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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우리 말과 나⑤/박재수

2023년 11월 24일 14:52 론설・콜럼

어원의 향취

어원이 펼쳐주는 세계

이따금씩 나에게 우리 말의 어원을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다.

며칠전에도 교원을 하는 제자한테서 전화가 와서 《선생님, <부랴부랴>는 <불이야 불이야>로부터 온 말이라는게 맞습니까.》라고 하는것이였다. 나는 《맞는다.》고 대답하고는 《불이 났을 때 그것을 남에게 알리기 위해 서둘러 소리치던 <불이야 불이야>가 <불야불야>를 거쳐 <부랴부랴>로 되였고 그것이 사람이 아주 급하게 서두르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로 되였다.》라고 알려주었다.

이렇게 우리 말의 어원이나 말의 유래를 알고싶어서 질문해오는 사람이 있는데 교단에 선 첫시기는 우리 말의 어원을 잘 몰라서 당황할 때가 많았다. 나는 어원연구자가 아니기에 어원에 대해 아는것이 별로 없다고 외면하는것도 창피해서 질문을 받을 때마다 이것저것 자료를 뒤져보면서 어원을 찾았었다.

그런 과정에 어원을 알아보는 재미를 붙이게 되였고 어원에 대한 흥미와 관심이 커져갔다. 어원을 조사하면서 말의 유래가 보여주는 우리 민족의 사고방식이나 지혜로움에 놀라기도 하였다. 또 어원을 알면 알수록 내가 정말 말의 뜻을 잘 모르고 엉뚱하게 써온것이 적지 않았구나란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그중의 하나가 《황소》이다. 《황소》는 한자 《누를 황(黃)》과는 관계가 없고 《크다》는 뜻의 《한》(한글, 한길, 한숨 등의 한과 같음)과 《소》가 결합된 《한소》가 말소리변화를 거쳐 생긴 말인데 《큰 수소》라는 뜻이다. 나는 이것을 알기 전까지 오래동안 《황소》를 누런색의 소라고 생각했었다. 《조선말대사전》(사회과학출판사, 1992)과 《조선말사전》(학우서방, 2023)에서도 《황소》를 한자표기없이 《큰 수소》라고 풀이하고있다. 고유어이니까 당연한것이다. 《황소》의 어원은 나의 눈을 번쩍 뜨게 한 말의 하나였다.

추석명절에 즈음하여 해마다 진행되는 대황소상 전국민족씨름경기 우승자에게는 《황소》 즉 《큰 수소》가 수여된다.

우리 나라에서 해마다 진행되는 《대황소상 전국민족씨름경기》의 《대황소》를 《大黄牛》라고 한자로 표기하는것은 잘못이다.

내가 어원에 대한 흥미와 관심을 처음 가지게 된것은 김일성종합대학의 렴종률교수가 조선대학교창립 20돐이 되는 1976년에 조국의 대표단 성원으로 조선대학교를 방문했을 때 우리 문학부 교원들과의 교류모임에서 어원에 대한 이야기를 한것이 계기가 되였다. 그때 렴종률교수가 《중세어에서 <비>는 물을 뿌린다는 뜻을 가졌다. 비는 언제나 사선으로 내린다. 그러니 비는 사선이란 의미를 가진다. 비자루의 비나 머리 빗는 빗, 해빛의 빛, 비뚤다, 비비다의 비가 다 그렇다.》라고 하면서 《어원을 알면 우리가 지금 쓰고있는 말들이 어떻게 생겨나게 되였는가, 그 말들의 기원과 변천과정의 력사를 알수 있고 자기 민족과 민족어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문화를 알수 있다.》라고 하였다. 이 말이 나의 지적흥미를 불러일으켰고 미지의 어원의 세계에로 발을 들여놓는 계기가 되였다.

알면 보이는 어원의 세계

어원을 안다는것은 단어나 말의 밑뿌리와 변천과정을 안다는 뜻이고 그렇게 우리 말의 어원을 알게 되면 단어나 말에 대한 리해가 더 깊어진다. 그러니 어원을 공부하는것은 말의 본뜻을 알고 옛사람들의 마음에로 거슬러올라가면서 우리 민족의 력사와 문화, 인민들의 생활을 탐색하는 흥미로운 지적려정이라고 할수 있다.

우리가 쓰고있는 말은 어디서부터 유래되여 사용되고있는지 잘 모르는것들이 많다.

그런데 모든 말에는 근원이 있다. 례컨대 심부름이나 련락을 갔다가 돌아오지 않거나 아무 소식도 없는 사람을 이를 때 《함흥차사》라고 말하는데 이 말은 리성계의 다섯째아들 리방원(조선왕조 3대왕 태종)이 옥새(옥으로 새긴 임금의 도장)를 가지고 함흥의 옛집에 간 리성계에게 옥새를 받으러 연거퍼 《차사》(왕이 일정한 임무를 주어 특별히 파견하는 벼슬아치)를 함흥에 보냈는데 그때마다 리성계가 활로 쏘아 죽여버렸으므로 차사들이 한사람도 돌아오지 못한데로부터 생긴 말이다.

