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부《로동신문》에 실린 글 《위대한 조선로동당의 성스러운 80년혁명령도사를 긍지높이 펼친다 천리마가 날아오른 기적의 년대》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지금 20세기 한복판에 경건한 시선을 멈추고있다.미제의 강대성의 신화를 깨여버린 영웅조선의 환희와 감격이 복구건설의 의지로 화하여 전체 인민이 사회주의를 향해 불사신같이 일떠나 싸우던 격렬한 투쟁의 년대, 조선사람의 그 기상과 그 기백이 천리마대고조를 안아온 불멸의 시각들을 끓어오르는 마음으로 안아보고있다.
우리의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그리도 크나큰 애착을 안으시고 회억하군 하시는 년대, 우리 조국과 인민의 운명에서 또 한번의 거대한 전환이 일어난 년대가 바로 재더미우에 전설속의 천리마가 날아오른 이 시기이다.
온 세상에 존엄높은 조선인민의 위대한 초상이 여기에서 천만년 불후할 영웅적군상으로 다시금 새겨졌고 필승불패의 우리식 사회주의가 탄생하였다.
허리띠를 조여매고 인류의 리상사회를 이 땅우에 일떠세운 그 력사적행정을 통하여 우리 당은 오랜 세월 사대와 교조의 탁류에 휘말려 자기의 운명마저 지켜낼수 없었던 인민에게 대대손손 끝까지 이어가야 할 주체의 명맥을 주었고 참다운 민족의 번영을 이룩하려는 인민이라면 지구상의 그 어디에 있건 본받아야 할 자주적운명개척의 전형적인 본보기를 창조하였다.
장장 수십년간 전쟁보다 더한 시련이 수없이 앞을 막았어도 이 땅의 인민으로 하여금 단 한번의 동요도 없이 승리자의 줄기찬 보무를 이어가도록 백절불굴의 억센 힘을 실어준 그 년대는 오늘도 자기의 무수한 기적들과 강용함으로 조선의 영원한 정신을 깨우치며 거세찬 숨결을 내뿜고있다.
우리는 사랑한다.
우리는 끝없이 자랑한다.
우리는 언제나 생생히 기억할것이며 주체혁명위업의 완성을 위한 투쟁의 한복판에, 존엄높은 조선사람의 넋에 영원한 필승의 교본으로 떠올릴것이다.
이 위대한 년대를!
1950년대에 전세계를 진감한 조선충격, 조선에서 일어난 인류사적인 사변은 100여년전쟁력사에서 단 한번도 패전한적 없다는 제국주의괴수 미제를 쳐물리친 전승신화만이 아니였다.바로 그 년대에 이 땅에서 인류가 목견한적 없는 인민의 사상정신적대앙양기, 력사에 천리마시대로 기록된 국가진흥의 전설적인 대고조기가 펼쳐졌다.
전화의 불비를 헤쳐넘어 조선로동당이 이룩한 이 위대한 혁명업적과 투쟁경험은 년대와 세기를 이어 우리 국가의 승승발전의 굳건한 초석으로, 우리 인민의 사상정신적성장의 불변한 바탕으로 되여왔다.
빈터에서 시작된 자주의 새 력사
오늘 우리 인민은 반만년력사에서 가장 눈부신 자존과 번영의 새시대, 우리 국가제일주의시대에 살고있다.나날이 급진적으로 상승비약하는 우리 공화국의 국력과 존위를 생각할 때면 그 모든것에 관통되여있는 자주라는 부름이 가슴을 세차게 울리고 벽돌 한장 성한것이 없던 빈터우에서 자주강국건설의 새 력사를 펼쳐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업적이 뜨겁게 어려온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위대한 혁명실천을 통하여 자주는 력사의 정의이고 혁명의 승리이며 공정한 국제관계발전의 기초이라는것을 확증하시였으며 20세기 력사의 흐름을 자주의 길로 이끄시여 인민대중이 지배와 굴종에서 벗어나 자기 나라 혁명을 자주적으로 해나가는 자주의 새 력사가 펼쳐지게 하시였다.》
사대와 교조, 지배주의가 만연하던 지난 세기에 동방의 크지 않은 나라 조선을 세계가 우러러보는 불패의 국가로 우뚝 올려세우신 우리 수령님의 위대성은 곧 그이께서 창시하신 주체사상의 위대성이며 그이께서 한평생 혁명과 건설사업에서 자주적립장과 자주적대를 견결히 고수하여오신데 우리 인민이 맞이한 모든 승리와 영광의 근본요인이 있다고 말할수 있다.우리 수령님께서 열어주신 로동당시대이자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을 철저히 구현하여 자주, 자립, 자위의 강국을 건설하여온 과정이며 그것은 모든것이 넉넉하고 순탄한 환경에서가 아니라 전쟁의 참화가 남긴 빈터우에서 보다 새롭고 뚜렷하며 획기적인 의미와 양상을 가지고 개척되였다.
