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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년 귀국자》와 오무라수용소

제1차 귀국선이 니이기따따를 출항하기 전에 조선민주주의공화국에 귀국한 재일조선인들이 있었다. 1955년 9월 총련은 일본정부 및 일본적십자사와의 첫 공식접촉에서 재일조선인귀국문제에…

전전이 없이 중단된 국교정상화회담

조일국교정상화회담은 1991년부터 2002년 10월까지 12번에 걸쳐 진행되였다. 일본의 과거청산문제와 관련하여 조선측은 1차 회담에서 일본국 및 정부최고책임자의 공식사죄를 요구하…

새 질서에 관한 구상과 목표

조일쌍방은 평양선언에서 《동북아시아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강화하기 위하여 호상 협력해나갈것을 확인》하였다. (4항) 조선은 자주의 원칙에 기초한 외교로선을 견지하여왔으나 대미관계…

친일파와 일제잔재의 청산

해방후 조선의 북반부에서는 친일파숙청과 일제잔재청산이라는 민족사적과제가 철저히 수행되였다. 

미국이 날조한 《테로관여설》

《적군파》의 일부 성원들은 80-90년대에 조선을 출국하여 일본이나 외국에서 구속되여 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형기만료로 출소한 성원이 있고 옥사한 성원도 있다. 이들에게는 비…

북남-조일, 새 질서형성의 두 수레바퀴

랭전의 상징인 베를린장벽이 허물어지기 전부터 북남조선의 민족대화가 추진되고있었다. 1988년 11월 북은 핵무기를 포함한 주남조선미군의 철수와 북남의 군축, 북과 남, 미국이 참가…

령도자의 서한, 동포들의 조국애

김일성주석님께서 1946년 12월 13일에 보내신 서한 《재일 100만 동포들에게》는 힘차고 명쾌한 문체로 조국과 재일조선인의 뉴대를 강조하고있다. 서한은 조국해방의 이듬해에 보내…

민족교육권을 위한 투쟁과 련대

재일조선인운동의 년대기는 일본의 차별정책과 탄압책동속에서도 민족적권리를 사수한 투쟁들로 수놓아져있다. 특히 민족교육의 권리를 지키는 투쟁에서 재일조선인들은 불굴의 의지를 과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