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고】박승남선생을 추모하여/황판곤
2026년 02월 05일 14:21 기고2026년 새해가 밝았으나 희망과 기대만은 아니였다. 슬픔으로 높뛰는 가슴은 조용히 가라앉았다.
스무살을 맞는 졸업생들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존경하던 박승남선생이 이미 우리 곁을 떠나셨다는 소식이 전해졌기때문이다.
선생은 지난해 10월, 예순네살나이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 고별식은 가족들만으로 조용히 치르었다고 한다.
그가 가는 길을 직접 배웅해주지 못해 더 큰 아픔으로 남았다.
다음날, 선생의 유골을 안치하고있는 남동생댁을 찾아 함께 교단에 섰던 동료 교원과 조용히 향을 올렸다.
령전의 사진속 선생을 마주한 순간, 선배로서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이 가슴을 더욱 저리게 했다.
가나가와현내 우리 학교를 다니고 조선대학교를 졸업한 뒤 30여년간 부모님의 슬하를 떠나 아이찌중고에서 묵묵히 교육사업에 헌신하였다.
그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체육복차림으로 운동장과 체육관을 교실 삼아 수업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운동장에서 50메터달리기를 위해 석회로 선을 긋던 모습, 체육관에서의 수업을 앞두고 뜀통과 깔개를 정성껏 준비하던 모습, 그물을 치고 묵묵히 배구수업을 준비하던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그 뒤모습에서 수업에 대한 책임감과 학생에 대한 사랑, 교원으로서의 량심이 안겨왔다.
《준비체조로부터 제대로 하자.》
기본을 강조하며 엄격하면서도 친절한 시범으로 체육수업을 하였고 축구소조지도를 할 때에는 체력이 밑바탕에 있어야 한다며 반복된 기초훈련의 중요성을 늘 강조하였다.
그 지도를 받으며 학생들은 기술기량뿐아니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마음을 배웠다.
운동회에서는 홍청기발을 들고 펼치는 기발체조와 조립체조, 남학생들이 만들어내는 5층탑을 통해 하나의 마음, 집단의 힘, 단결의 의미를 가르쳐주었다.
마지막으로 대형 공화국기가 펄럭이는 장면은 지금도 많은 동포학부모들의 기억속에 남아있을것이다.
선생은 체육교원으로서, 학급담임으로서 언제나 학생의 가능성을 먼저 믿고 앞에서는 이끌고 뒤에서는 묵묵히 받쳐주는 참된 교육자였다.
졸업반 학생들을 인솔하여 조국을 방문했을 때는 학생들이 쓴 일기를 밤늦도록 하나하나 읽고 다음 방문지에서 더 많은것을 배우자고 일기장에 따뜻한 글을 남기였다.
학생들은 박승남선생님의 곁에 있으면 편안하다며 자연스럽게 그에게 다가갔다.
퇴직후에도 그는 학교행사가 있으면 찾아와 후배 교원들을 격려했고 졸업생들의 모임에서는 제자들의 근황을 묻고 힘을 북돋아주었다.
선생과 같은 참된 교육자들이 있어 우리 학교는 학부모와 졸업생들의 사랑속에서 그 전통을 이어올수 있었고 밝은 미래가 담보되는것이리라.
불과 2년전, 고급부 졸업생들의 동창회에 참가했던 선생의 모습이 다시 떠오른다.
제자들 한사람한사람에게 안부를 묻는 다정한 모습, 너털웃음과 함께 《이만하면 잘 컸다.》고 하던 그 말이 마지막이 될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다.
그때 다시 만나 학교를 돕는 이야기를 더 나누자던 약속이 어제일처럼 생생하다.
민족교육의 숭고한 한길에 한생을 바친 박승남선생을 영원히 가슴에 새기며 오래도록 기억하겠다.
이제 모든 짐을 내려놓고 부디 편히 쉬시기를 바란다.
(아이찌현 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