3년간의 전쟁에서 우리 인민이 쟁취한 승리는 참으로 위대한것이였으나 입은 피해 또한 인류사상 그 류례를 찾아보기 힘든 참혹한것이였다.전후복구사업은 사실상 일정한 토대에 의거한 재건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건설, 모든 분야에서의 새로운 창설을 의미하였다.하지만 전후복구건설에서도 조선사람의 본때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호소에 화답해나선 인민에게는 충천한 신심과 희망이 있었다.
조국해방전쟁이 일어난지 몇달밖에 안되였던 때인 1950년 12월에 열린 당중앙위원회 제3차전원회의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후복구건설계획은 파괴된 경제의 복구를 예견하면서도 우리 나라 경제발전의 전망까지 예견하여 세워야 한다고 명철하게 밝혀주시였다.일제가 남겨놓은 경제의 식민지적편파성과 기형성을 완전히 소거하고 우리 식의 자립적인 민족경제를 새롭게 건설하시려는 위인의 웅지가 그 복구건설방향에 어려있었다.우리 나라에서 전후복구건설사업이 짧은 기간에 성과적으로 진행될수 있은것은 가렬한 전화의 나날에 벌써 승리를 확신하시고 전후복구건설준비사업을 강력하게 추진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선견지명한 령도가 있었기때문이였다.
1953년 8월에 열린 당중앙위원회 제6차전원회의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복구건설의 세단계 과업을 밝히시면서 중공업을 우선적으로 복구발전시키면서 경공업과 농업을 동시에 발전시킬데 대한 전후경제건설의 기본로선을 천명하시였다.우리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나라의 공업화를 실현하고 자립적민족경제를 건설하여 다시는 식민지노예의 운명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는것이 우리 수령님께서 간직하신 철석같은 신조였다.위대한 수령님의 부르심에 미제를 때려부신 영웅조선, 영웅인민은 산악같이 떨쳐나섰다.
하지만 그때 모자라는 자금과 자재보다도 우리의 전진을 더욱 엄중히 가로막은 장애는 자기 힘을 믿지 않고 큰 나라의것이라면 덮어놓고 숭상하는 사대주의자, 교조주의자, 민족허무주의자들의 책동이였다.그들은 《기계에서 밥이 나오는가.》, 《인민생활이 어려운데 중공업건설에 치우친다.》고 하면서 당의 경제건설로선을 시비해나섰다.남의것을 통채로 삼키고 기계적으로 본따는데 버릇된 종파사대주의자, 교조주의자들은 우리 나라의 구체적현실은 알려고도 하지 않으면서 당의 새 로선과 방침이 제시될 때마다 그것이 다른 나라에서 하는것과 맞는가 맞지 않는가 하는것부터 따져보고 맞지 않으면 덮어놓고 반대하여나섰다.우리의 공장, 기업소들이 너무나 혹심하게 파괴되여 건질것은 헌 쇠붙이와 깨진 벽돌밖에 없다고 하면서 외국의 원조로 새로 지을것만을 바랐으며 인민생활을 높이는것도 남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사대주의, 교조주의의 해독적작용은 이 시기에 와서 참을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당사상사업분야에서는 조선혁명의 리익에 맞게, 우리 나라의 구체적실정에 맞게 대중교양사업을 진행할 대신에 우리 나라의 력사와 문화, 우리 당의 빛나는 혁명전통보다도 남의것을 내세웠다.지어 식당과 려관, 휴양소들에도 우리 나라의 풍경보다 외국의 풍경그림을 더 많이 붙이였다.이것은 당과 국가의 건전한 발전은 물론이고 혁명의 운명과 전도까지 위태롭게 하는 풍조가 아닐수 없었다.
항일의 나날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선이 해방된 다음 자기 나라가 어떤 지원을 줄수 있겠는가고 문의한 외국의 한 인사에게 말씀하신것처럼 우리 나라에는 력대적으로 사대주의가 망국의 근원으로 되여왔다.외세의존과 사대굴종사상으로 하여 동방의 천년강국으로 위용떨치던 민족의 력사가 치욕의 력사로 바뀌였고 나중에는 외세에게 국토마저 유린당하는 비극을 겪게 되지 않았던가.
조국해방전쟁시기에도 역시 우리 인민의 힘을 믿지 않고 나라의 구체적실정을 무시한 사대주의자들의 책동으로 하여 우리 조국은 자기의 승리에 더 큰 대가를 들이지 않으면 안되였다.하기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쟁시기 미국놈들과 싸우는것보다 말썽많은 사대주의, 교조주의자들때문에 속을 더 썩이였다고 가슴아프게 추억하군 하시였다.
몸은 자기 땅에 있어도 정신은 딴곳에 가있는 그런자들이 전후에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된데는 당시 세계혁명운동안에 대두한 현대수정주의와 지배주의의 영향이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대국주의자들은 우리 당이 자주의 립장을 견지하고 독자적인 로선과 정책을 들고나가는데 대하여 못마땅해하였다.우리 당이 제시한 경제건설의 기본로선을 놓고 아무것도 없는 재더미우에서 도대체 무엇을 가지고 중공업을 우선적으로 장성시키며 어떻게 경공업과 농업을 동시에 발전시키겠는가고 하면서 반대하였다.
