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방산을 찾는 관광객들의 희열
2025년 07월 20일 06:45 공화국모란봉관광사의 손님들에 동행하여
정방산은 평양시민들이 즐겨찾는 관광지의 하나다.
모란봉관광사에서도 정방산을 찾아가는 관광상품을 제공하고있다.

정방산을 찾아서
평양시에서 남쪽으로 32km정도 가느라니 황해북도 사리원시입구에 멋들어지게 서있는 정방산호텔이 안겨온다.
명산의 자연환경에 어울리면서도 조형예술적으로 손색이 없이 건설된 호텔은 정방산유원지를 찾아오는 사람들을 반겨맞아주는듯하다.
호텔앞에서 내려 그곳 안내원들의 친절한 봉사를 받으며 방들에 자리를 잡은 관광객들은 잠시후 운동복차림을 하고 정방산유원지로 향한다.
관광객들을 이끄는 관광안내원은 맑은 목소리로 정방산은 예로부터 독특한 자연경치로 하여 유명하였다고 하면서 옛 문헌에는 《해서(오늘의 황해남북도)에서 경치가 아름답기로는 황주 정방산이 제일이다.》라고 씌여있다고 이야기한다.

관광안내원의 해설을 듣는 관광객들
그러면서 정방산의 경치는 갖가지 희귀한 꽃들이 만발하는 봄, 록음짙은 여름, 단풍이 곱게 물든 가을, 신묘스러운 설경으로 특이하다고 하면서 특히 지금과 같이 살구꽃과 배꽃 등 온갖 꽃들이 활짝 피여나 산을 뒤덮을 때면 마치도 꽃구름이 피여오르는듯하고 산발들이 꽃구름우에 둥실 떠있는것같기도 하여 정방산의 봄경치를 으뜸으로 일러왔으니 《정방산의 경치를 알려거든 꽃피는 봄날에 오라.》는 말까지도 생겨났다고 말한다.
정방산을 휘감으며 아아하게 뻗어간 옛 성벽을 바라보면서 걸음을 다그치면 머리우에 기와를 얹고 틀지게 서있는 고색짙은 문루와 그아래 성문이 보인다.
둘레가 12㎞에 높이가 5~6m나 되는 정방산성은 고려시기에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성으로서 조선서해안일대에서 남북으로 통하는 기본통로를 막아선 황해도지방의 제일가는 요새로 일러왔었다.
정방산성이 세워지던 당시에는 성문이 동, 서, 남, 북 사방에 있었고 이 네 성문들에 다 웅장하고 화려한 문루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우리 나라 성문축대가운데서 가장 높은 곳의 하나로 알려져있는 남문루만이 남아있다고 한다.
남문을 지나니 1879년에 정방산성 성장이며 이름난 장군이였던 김성업의 업적을 찬양한 비가 세워져있다.
관광객들은 성불사로 걸음을 옮긴다.
절앞에 이르니 나이지숙한 그곳 주지가 손니믈 기다리고있은듯 반갑게 맞이한다.
898년에 처음 세워진 성불사에는 석탑을 중심으로 앞에는 극락전, 오른쪽에는 응진전과 명부전, 기적비가 서있고 왼쪽에는 운하당, 뒤에 청풍루가 자리잡고있다.
이 절의 기본건물이며 중심건물인 극락전에는 아미타불상과 관세음보살상, 대세지보살상이 있다.

성불사에서
극락전은 배부른 기둥우의 천정과 지붕, 금단청과 조각장식 등이 우수한 단층건물이다.
극락전을 지나 응진전으로 관광객일행을 이끌어가던 주지는 두채사이에 나있는 소로길로 먼저 접어든다. 바로 여기에 물맛이 아주 좋은 샘터와 유명한 기생이 심은 한그루의 향나무가 유표하게 있다. 그 향나무는 곧추 선 모양이 너무도 아름다운데 나무줄기가 특이한 모양새를 이루고있는것으로 하여 관광객들의 호기심을 끈다.
주지는 관광객들에게 《이곳 샘터에서 맑은 샘물을 바가지로 직접 떠서 시원하게 마시고나서 향나무를 한가슴에 안으면 몸에 있던 온갖 잡병이 순간에 사라집니다. 그래야만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가 진짜 성불사에 가보았다고 말할수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관광객들은 주지의 말대로 저저마다 샘물을 마시기도 하고 가벼운 싱갱이질속에 향나무를 한아름에 안아보기도 한다.

주지가 기적비에 서술된 력사이야기를 들려준다.
잠시후 관광객들은 1327년에 다시 지어 고려시기의 건축형식이 두드러진 응진전에서 석가모니의 500명의 제자들을 형상한 불상들을 흥미있게 본 후 명부전을 거쳐 기적비앞에 멈춰선다.
주지는 기적비에 구체적으로 서술된 력사이야기를 구수하게 들려준다.
관광을 통하여 손님들은 산경치가 아름다울뿐 아니라 애국명장의 전설도 담겨져있어 정방산 옛 성안의 국보적인 력사유적 성불사가 온 나라 인민이 즐겨 찾는 곳의 하나로 나날이 유명해지고있다는것을 더 잘 알게 된다.
(조선신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