문제, 음악형상에서 제기되는 여러가지 애로들을 풀어주시고 창작, 형상을 더 잘할수 있게 관심을 돌려주시였다. 국립민족예술단 정원철부단장(50살)은 《낮밤 가림없이 련습하다나니 단원들이 정신, 육체적으로 힘들었지만 장군님께서 주신 과업이니까 반드시 수행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전체 단원들이 한사람같이 달라붙었다.》고 당시를 회고한다.
반세기만에 무대우에 펼쳐진 《사도성의 이야기》를 보고 관객들은 《원작의 내용을 충실히 형상하면서 최승희를 알지 못한 세대들에게도 큰 감동을 주었다.》고 감탄하였으며 공연장에서는 그칠줄 모르는 박수소리가 울려퍼졌다.
지금 국립민족예술단은 《사도성의 이야기》재형상을 보다 완성하여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있다. 고전작품의 재형상작업은 예술단의 실력을 한층 제고하는 중요한 공정으로도 되고있다고 한다.
(윤리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