오랜 세월을 거쳐 민족의 정신령역에 남아있던 사대주의, 교조주의를 청산하며 혁명과 건설에서 주체를 확립하는것은 더는 미룰수 없는 운명문제로 나섰다.그것은 민족의 자존의식을 거세하고 속박하려드는 온갖 세력과의 비타협적인 투쟁을 요구하였다.
하지만 당시의 환경에서 지배주의자들과 정면으로 맞선다는것은 보통의 각오와 의지로써는 결행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생각해보라.국경앞에는 정전협정을 준수할 필요가 없다고 떠벌이며 재침의 기회만을 호시탐탐 노리는 간악한 원쑤들이 득실거리고 인민들은 아직 허리띠를 조여매고 재더미를 헤치고있는 상태에서 나라의 운명을 책임진 당이 누구도 나서지 못한 자주의 초행길을 헤쳐나간다는것이 어디 간단한 일인가.
그러나 우리 수령님께서는 하늘이 무너진다 해도 민족의 생명과도 같은 자주적대를 추호도 굽히지 않으시였다.혁명을 하여 다시 예속될바에야 무엇때문에 혁명을 하겠는가 하는것이 이 나라의 해방과 자유독립을 위하여 항일의 혈전만리, 전화의 불길만리를 헤쳐오신 우리 수령님의 심중에 간직된 철석의 신념이였다.
력사의 그 나날로부터 우리 당이 고수한 투철한 자주적립장은 세계를 충격과 흥분으로 설레이게 하였다.
우리가 테제를 내놓는데 대하여 시비하는 사람도 있지만 우리는 우리의 결심을 굽힐수 없다고, 우리는 다른 나라 사람들의 의견을 들을것이 아니라 우리 인민의 의견을 듣고 그것을 집대성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1955년 4월 우리 나라에서의 사회주의혁명에 관한 테제를 발표하시였다.
그로부터 얼마후인 1955년 12월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로동당 제1차 사상일군대회에서 하신 력사적인 연설 《사상사업에서 교조주의와 형식주의를 퇴치하고 주체를 확립할데 대하여》에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당사상사업에서 주체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무엇을 하고있습니까? 우리는 어떤 다른 나라의 혁명도 아닌 바로 조선혁명을 하고있는것입니다.이 조선혁명이야말로 우리 당사상사업의 주체입니다.그러므로 모든 사상사업을 반드시 조선혁명의 리익에 복종시켜야 합니다.》
참으로 대를 이어가며 숙명처럼 받아들여야만 했던 약소국의 설음과 민족허무주의의 수렁탕에서 이 나라와 인민을 완전히 해방하여 빛나는 존엄과 무궁한 번영의 새 기원을 열어놓는 력사의 대사변이였다.
이날을 기점으로 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국가사회생활의 전 령역에서 사대주의, 교조주의의 뿌리깊은 병집을 종식시키기 위한 일대 사상전을 개시하도록 하시였다.
조선의 넋은 자주정신이다, 우리의 모든 승리의 열쇠는 이 자주정신을 어떻게 견지하며 어떻게 발양하는가 하는데 달려있다고 하시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혁명과 건설의 모든 분야에서 주체확립의 새로운 전환을 가져오도록 하시였다.우리가 사대주의와 교조주의를 극복하고 주체를 세우기 위하여서는 우리 나라의 력사를 잘 알아야 한다고 하시며 그처럼 어려운 때 민족의 찬란한 문화가 깃든 수많은 력사유적들을 복원하도록 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경제건설에서도 모든 일군들이 사상사업을 선행하고 주체를 확립하는데 중심을 두고 일해나가도록 이끌어주시였다.
지배주의의 간섭과 전횡을 물리치고 력사적인 당중앙위원회 1956년 8월전원회의에서 사대주의, 교조주의, 종파주의의 오물을 쓸어버린 우리 당대렬은 더욱 순결해졌으며 주체사상의 기치밑에 단결된 당과 인민의 혼연일체의 위력은 비상히 강화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혁명의 개척기에 창시하시고 시종일관 실천해오신 주체사상은 바로 이때로부터 자주정치, 자립경제, 자위국방을 기본으로 하는 우리 국가건설사업에 더욱 철저히 구현되기 시작하였다.
