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학동 80년의 궤적④1980년대〉조국에서 세계청년들과 련대를 깊여
2025년 08월 27일 09:00 단체・사업체재일본조선류학생동맹(이하 류학동)은 올해 9월에 결성 80돐을 맞이한다. 류학동은 일본의 대학과 전문학교에 다니는 재일조선인학생들을 위한 단체로서 그 원류는 일제식민지시기에 일본으로 류학하여 일본땅에서 조선독립을 웨치며 투쟁한 조선류학생들의 활동에 있다. 총련의 산하단체들가운데서도 가장 오랜 력사를 가진 류학동은 이 조선류학생들의 뜻을 이어받아 오늘에 이르기까지 일관하게 조국과 민족, 동포사회의 발전에 이바지하고 재일동포들과 조선류학생들의 민주주의적민족권리옹호를 위하여 활동해왔다. 80년의 력사를 되돌아보는 이번 련재의 집필은 류학동중앙이 맡는다.(월1번 게재)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서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의 성공을 위해 류학동이 뻐스를 기증하였다.
1980년 8월, 제1차 류학동조국방문단이 조직되였다. 류학동 맹원들은 조국으로부터 보내오는 장학금을 받으며 그 배려에 보답할 일념으로 학문연구와 류학동활동에 매진하여왔다. 1980년의 조국방문사업은 많은 동맹원들이 조국과의 뉴대를 보다 뚜렷이 자각하게 되는 계기로 되였다.
1989년에는 평양에서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이 개최되였다.
제1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은 1947년 체스꼬슬로벤스꼬의 수도 쁘라하에서 열리고 제2차이후는 《반제, 반전, 평화, 친선, 련대》의 구호를 내걸게 되였다.
제13차 평양축전은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개최되는 축전이였다.
총련은 혹가이도로부터 규슈에 이르는 일본각지 15개 도시를 종단하는 《평양축전기념 10만명 투어콘서트》를 개최하는 등 평양축전개최를 재일동포사회, 일본사회에 널리 알리는 선전활동을 적극적으로 벌렸다.
류학동도 그해 3월에 축전성공을 위한 모금운동을 전개하여 행사성공을 위해 뻐스를 기증하였다.
평양축전을 위해 조직된 재일본조선청년학생대표단에 류학동 동맹원들도 망라되였다.
대표단은 1989년 6월 14일 니이가다항을 출항하여 16일에 원산에 도착하였다.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한 류학동 대표들
류학동 대표들은 평양에 있는 청년중앙회관의 조선구락부에 설치된 총련코너에 배치되여 선전활동을 담당, 수행하였다. 총련에 대한 소개, 학생들의 반제자주화투쟁, 재일피폭자의 실태 등 6종 1만권에 달하는 자료들을 준비하여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해설하였다.
7월 1일 5.1경기장에서 진행된 개막식에서는 류학동 대표들도 조선대표로서 행진하였다.
축전기간 류학동 대표들은 팔레스티나, 꾸바, 니까라과 등 세계의 청년학생들과 교류하였다. 미제국주의와 이와 결탁한 정권들의 군사적억압에 맞서 싸우는 청년들의 모습은 류학동 대표들의 가슴속에 깊이 새겨졌다고 한다.
7월 8일에 축전이 폐막된 후에도 세계 각지에서 모여온 청년학생들의 열정은 식지 않았다. 여러 집회들이 계속 진행되였고 21일에는 조선의 청년학생들과 재일조선학생들을 비롯한 해외동포들, 30여개 나라에서 온 400명의 대표들과 함께 백두산으로부터 판문점에 이르는 대행진이 시작되였다.
류학동 대표들은 행진대를 뜨겁게 환영하는 조국인민들의 모습을 목격하였다.
판문점이 가까와질수록 조국인민들의 열기는 더욱 달아올랐다. 개성에서는 행진대의 횡단막에 인민들이 직접 메쎄지를 적었는데 어떤 사람들은 펜도 없어 자기 손가락을 깨물고 피로 손도장을 찍기도 하였다.
27일, 판문점에 도착한 행진대는 국제평화대회를 열고 《대행진최종선언》, 《전 세계 인민들에게 보내는 호소문》, 《조선참전 16개국대표 공동성명》을 채택하였다.
조국체류기간 류학동 대표들은 세계각국의 청년학생들과 함께 식민지주의, 제국주의에 맞서 무엇을 하여야 하는가, 무엇을 할수 있는가에 대하여 진지하게 론의하고 실천활동을 벌렸다. 그때의 체험, 지향은 그 이후의 류학동활동을 통해 계승되여나가고있다.
【류학동중앙】
류학동과 조국방문

제1차 류학동조국방문단 성원들(1980년 8월)
류학동조국방문단은 1980년에 시작되여 2020년에 신형코로나사태로 중단되기까지 거의 해마다 조직되여왔다.
동맹원들속에는 조국방문단사업을 통하여 처음으로 조국땅을 밟아보는 학생들이 많다. 동맹원들은 조선사람으로서 긍지높은 삶을 누리자면 조선을 알아야 한다고 하면서 때로는 주변사람들의 반대도 무릅쓰고 방문단에 참가하였다.
2001년에 조직된 제20차 류학동조국방문단에는 50명을 넘는 동맹원들이 망라되였다. 2005년에는 백두산선군청년발전소건설장에 뻐스를 기증하는 등 조국에 실질적으로 이바지하는 사업을 벌렸다.
류학동은 조국을 방문할 때마다 그곳 조선의 대학생들과 학술교류를 진행하였다. 이를 계기로 2005년이후에는 일본인 대학생들과 교원들과 함께 가는 조선방문단도 조직되였다.
년표
1981.07.25 | 《제1차 서머쎄미나》 개최(나가노현 시나노다이라(信濃平)) |
1981.11.29 | 《제1차 우리 말 웅변대회》 개최 |
1984.10.11 | 류학동오사까가 각 대학축제에서 기록영화 《김일성주석의 쏘련 및 유럽 사회주의나라들 방문》상영회 개최 |
1985년 | 광주인민봉기 5돐에 즈음하여 조선인학생시위행진 진행 |
1985.11.02 | 류학동결성 40돐기념대회 및 경축모임 개최 |
1987.01.20 | 서울대학교의 박종철군을 고문학살한 한국당국의 만행을 규탄하는 재일조선청년학생대회 개최 |
1988.05 | 공화국창건 40돐을 빛내이기 위한 《5개월 애국혁신운동》 전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