이렇게 말의 유래는 나에게 우리 민족의 력사를 알게 해주었을뿐아니라 우리 문화와 우리 인민의 생활을 알게 해주었다. 어원은 나에게 우리 민족의 사고방식, 사물현상을 보는 눈 등을 알게 해줌으로써 지적흥미를 돋구어주었으며 말의 유래를 아는 재미와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우리 말을 아는 사람이라면 《아버지, 어머니, 해, 하늘, 땅, 바다, 아침, 저녁, 강아지, 돼지…》 등 이런 말들이 어떻게 생겨나게 된것일가 하는 의문을 한번은 가졌을것이다. 나도 이런 궁금증을 안고 어원을 해설한 조국의 책을 사서 공부하였다.

《조선말단어의 유래》(렴종률, 금성청년종합출판사, 2001)와 《어원유래상식》(김인호, 사회과학출판사, 1권 2005년, 2권 2009년), 《우리 말 어휘의 뜻과 유래》(김범주, 금성청년종합출판사, 2010), 모두 평양호텔에서 산 책이다. 나는 이 책들로 우리 말 어원에 관한 궁금증을 많이 풀수 있었다.

조국에서 구입한 어원과 관련된 서적들

례컨대 우리가 자주 쓰는 단어중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단어가 있다. 이 단어들의 어원은 농업을 기본으로 생활해온 우리 민족의 문화를 잘 보여준다. 봄은 움트는 계절의 《움》이 《봄》으로, 여름은 《열매》라는 뜻의 《녈(다)-음→녀름》이 《여름》으로, 가을은 《열매, 농작물》이라는 뜻을 나타낸 《가살》이 《가을》로, 겨울은 한해의 《마지막계절》이라는 뜻을 가진 《겨슬》이 《겨울》로 되여 생겨난 말이라는것을 이 책들을 읽어보고 알게 되였다.

《크다》는 뜻을 가진 《다히/따히》가 《땅》으로 된것은 력사적으로 《히》가 《ㅇ》으로 말소리변화를 일으켰기때문이다. 《개》의 옛말인 《가히》와 작은것이라는 뜻을 가진 《아지》가 결합된 《가히아지》가 《강아지》로 바뀐것도 같은 리유이다.

《하나를 통하여 열을 안다》는 말이 있다. 《송아지, 망아지, 미꾸라지, 보가지, 바가지, 나무가지, 아이…》라는 단어들은 언뜻 보기엔 하나의 단순한 낱말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서로 다른 뜻이 결합된것임을 알게 된다. 이 단어들에 있는 《아지/가지/아이》는 다 작은것이라는 뜻을 가진 말이므로 례로 든 단어들은 모두 작은 동식물이나 물건을 뜻한다.

어원을 아는 의미

사람들에게 공기와 음식을 빼놓고 말만큼 중요한것은 없다. 그리고 말만큼 사람들의 생활과 밀착된것도 없다. 말이 없는 인간생활은 상상조차 할수 없는것이다.

말속에는 그 민족의 사고방식과 사물현상을 보는 관점, 그것들을 체계화한 사상이 배여있어서 어린이들은 말을 배우는 과정을 통해서 저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 민족의 넋으로 물들게 된다. 말속에 배여있는 민족의 오랜 전통에 접하게 되는것이다. 례를 들면 사람들이 쓰는 관용구나 속담을 들을 때 그속에 담겨있는 선조들의 생활과 사고방식, 교훈을 마음속에 새기게 된다.

우리 학교에서 우리 말과 글을 배우면 민족문화전통이 학생들의 마음속을 채우게 된다. 이 학생들이 자라서 마침내 민족문화의 정수를 이어받게 되는것이다. 그러니 우리 말 어원사전을 읽어보면서 말의 의미와 유래를 되새겨보는것이 좋다. 그러면 우리 말이 얼마나 소중한지에 대해 생각하게 될것이며 우리 말을 옳바르게 써야겠다는 생각도 들것이다.

우리 말의 유래를 알면 언어세계가 넓어지고 언어가 담는 우리 민족의 력사와 문화, 인간생활을 더 깊이 알고 어휘력도 늘어난다.

동포들과 학생들이 우리 말을 탐구하는 재미를 통하여 지혜를 키우며 새것을 아는 기쁨을 느껴주었으면 하는것이 나의 소망이다.

【경력】1966년 3월 교또조선중고급학교 졸업(9기생), 1970년 3월 조선대학교 문학부 졸업(12기생), 문학부 및 문학력사학부 학부장, 조선어연구소 소장 력임, 현 한글능력검정협회 상담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교수, 언어학박사

(조선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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