정치적자주성은 자주독립국가의 첫째가는 징표이며 제일생명이라는 철석의 신조를 지니시고 당의 로선과 정책작성으로부터 시작하여 혁명실천에 이르기까지 다른 그 누구의 자도 아닌 우리의 자를 가지고 모든 문제를 재여보고 우리 식대로 풀어나가도록 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경제적자립은 정치적독립의 물질적기초이며 경제적의존은 분명코 정치적추종과 예속에로 이어진다는 철리를 밝혀주시면서 그 누가 뭐라고 하든 자립적민족경제건설에 박차를 가하도록 하시였다.국방에서 자위의 로선을 내세우면 큰 나라들로부터 무기를 받을수 없다고 하는 일부 떨떨한 사람들의 우려를 일소하시고 군대를 가지고있다고 하여 국방에서 자위의 로선이 실현되는것이 아니라고, 군대가 자기 나라에서 생산한 총을 메고 자기 나라에서 생산한 대포를 가지고있어야 자위를 할수 있다고 하시며 주체적국방공업의 튼튼한 토대를 마련하신 위대한 수령님,
위대한 수령님의 이 만고불멸할 업적이 있음으로 하여 이 땅우에는 온 세계를 뒤흔드는 대정치풍파와 경제적혼란에도 끄떡없고 제국주의자들의 침략전쟁소동도 단호히 맞받아 물리치는 불가항력의 자주국가, 불패의 사회주의보루가 우뚝 일떠서게 되였다.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으로 세계를 계몽시키시고 억압받던 인류의 앞길에 자주시대를 펼쳐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탁월한 업적은 현세기에 와서 더욱 찬연한 빛을 뿌리고있다.마지막운명의 길에 들어선 제국주의자들의 전횡으로 말미암아 동란과 류혈이 그칠새 없는 오늘 자주정치, 자립경제, 자위국방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되고있다.위대한 수령님께서 문을 열어주신 자주의 세기가 마침내 자주화된 새 세계의 탄생에로 이어지리라는것은 론박할 여지없는 과학이다.오직 그길에 국가와 인민의 존엄이 있고 평화롭고 평등하게 살며 발전하려는 인류의 리상을 실현할수 있는 진로가 있기때문이다.위대한 자주강국 조선은 그 리상적인 세계의 시원국이라고 할수 있다.
동유럽의 사회주의나라들이 하루아침에 무너진 20세기의 대정치동란이 일어나고 세계의 정치가들이 조선이 정말 옳았다고 경탄하기까지는 아직도 많은 세월이 앞에 있었다.우리 당이 1990년대의 고난의 행군시기를 거쳐 오늘까지 굴함없이 사회주의를 지키고 국력강화의 최절정에로 이 조선을 솟구쳐올린 경이적인 화폭도 그때에는 미처 다 그려볼수 없었다.
하지만 오직 한분 우리 수령님께서만은 력사의 심오한 철리와 달리는 될수 없는 시대의 흐름을 확신하고계시였다.
이 나라와 인민에게 영원무궁한 승리와 번영을 가져다줄 자주, 자립, 자위의 억년기틀을 마련하신데 대하여 긍지스럽게 돌이켜보시며 언제인가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신께서 늘 말하는것이지만 자주적인 독립국가가 되자면 정치에서 자주, 경제에서 자립, 국방에서 자위를 실현하여야 한다고,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정치에서 자주, 경제에서 자립, 국방에서 자위의 로선을 내놓고 그것을 철저히 구현하여나가고있기때문에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고 확언하시였다.력사는 절세위인의 이 뜻깊은 확언을 증명하였으며 오늘도 불멸의 진리로 확증하고있다.
수령은 인민을 믿고 인민은 수령을 믿고!
조선로동당은 자기의 창건과 함께 조선사람, 그 부름을 수난과 불행의 대명사로부터 당당한 존엄과 권리의 대표자로, 가장 힘있는 력사발전의 주체로서의 상징으로 전환시켜주었다.《최강》을 자랑하는 미제를 쳐부시고 온 세계가 우러러보는 영웅조선, 영웅인민의 값높은 영예를 이 나라와 인민에게 안겨준 우리 당은 1950년대에 천리마조선, 천리마시대 인간들이라는 전설적인 명함을 또다시 력사에 새겨놓았다.사회주의전면적발전을 향한 오늘의 력사적인 투쟁행정에서 조선사람이라는 성스러운 자각과 더불어 더욱 충천하는 우리 인민의 강용한 기개와 백절불굴의 투쟁전통이 바로 그때에 마련되였다.
여기에는 필연적인 법칙이 있다.미제와 괴뢰도당의 재침소동과 대국주의, 사대주의와의 치렬한 대결을 동반하는 속에서 우리 당이 제시한 전후복구건설 3개년계획은 1956년까지 2년 8개월만에 성과적으로 수행되였다.
그러나 잠시도 신들메를 풀고있을새가 없었다.재더미를 헤치고 오른 등성이앞에 반드시 톺아올라야 할 아득히 높은 봉우리가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지도밑에 1956년 4월에 진행된 조선로동당 제3차대회에서는 전후복구건설 3개년계획을 완수한 다음 우리 나라 력사에서 처음으로 되는 5개년인민경제계획을 수행할것을 결정하였다.위대한 수령님의 웅대한 구상에 따라 작성된 제1차 5개년계획은 도시와 농촌에서 생산관계의 사회주의적개조를 끝내며 사회주의적공업화의 기초를 닦고 인민들의 의식주문제를 기본적으로 해결하는것을 중심과업으로 내세웠다.착취와 압박이 없는 사회주의제도를 수립하고 뒤떨어진 농업국가였던 우리 나라를 튼튼한 자립적민족경제의 토대를 가진 사회주의공업농업국가로 전변시키게 될 이 대변혁적인 계획은 그때 110여만명으로 장성한 로동당원들만이 아니라 온 나라 인민들을 커다란 흥분으로 설레이게 하였다.
