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4차 《꽃송이》 1등작품〉중3 작문 《이어갈 새 학교문패》


이꼬마산발이 바라보이는 하나조노에 우뚝 솟은 우리 학교!

올해 봄 드디여 새 학교문패가 걸렸습니다.

《오사까조선중고급학교》

《야!내 학교이름이야.》

나는 기뻐서 동무들과 큰소리로 불러보기도 하고 기념사진도 찍었습니다.

(나도 이제는 우리 학교의 중급부 맏이야!)라고 생각하니 긴장되였습니다.

그러나 그때만 해도 학교문패앞에서 사진 찍는것이 행복한 일인줄은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작년 뜻밖에도 앞이 안 보이는 공포와 어둠속에서 지내던 우리들이였지만 화면너머에서 느껴진 우리 학교에서 배우는 나날의 귀중함을 직접 체험하여 중3으로 진급했습니다.그러니 새 학기부터 우리 학교를 위해 무슨 일이라도 하고싶다는 마음이 컸습니다.그러던 때 《우리 학교의 귀중함을 더 알기 위해 우리 학교 새 력사발굴프로젝트를 계획하자》는 의견이 우리 학년에서 나왔습니다.

모두 아무 망설임도 없이 찬성하여 인차 학년을 분조로 정하고 인터뷰내용을 작성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여러 분조마다에서 주고받는 의견은 가지각색이였습니다.

《방방곡곡에 있는 우리 학교 선생님들과 원격으로 그 지역마다 지켜온 학교의 력사를 인터뷰하지 않겠니?》라는 말에 모두들 《전국의 우리 학교?》 하고 비명을 올렸습니다.그러나 그날부터 우리 학교를 거점으로 혹가이도로부터 규슈에 이르기까지 범위를 넓혀 우리 학교와 인연이 있는 학교들을 뽑았습니다.《그렇지! 우리 학교 전 교장선생님께서 사업하고계시는 시고꾸학교는 어때?》

그림: 성명숙(학우서방)

《우리 학교를 졸업하고 교원으로 사업하시는 교또학교 선생님의 인터뷰를 통해 교또학교가 걸어온 력사를 발굴해보자!》

우리들은 정보수집과 선생님들의 이야기도 들으면서 관계를 귀중히 여기면서 넓혀나갔습니다.그때 갑자기 《우리가 다니던 정든 모교는 꼭 해야지!》라고 한 동무의 목소리에 모두 《하하하》 하고 웃음도 터졌습니다.

시고꾸학교,가나가와학교,교또학교,도호꾸학교,각 초급학교들 12교가 넘었습니다.그러나 결코 쉽게 정해진것은 아니였습니다.

의견을 나누다가 동무들속에서는 학교도 잘 모르고 선생님들의 얼굴도 잘 모르는데 이야기를 듣고 알수 있을가 하는 걱정이 앞서기도 하였지만 우리가 한번 하자고 한 일이니 다같이 해자고 격려하였습니다.

우리 조는 교또조선중고급학교를 인터뷰하기로 되였는데 중급부 3학년 담임선생님과 이야기를 하게 되였습니다.

나는 (잘 될가?) 하고 긴장과 불안이 가득찼습니다.

자기 학교외 선생님을 만날 기회가 그리 없었기때문입니다.

조동무들의 의견교환은 끝이 없었는데 어느 동무가 《교또중고는 어디에 있어?》라고 물었습니다.

순간 지리적위치도 확실히 모르는 자신들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우리 학교인데 얼마나 무관심하니?)

알기는커녕 관심조차도 못 가진 자기들이 부끄럽기도 하여 더 잘해보자고 조동무들은 준비에 달라붙었습니다.

질문내용이 정해진 우리들은 말하기련습을 하였습니다.

우리 교실에서는 여기저기에 조별동무들이 모여앉아 《안녕하십니까? 학교연혁을 물어보아도 됩니까?》 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륜창이라도 하듯이 일제히 인터뷰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드디여 인터뷰의 날.우리들은 조동무들과 긴장하면서 텔레비화면앞에 모여앉아 학교의 력사와 지역동포들의 학교지원사업에 대하여 또한 학교에서 창조되고있는 특출한 성과들을 인터뷰하였습니다.내가 인터뷰한 교또중고 중3 담임선생님에게서 우리 말에 대한 생각을 들었을 때 나의 우리 말에 대한 관점이 크게 변했습니다.

