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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가극단오끼나와공연〉30년만의 상봉/ 인연이 또 다른 인연을 불러

2025년 02월 06일 13:55 문화・력사

노래《도라지의 꽃》에 담긴 사연

47년만에 진행된 금강산가극단의 오끼나와공연. 공연이 끝난 후 회장밖에서는 공연에 대한 감상을 서로 이야기하는 관객들속에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있었다. 가극단의 김정수단장, 리영수단원, 오끼나와출신가수 海勢頭豊씨이다.

약 30년만에 상봉한 김정수단장, 海勢頭豊씨, 리영수단원

이들의 인연은 약 30년전, 노래《도라지의 꽃》으로 맺어졌으며 이날은 그 이래의 만남이였다.

노래《도라지의 꽃》은 1994년에 海勢頭씨가 작사작곡하였다. 1977년 조선반도출신 녀성들가운데 오끼나와에서 처음으로 일본군성노예제피해를 고발한 배봉기할머니의 진혼가(鎮魂歌)이다.

《배봉기씨가 조선사람이기에 그의 마음을 조선말로 표현하는게 좋겠다고, 자기가 쓴 가사를 조선말로 번역해주지 않겠는가고 海勢頭씨에게서 의뢰를 받았다. 그후 가사에 담겨진 뜻을 생각하면서 조선말의 가사를 지었다.》

김정수단장은 海勢頭씨와의 첫 만남을 이렇게 상기한다. 두사람이 만난 자리에 리영수단원도 함께 있었다.

원곡가사와 조선말가사로 《도라지의 꽃》을 부른 리영수단원의 무대는 이번 오끼나와공연에서 가장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반향이 컸다.

그런데 이 노래에는 또 다른 사연이 깃들어있다. 시기로 말하면 1991년, 배봉기할머니가 77살 나이로 생을 마감한 직후로 거슬러올라간다.

海勢頭씨는 말한다.

《배봉기씨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김수섭씨(이전 총련 오끼나와현본부위원장)한테서 듣고 유골이 안치된 절을 찾았다. 거기서 김수섭씨와 김현옥씨 등 할머니와 가까이 지낸분들을 만났는데 그들이 진혼가를 지어주지 않겠는가고 하여 내가 제작하게 되였다.》

그후 그가 출연하는 공연장에 찾아온 정대협 초대공동대표인 윤정옥씨가 일본군성노예제피해자들을 《도라지의 꽃》이라고 표현한 사실, 또한 당시 그의 안해가 도라지를 심어 화분을 가꾸고있었다는 우연이 겹쳐 《도라지의 꽃》이라는 제목으로 배봉기할머니의 진혼가를 짓기 시작했다. 그리고 94년에 완성된 노래는 여러곳에서 불리워 널리 알려지게 되였다.

리영수단원이 출연한 남성독창《도라지의 꽃》

海勢頭씨가 활동을 이어가던 어느날이였다. 김정수단장의 제자가 그가 부르는 《도라지의 꽃》을 듣게 된다. 감명을 받은 그 제자가 리영수단원에게 《이 노래를 부르면 어떻습니까.》라고 권유하였다. 그후 세사람이 함께 하는 자리가 마련되고 조선말가사 총 3절이 지어졌다. 인연이 또 다른 인연을 불러 낳은 기적이였다.

그들이 상봉한 공연당일, 곁에서 보는 관계자들도 절로 미소를 지을만큼 세사람의 얼굴마다에는 설렘이 가득차있었다.

김정수단장은 말한다.

《몇십년만의 상봉도 작품이 있어 가능했다. 작품의 인연이지요.》

이처럼 의의깊은 노래를 요청해준 공연실행위원들에게 사의를 표시한 리영수단원은 《노래와 선률, 특히 우리 동포들이 기쁠 때, 슬플 때, 억울할 때마다 쓰는 감동사〈아이고〉가 들어간 가사를 부를 때마다 눈물이 나온다.》고 말한다. 이 가사가 오끼나와의 현황을 상기시켜 현지 사람들속에서 공감을 불러일으킨것이 아닐가고 말하는 그는 《재일조선인2세인 내가 느낄수 있는 여러 감정을 앞으로도 노래를 통해 전해나가며 3,4세들에게 우리의 넋을 이어가겠다.》고 말하였다.

(글-한현주, 강철성, 사진-로금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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