하지만 우리 혁명을 새로운 높은 단계에로 이행시키게 될 그 계획의 실현은 당시의 형편에서 참으로 방대하고 아름찬것이였다.
공업총생산액은 2.6배이상, 농업생산액은 2배이상 늘일것을 예견한 5개년계획은 인민경제 주요부문별지표들만 놓고보아도 3개년계획에 비해 전력은 2.5배, 강철은 3.5배, 석탄은 2.5배, 선철은 5배, 세멘트는 3배로 늘일것을 예견하고있었다.이런 높은 계획을 우리자체의 힘으로 수행한다는것은 사실 엄두조차 내기 힘든 일이였다.
3개년계획수행때보다도 훨씬 더 많은 자금과 자재가 필요하였지만 우리에게는 그것이 너무도 부족하였다.나라의 재정을 맡은 일군이 연탁에 나가 지금 나라의 금고에는 돈이 한푼도 없다고 안타까이 가슴을 두드린것이 바로 그때의 일이다.
실로 제1차 5개년계획을 수행하는 과정은 조선혁명을 새로운 발전단계에로 올려세우기 위하여 반드시 경과해야 하는 로정인 동시에 우리 당과 정부, 우리 인민이 진정 자체의 힘으로 살아나갈수 있는가, 자기식대로 사회주의를 건설할수 있는가 없는가를 판가름하는 검증과정으로 되였다.
사대를 추방하고 의존을 배격한 우리 당에 있어서 유일한 자본, 절대적으로 믿고 의거한 유일한 힘은 인민의 힘이였다.일찌기 혁명의 길에 나서신 첫 기슭에서부터 항상 그러하시였듯이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라의 자존과 혁명의 사활이 결정되는 그 운명적인 시각에도 우리 인민을 굳게 믿고계시였다.
돌이켜보면 불과 10여년전까지만 하여도 자기의 성과 이름마저 빼앗겼던 조선인민은 세계의 시각으로 볼 때 제손으로 나라를 세울수도 없고 관리해나갈 힘도 없는 약소한 인민이였다.바로 그래서 미제와 그 추종무리들은 아침은 해주에서 먹고 점심은 평양에서 먹고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는다고 줴치면서 이 땅에 덤벼들었다.
우리 수령님께 있어서 주체는 곧 인민이였고 자주는 본질에 있어서 자기 나라와 인민을 먼저 보고 그 힘에 의거하는것이였다.사대주의자들은 지경너머 큰 나라만 쳐다보고 거기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변화에도 촉각을 곤두세우며 그대로 본따려고 했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예비를 실무적으로만 찾아서는 소극성밖에 나올게 없다, 믿을것이란 우리 인민의 힘이다, 우리 인민의 힘을 발동하여 더 빨리 나갈 생각을 해야 한다고 하시며 혁명과 건설을 줄기차게 령도해나가시였다.
굴종이냐 존엄이냐, 답보냐 전진이냐 하는 준엄한 갈림길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결단코 인민을 찾아 떠나시던 그 력사의 자욱을 우리는 다시금 가슴뜨겁게 되새겨본다.제1차 5개년계획수행의 첫해 인민경제계획을 토의한 당중앙위원회 1956년 12월전원회의가 열리기 전에 벌써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강선의 로동계급을 찾으시여 절절히 말씀하시였다.
정녕 우리가 자체의 힘으로 할수 없는 일을 하겠다고 나섰는가.우리가 정녕 가지 말아야 할 길을 가고있는가.
나는 동무들을 믿고 동무들은 나를 믿고 우리 함께 조성된 혁명의 난국을 뚫고나가자.
나는 동무들이 지펴올리는 집단적혁신의 불길이 온 나라를 천리마대고조에로 불러일으키는 봉화가 되리라는것을 굳게 믿는다.
혁명의 진퇴가 결정되고 나라의 존망이 다시금 판가리되는 시각에 위대하신 수령께서 주시는 하늘같은 믿음이 로동계급의 심장에 쇠물보다 뜨거운 분발심을 일으켰다.
하늘이 열리고 이 땅이 생겨난이래 과연 인민의 지위, 인민의 가치, 인민의 힘을 이토록 귀중히 여기고 국가의 존엄과 운명을 그 두어깨우에 실어준 위인이 있었던가.
과연 기나긴 인류사의 어느 시대, 어느 갈피에 근로하는 인민과 나라의 존엄이 하나로 이어지고 인민이 자기의 운명과 미래를 제손으로 결정하는 주인으로 되여본적이 있었던가.
력사상 누구도 찾을수 없었던 인민의 무궁무진한 힘을 발견하시고 그것을 시대의 사상으로, 국가건설의 절대적인 밑천으로 삼으신 여기에 위대한 수령님의 특출한 비범성이 있다.