《가정생활이 어려워 공립대학에 진학했는데 내가 배운 교육내용중에서 가장 달랐던것은 우리 민족에 대한 력사였어요.우리 학교에서 배운 력사와 너무도 달라서 력사에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공부하였어요.그때로부터 써야 하니까 쓰는 우리 말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재산으로 말과 글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였어요.》라고 하시면서 우리 말을 지키는것이 우리 학교의 력사라고 힘주어 말씀하셨습니다.

전국에서 들려오는 인터뷰의 목소리!

전국에서 처음으로 유치반무상화를 실시하여 오늘까지 75돐의 력사를 새겨온 히가시오사까초급학교.지금도 낡은 목조교사이지만 동포들의 열성이 지극하고 일본사람들의 지원사업이 뜨거운 죠호꾸학교,복식수업을 하면서 학교를 지키기 위해 달마다 어머니회 음식주문배달도 꼭꼭 진행하고있는 후꾸시마학교 어머니회자랑,비록 초중학생이 6명이지만 친형제학교로 명성을 떨치는 시고꾸학교의 모범.전국 여러 지역에서 학교를 지켜갈 사명감으로 창조하고있는 학교소식들을 통하여 우리는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이처럼 방방곡곡에 민족교육의 뿌리가 뻗어 그 우에 우리 학교가 덩실하게 일떠서고있는것이구나!

비좁은 울타리너머에서 우리 학교를 보던 나는 70년의 민족교육의 력사와 우리 아버지,어머니,동포들의 열성을 가슴뿌듯이 느끼게 되였으며 가슴속에 조선학생된 자부심과 긍지가 차넘쳤습니다.

또한 우리 학교의 존재의 귀중함과 고마움을 간직할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인터뷰한 내용을 벽보에 써나갔습니다.우리 학교가 하나조노에 세워진지 지금으로부터 약 70년전인 1952년.

동포들의 생활이 가장 어려웠던 그 시기에 먼저 세워진 우리 학교, 학교를 사랑하는 운동에 힘을 기울여온 우리 학교의 력사와 로정을 말해주는 학교정문에는 지명이 씌여진 학교문패가 달려있었습니다.

며칠간에 걸쳐 벽보를 쓰느라니 4월달에 진행한 4.24의 학습내용이 머리속에 떠올랐습니다. 할아버지,할머니들이 조선학교를 빼앗겨서는 안된다고 끝까지 문패를 넘기지 않았던것이구나.

나는 자료학습을 통해서 4.24교육투쟁정신을 이어서 선대들이 학교문패를 계속 지켜주셨기에 통합된 오늘날에도 새 문패를 달수 있다고 생각하니 행복감과 그 무게를 새삼스레 느끼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나는 마음속으로 웨쳤습니다.

(자기가 이루고싶은 꿈을 향하여 그림을 잘 그리면 화가의 길을,춤을 좋아하면 자기 실력이 꽃피는 길로 나아가는것이 진로가 아니다. 우리 학교를 지키기 위해,자기 희망을 실현하고 자기가 할수 있는 일을 택하는것이 바로 우리의 진로이다!)

나는 완성된 벽보를 가지고 조동무들과 우리 학교 새 문패 앞에서 찰칵 사진을 찍었습니다. 우리 학교를 빛내여갈 새 마음을 안고!

기븜의 목소리

이번 꽃송이현상모집에서  내가 쓴 작품이 1등으로 평가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기뻐서 날아갈것만 같았습니다.

우리 학교의 력사를 발굴하는 과정에 민족교육의 뿌리가 깊다는것을 배웠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이어가야 한다는 한마음으로 글을 다듬고 또 다듬어서 끝내 완성해낸 작품입니다.

1등의 영예를 보물로 간직하고 글쓰는 능력을 계속 키워나가겠습니다.

〈단평〉학생들의 정력적인 활동모습 생생하게 그려져

코로나재앙은 필자에게 우리 학교에서 배우는 일상의 귀중함을 실감하게 하였다. 그런 속에서 시작된 《우리 학교 새 력사발굴프로젝트》! 일본각지에서 분투하시는 선생님들에 대한 원격인터뷰를 통하여 우리 학교의 력사를 《발굴》해나가는 학생들의 긴장과 흥분, 정력적인 활동모습이 잘 안겨온다. 선대들의 투쟁정신을 이어 우리 학교를 지켜나갈 결심을 안고 새 문패앞에서 찰칵!  성장한 필자의 모습이 눈부시다. (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