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고】《조선신보》 창간 80돐을 축하합니다/배학태
2025년 12월 15일 14:50 동포생활올해는 《조선신보》가 창간되여 80돐을 맞는 해인것 같다.
그렇다면 해방이 되자마자 바로 창간이 되였었다는데 놀라운 일이라 본다.
그때 당시 일본사회는 물론이고 동포사회는 대혼란에 빠져 혼잡했을것이다.
하루끼니마저 채우기가 어려워 모두들 배 고파 굶고있었던 시기였을것이다.
하지만 민족애에 불탄 지식있는 선대분들은 들고 나섰다.
인재문제, 자금문제, 애독자 확보와 배포체계 확립 등등 풀어야 할 문제들이 너무나 많했을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러한 난관을 하나씩 풀고 짧시에 창간했다.
이야말로 대단한 일이다.
창간시 참여하여 힘써오신 선대분들은 배고파 하면서 밤낮 가림없시 힘섰을것이다.
그들의 로고와 지혜로운 열정에 감탄을 금할수 없으며 그저 머리수겨 감사할뿐이다.
《해방신문》부터 시작하여 총련결성 이후 《조선신보》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80년에 이르는 오늘 여태까지 수많은 애국열성동포들이 《조선신보》를 지키기 위하여 쉬임없는 노력과 고생, 희생들을 해 왔을것이다.
비오는날, 눈오는날, 그리고 무도운 날, 지치고 고달픈 날, 모든 애로를 무릅쓰고 하루와 같이 저희들에게 신보지면을 갖다 주었다.
특히 신보배포원들은 애국지성의 마음으로 로임없이 배달해주었으며 제가 아는 어떤분은 생의 끝까지 배달원으로 봉사해주었다.
그들이야말로 소박하고 평범한 숨은 애국영웅이라고 할수있지 않을까 본다.
애독자의 한사람으로서 저는 《조선신보》 창간 80돐을 마음속으로 뜨거히 축하한다.
돌이켜보니 《조선신보》는 저의 한생에 있어서 길동무였고 정신적 지주였다.
《조선신보》를 애독하게 된 계기는 14살 중급부 3학년 때 담임선생님께서 《조선신보를 읽어보지 않겠느냐.》고 궈유를 하셨는데 저는 쾌히 승락하였다.
그때로부터 오늘에 이루는 62년간 쉬임없이 구독하여 왔다.
중급부, 고급부의 학생시절 일본 《아사히신문》 조간을 배달하면서 그 로임으로 신보지대를 납입하여왔다.
《조선신보》는 저에게 있어서는 지식을 윤택하게 해주는 스승이였고 옳고 그른 판단의 기준치이다.
일본의 신문보도의 많은 정보들은 그 대부분들이 미국을 따르고 조선을 식민지로 한 과거사를 잃고 우리를 무시하듯 나쁘게만 몰아치는 조선인차별의 보도들이다.
공화국에 대해서는 무조건 나쁘게만 보도하고 남조선의 민주화와 통일을 원하는 국민들의 실황에 대해서도 편향적 보도를 한다.
심지어 날조와 허위 보도도 서슴없이 할때가 있다.
일본사람들은 물론이고 일부 동포들도 이 같은 허튼 보도에 흔들거리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저는 정확히 사태를 파악할수 있었고 문제의 본질을 볼수가 있었다.
그래서 오늘까지 흔들림없이 쯕 바로 살아올수 있었다.
《조선신보》는 저에게 정화한 지름길을 아리켜주는 고마운 지면이다.
지면을 살펴보니 흥미로운 글들이 많이 실려있다.
ㄱ사 이야기, 우리 말 우리 글에 관한 이야기, 예술체육과 취미에 과한 이야기 등등 즐겁고 재미나는 기사들을 다양하게 실어주고있다.
특히 지방의 동포생활, 동포동네의 기사는 저의 흥미거리이다.
친하게 지내던 동포, 구면이 있는 동포가 지면에 실렸을 때 얼마나 바나운지 절로 가슴 흐뭇해졌고 그들의 심정이자 곧 바로 내 심정이라는 마음이 솟구치는것이다.
요즘 세상 인터네트와 선전화로 새로운 정보를 얻기는 편리한 세상이지만 《조선신보》기사에는 그와 별다른 정감 있고 깊이가 있는것 같다.
저는 올해 나이 75세가 되였다.
후기 고령자이다.
앞으로 몇년을 더 《조선신보》를 구독할수 있을지 궁금히 생각하는 나이가 되였다.
하지만 조금 만치라도 글말을 볼수 있다면 끝까지 애독자를 계속 할것이다.
신보사 여러 분들은 이 같은 애독자가 히로시마에 있다는걸 아시고 더더욱 분투하고 힘 써주기를 바란다.
창간 80돐이란 력사를 깊이 간직하고 자랑 삼아 재일동포들의 필기수로서 긍지 높이 사업해주기 바란다.
모든 《조선신보》 관계자 여러분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를 보낸다.
(히로시마현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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