수령은 인민을 믿고 인민은 수령을 믿고!
천리마는 이 위대한 믿음의 세계에서 기적의 날개를 뻗치고 솟구쳐올랐다.세상을 짓누르던 렬강들의 거만한 독선과 전횡을 뚫고 날아오른 조선의 천리마는 위대한 수령이 안겨준 믿음에 산악같이 일떠선 인민의 대군상이였다.
당중앙위원회 1956년 12월전원회의에서 《증산하고 절약하여 5개년계획을 기한전에 넘쳐 완수하자!》라는 혁명적구호를 제시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남들이 한걸음 걸을 때 열걸음, 백걸음을 내달리는 천리마의 정신을 전체 인민의 넋에 재워주시려 온 나라 방방곡곡의 일터들을 찾고 또 찾으시였다.
어느한 화학공장에 가시여서는 카바이드는 미국놈을 치고 가난을 물리치는 폭탄이라고 하시며 전로공들의 가슴마다에 위훈의 불길을 지펴주시였고 나라에 하나밖에 없는 용광로를 다루는 김철의 로동계급을 찾으시여서는 당중앙은 동무들을 꼭 믿는다고 하시며 강철증산에로 이끌어주시였다.
길이 나쁘면 자동차에 삽을 싣고가다가 길을 닦으면서 가면 될것이라고 하시며 아호비령 깊은 산중에 자리잡은 어느한 광산의 로동계급을 찾아 멀고 험한 길을 떠나시였고 몸소 낫을 드시고 태성벌 농민들과 함께 보리가을도 하시며 알곡증수에 떨쳐나선 인민들을 고무해주시였다.큰 배와 여러가지 어로설비들이 보장되지 않아 원해에 나가지 못한다는 한 어로공의 꾸밈없는 목소리를 들으시고서는 미국놈을 때려눕힌 영웅적조선인민이 그쯤한것때문에 바다에 나가지 못해서야 되겠는가고 하시며 큰 배도 무전기도 쌍안경도 필요한 모든것을 다 해결해주겠으니 이제부터 심해어업, 원해어업을 대담하게 적극적으로 벌리라고 커다란 용기를 안겨주시였고 황철로동계급이 외국에서 사들여와야만 한다던 송풍기를 자체로 복구하고 3년은 걸린다던 대형용광로건설을 단 1년만에 조업하게 되였을 때에는 그들이 더없이 대견하시여 혁신자들과 일군들에게 몸소 축배잔도 일일이 부어주시였다.
대대로 가난에 시들고 설음에 울며 짓밟혀 살아온 인민에게 위대한 자존의 넋을 심어주시고 그 불가항력적인 위력을 남김없이 발양시켜주시려 이어가시는 그이의 길에서 천리마의 고삐를 든든히 틀어잡고 기성관념, 기존공식을 타파하는 인민의 발구름소리가 하늘땅을 진감하며 울려퍼졌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바라시면 그것이 우리의 목표이고 공칭능력이라는것이 천리마를 탄 인민의 기세였다.
종파놈들을 우리에게 보내주면 쇠장대로 찍어 전기로에 처넣겠다고 수령님앞에서 결의다졌던 강선의 로동계급은 증산의 예비를 찾아내기 위한 격렬한 투쟁속에서 용해시간을 3시간 5분이나 단축하고 6만t능력의 분괴압연기에서 12만t의 강편을 밀어냈으며 한해에 19만t의 선철생산도 힘들다고 하던 용광로에서 김철의 로동계급은 27만t의 철생산성과로 우리 당을 보위해나섰다.전쟁에 참가하고 전연에서 돌아온 제대병사가 집이 없어 장가를 가지 못한다는 청원편지를 받으시고 너무도 가슴이 아프시여 그 사람들에게 집을 아직 지어주지 못한 내가 무슨 공화국의 수상이라 할수 있겠는가고 하신 어버이수령님의 안타까움을 풀어드리려 수도건설자들은 한해사이에 7 000세대분의 자재와 자금, 로력으로 2만여세대의 살림집을 짓는 기적을 창조하였다.농촌에서도 천리마가 날아올라 나라의 력사에서 처음 보는 320만t의 알곡이 생산되였고 수산부문에서도 우리 나라 바다자원이 고갈되였다는 패배주의자들의 궤변을 짓부시고 아시아에서 수산업이 발전되였다고 하는 어느한 나라를 훨씬 릉가하는 어획량을 기록하였다.결과 1956년에 비해 공업생산 22%의 장성을 예견하였던 1957년의 방대한 인민경제계획은 2배로 수행되였으며 공업총생산액은 무려 44%, 1958년에는 또 전해에 비해 40% 장성하였다.세계에는 아직 이렇게 빠른 속도로 경제가 발전한 례가 없었다.
