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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화지휘자의 아들은 《화폭에 선률을 담는 미술가》

2025년 07월 17일 05:56 공화국

만수대창작사 출판화창작단 김학림씨

만수대창작사 출판화창작단 미술가인 공훈예술가 김학림씨가 창작한 판화들은 국내는 물론 해외에도 널리 퍼져있다.

판화들인 《얼씨구 좋다!》,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 《물레질소리》를 비롯한 작품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화폭속에서 류다른 감흥을 느끼게 한다.

《그림속에서 선률을 듣게 된다.》《판화를 음미해볼수록 교향악의 울림이 들려오는것만 같다.》

국내외 전람회에서 김학림씨의 판화를 본 사람들의 반향이다.

김학림씨

김학림씨는 음악의 세계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의 아버지는 조선의 관록있는 예술단체인 국립교향악단에서 수석지휘자였던 김일성상계관인 인민예술가 김병화씨이다.

일본에서 나서자란 그의 아버지는 음악신동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조선사람이라는 리유로 대학입학자격기회도 얻을수 없었다. 설음과 울분에 몸부림치던 그는 조국의 품에 안겨서야 자기의 꿈을 실현할수 있었다.

체계적으로 음악공부를 한 그는 국립교향악단에서 관현악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 《그네뛰는 처녀》를 비롯한 수많은 음악작품들을 훌륭히 지휘형상하였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그의 지휘모습을 보아주시고 오랜 시간 지휘하면서도 실수가 없을뿐 아니라 속도를 정확히 유지한다고 하시면서 오늘 그가 지휘하는것을 자세히 보니 확실히 그는 속도에 대한 개념이 밝다고 그의 재능을 높이 평가해주시였다.

김병화지휘자

조국의 품에서 성공한 인생길을 걸어온 김병화지휘자는 맏이인 김학림씨가 대를 잇기를 바라였다고 한다. 성악배우였던 그의 어머니도 무대에 선 맏아들을 보게 될것을 원했다고 한다.

그러나 운명의 희롱인듯 그는 미술가가 되였다.

전공을 바꾼 자식에게 아버지는 이렇게 훈시하였다고 한다.

《네가 정 미술을 하겠다면 막지 않겠다. 그러나 명심해라. 음악을 하든 미술을 하든 자기의 고유한 맛을 살려야 한다. 고유한 맛이란 바로 민족성이다. 민족적인 맛을 살리지 못할바에는 예술계에 발을 들여놓을 생각을 하지 말아라.》

아버지의 이 말은 그에게 있어서 한생의 지론으로 되였다.

자식들에게 걸어온 인생행로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있는 김병화지휘자

그는 평양미술대학에서 배움의 나래를 펼칠 때에도, 졸업후 만수대창작사에서 창작생활을 할 때에도 민족적인 맛을 살리기 위하여 노력을 기울이였다.

판화 하나를 창작해도 함축된 조형적표현으로 구도를 잡으면서 조선화의 기법들을 많이 받아들였다.

작품의 전체 화면을 정갈하고 산뜻하게 안겨오게 하면서도 창작가의 의도를 명백히 보여주는 방향에서 그리군 하였다.

하여 판화 《백두의 행군길》, 《군밤, 군고구마》를 비롯한 작품들은 만수대창작사적인 기법전시회들에서 1등을 하였으며 그가 창작한 많은 작품들이 국가소장품으로 등록되였다.

그러나 아버지는 칭찬 한마디 없었다고 한다.

언제인가 아버지가 지휘하는 관현악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를 감상하던 그는 벼바다 설레이는 농촌과 농악무를 추는 농장원들의 모습이 한눈에 안겨오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흥분을 누를길 없던 그는 자기의 창작적령감을 속사지에 제꺽 옮겨놓았다.

이렇게 창작된 작품이 바로 판화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이다.

작품을 본 아버지는 도리머리를 저었다. 민족적인 정서와 음악적선률이 느껴지지 않는다는것이였다.

며칠동안의 모지름끝에 김학림씨는 지금의 작품을 창작할수 있었다.

아버지는 그제야 정말 잘 그렸다고, 민족적인 색이 짙고 절로 노래가 나온다고 처음으로 칭찬을 하였다.

둘째아들과 창작토론을 하고있는 김학림씨

뒤이어 창작한 그의 작품 《물레질소리》도 사람들을 놀래웠다.

전문가들도 구도에 첫째가는 의의를 부여하고 독특하고 간결하면서도 명백하고 강한 조형적인 필치를 구사하여 형상하였다고 하면서 소박한 작품에서 교향악의 선률을 느낄수 있었다고 한결같이 이야기하였다.

이밖에도 그는 40여년간의 창작생활기간 판화, 수채화, 아크릴화, 뗌뻬라화, 펜화, 선전화를 비롯한 다양한 종류의 미술작품들도 창작하였다.

해외에서 열리는 미술전람회들에 많은 작품들을 출품한 그는 오늘도 예술인가정의 후손답게 작품창작에 심혈을 쏟아붓고있다.

그에게는 두 아들이 있는데 둘째아들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가고있다.

(조선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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