참으로 자기의 진정한 지위와 무게를 깨달은 인민의 힘은 폭풍노도와도 같았다.《우리는 자랑찬 사회주의건설자 천리마 타고서 번개처럼 달린다》라는 시대의 진군가가 우렁차게 울려퍼지는 조국땅은 시간마다 기적이고 날마다 사변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간단한 소농기구를 생산하던 기양의 로동계급을 찾아오시여 자체로 뜨락또르를 생산할데 대한 과업을 맡겨주시자 《열백번을 다시 깎고 백천번을 뜯었다 맞추는한이 있더라도 우리의 힘으로 끝까지 해내자!》고 불같은 마음들을 합치며 단 35일만에 우리 나라 력사에서 처음으로 뜨락또르를 만들어냈고 수령님께서 인민경제 모든 부문에서 천리마를 타면 기계공업부문에서는 만리마를 타고나가야 한다고 하시면서 락원의 로동계급에게 굴착기를 생산할데 대한 과업을 주시자 그해안에 천리마의 이름을 단 조선의 첫 굴착기를 만들어 온 나라를 격동시켰다.
덕천의 로동계급이 당이 준 과업을 받들어 단 40일만에 《승리》호자동차를 만들어낼 때 해주-하성철길건설자들은 3~4년은 실히 걸린다던 공사과제를 단 75일만에 끝내는 신화를 창조하였고 혁명을 하자면 대담성이 있어야 한다고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가슴에 새기고 8m타닝반을 만들어낸 룡성의 로동계급은 련이어 3000t프레스생산에 달라붙었다.
바로 그런 대비약적인 혁신성과로써 우리 인민은 조선은 100년이 걸려도 일떠서지 못한다던 미제의 면상을 후려갈겼고 우리 당정책을 시비해나서던 종파놈들의 궤변을 풍지박산내버렸으며 조선인민이 얼마나 위대한 힘을 지닌 인민인가를 온 세상에 똑똑히 보여주었다.
그 시대는 매 인간에게 물었다.그리고 이렇게 웨쳤다.
《동무는 천리마를 탔는가? 보수주의, 소극성을 불사르라!》
그것은 위대한 수령님께 끝없이 충직한 우리 인민자신이 량심에 제기한 물음이였고 시대의 전진에 가한 박차였다.
우리 나라의 첫 건설번영기가 펼쳐지던 그때 수도건설자들은 1인4세대운동(한해동안에 건설자 한명이 평균 4세대이상의 살림집을 짓는 운동)의 불바람속에 불과 2분 37초만에 한 세대의 살림집을 조립하였고 설계도면만 싣는데 2대의 화물자동차가 들어야 했다는 비날론공장건설장에서는 하루작업량의 500%라면 수수하고 1 000%라면 괜찮으며 3 500%라야 성차다는 건설자들의 통용어와 함께 비날론속도가 창조되였다.우리 수령님께서 누구나 다 옷을 입을 때에는 이 동무를 생각하시오라고 하시며 영웅으로 내세워주신 리화순직포공이 하루에 180리를 걸으며 72대의 직기를 돌린 이야기며 서해의 날바다에서 격랑과 싸우며 풍어의 배고동소리를 높이 울린 《조선로동당의 딸 청년녀성영웅》호 선원들의 장한 모습은 또 얼마나 사람들을 놀래웠던가.
천리마운동은 위대한 수령님의 손길아래 천리마작업반운동으로 발전하면서 인민경제를 빨리 발전시키는 강한 추동력으로서만이 아니라 자각된 근로자들의 대중적경제관리방법으로서, 사람들을 새로운 인간으로 개조하는 대중적교양방법으로서의 보다 큰 의의와 생활력을 가지고 전설적인 자취를 아로새기였다.천리마의 새시대는 물질적부의 장성과 경이적인 로력투쟁의 산아이기 전에 새 인간들의 창조물이였다.천리마가 세기의 창공높이 날으던 그 년대에 사회주의조선의 인간전형들이 무수히 탄생하고 로동당시대 인민의 특유한 정신적품격과 기질이 형성되였다.
세대를 이어가며 이 나라 인민이 거울로 삼고 본받아온 천리마시대 사람들은 《수상님! 얼굴이 많이 축간것같은데 너무 근심하지 마십시오.그래도 우리가 이기지 종파놈들이 이기겠습니까? 념려마십시오.우리는 수상님을 지지합니다.》라고 우리 수령님께 큰 힘을 드렸던 태성할머니의 모습이고 《공산주의적으로 일하며 배우며 생활하자!》,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 《다음교대를 위하여!》라는 구호를 높이 들고 서로 돕고 아끼고 위해주며 력사에 불멸할 기적을 창조한 위대한 인민의 모습이다.그것은 화상을 입은 한 소년을 위해 자기의 피와 살을 아낌없이 바친 유명무명의 아름다운 인간들의 이야기이고 《우리 가정수첩》을 가슴에 꼭 품고 맹수들이 어슬렁거리는 무인지경을 넘나들며 집집에 필요한 상품들을 마련해오던 참다운 충복의 자욱이며 모든 사람들을 교양개조하여 공산주의사회까지 데리고가시려는 어버이수령님의 뜻을 받들어 뒤떨어진 작업반들을 스스로 맡아 군중의 좋은 언니, 살틀한 어머니가 되여 이끌어주던 인간개조영웅의 감동깊은 위훈이다.
위대한 수령과 한마음한뜻이 되여 고난을 이기고 자신을 이겨낸 바로 그런 인간들이 세상사람들이 못한다던 제1차 5개년계획을 매해 평균 36.6%의 경제장성속도로 모두 앞당겨 완수하였고 남들이 수십, 수백년씩 걸려서야 이룩한 공업화의 과제를 불과 14년만에 완성하는 기적을 이룩하였다.
세계는 그때 조선을 다시 보았다.존엄높고 강대한 조선인민의 초상은 그때에 정확히 그려졌다.
조선의 천리마가 어떻게 날아가는가를 한번 보고싶다고 하면서 우리 나라에 왔던 외국인들은 전쟁이 끝난지 5년밖에 안된 땅에 수많은 거리와 마을들이 일떠선것을 놓고 이것이야말로 기적이라고 하였고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평양속도가 인류의 첫 인공지구위성보다 더 빠른 속도이라고 감탄하였다.
어느한 사회주의국가의 주석은 자기 나라를 친선방문하신 위대한 수령님을 환영하는 군중대회에서 동포들, 우리도 조선형제들처럼 천리마를 탈수 있는가, 천리마의 기세를 안겨준 김일성동지께 감사를 드리기 위하여 만세를 부르자고 하면서 선창하였고 콩밥을 먹자면 이발이 있어야 한다며 우리의 자주로선을 한사코 비방해나섰던 대국에서 대표단을 이끌고왔던 단장은 사회주의는 우리가 먼저 건설했지만 이제 공산주의는 조선이 제일먼저 건설할것이라고 격찬해마지 않았다.제1차 5개년계획의 마감년도로 예정되여있었던 1961년에 위대한 수령님의 직접적인 발기와 지도밑에 만수대언덕에는 천리마동상이 세워졌다.지금이야 인민의 시대가 아닌가고 하시며 위대한 수령님께서 날개돋친 천리마우에 우리 인민을 형상하도록 하신 세계적으로도 가장 큰 기마상을 보러 왔던 수많은 외국인들속에는 유럽의 한 작가도 있었다.바로 그가 20세기초엽에 조선에 왔다가서 지게를 지고 구슬픈 모습으로 서있는 소년의 조각상을 만들어놓고 이것이 조선사람의 표상이라고 외웠다는 사람이였다.그로부터 반세기후에 조선에 온 그는 천리마동상을 보고 이것이 진짜 조선사람의 표상이라고 력사의 증언을 바꾸었다.
조선사람의 존엄과 명예를 만방에 빛내인 천리마라는 부름이 기대와 설비, 작업반과 직장, 공장과 농장, 학교와 병원, 인민반들의 명칭앞에까지 놓이던 그 년대를 뜨거운 마음에 안고 《그때처럼 우리가 살고있는가》고 노래하면서 우리 인민은 장장 수십년세월 승리와 영광의 력사를 이어왔다.어제도 오늘도 래일도 영원히 우리 수령님 안겨주신 천리마는 세상에 오직 하나 조선사람의 본태와 특질을 상징하는 대명사로 길이 빛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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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것이 재가 된 빈터우에서 천리마가 날아오른 강선에 우리는 다시금 숭엄한 마음을 세워본다.
나는 동무들을 믿고 동무들은 나를 믿고!
우리 수령님의 이 위대한 믿음이 있어 황금을 산같이 쌓고서도 일으킬수 없는 천리마대고조가 일어났고 그 시대는 아무리 파내여도 끝이 없는 영원한 정신적보화와 부국강병의 튼튼한 밑천을 이 땅의 후손만대에 물려주었다.
그 믿음에는 조선의 필승불패성을 결정한 모든것이 비껴있었다.
그 믿음이 곧 사대를 타파한 주체의 본질이였고 무에서 유를 창조한 기적의 증산예비였으며 조선의 불가항력인 당과 인민의 철통같은 단결의 구심이였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혁명의 한길을 걸어온 우리 인민의 일편단심의 초석이였다.
바로 그 믿음의 힘으로 우리 당과 인민은 세계사회주의운동이 곡절과 비극을 겪을 때에도 꿋꿋이 조국의 운명, 혁명의 미래를 지켜냈다.
오늘도 그 숭고한 믿음을 안으시고 우리의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새시대 천리마정신창조에로 전체 인민을 불러일으키시여 공화국력사에서 가장 빛나는 자존과 번영의 시대를 펼쳐가고계신다.
주체혁명이 올라선 력사의 봉우리에서 우리는 듣고있다.
조선로동당의 80성상에 진함없는 생명의 피를 뿜어준 심장과도 같은 언어, 이 나라에 천년만년 승리와 기적만을 안겨줄 천리마의 영원한 박동소리를 듣는다.
수령은 인민을 믿고 인민은 수령을 믿고!
(조선신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