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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군용사들을 위훈에로 불러일으켜/조국해방전쟁시기 태여난 전시가요들

2023년 06월 24일 08:11 군사 공화국

보병총과 원자탄의 대결로 비유되군 하는 조국해방전쟁에서 조선은 세계 《최강》을 자랑하던 미제를 때려부시는 력사의 기적을 안아왔다. 전쟁의 3년간에 창작된 수많은 전시가요들은 인민군용사들을 위훈에로 불러일으켰다.

전쟁의 첫날부터 온 나라에

조국해방전쟁시기 제일먼저 불리운 전시가요는 《조국보위의 노래》이다.

1950년 6월의 노래라고도 불리울만큼 삽시에 온 나라를 휩쓴 이 노래는 전쟁이 발발하기 몇달전에 세상에 나왔다.

가요 《조국보위의 노래》의 작사자인 조령출선생과 작곡가 리면상선생이 조국을 보위할데 대한 노래를 만들어야 하겠다는 강한 충동을 받은것은 전쟁이 일어나기 전부터였다. 후날 력사가들이 《전쟁전의 작은 전쟁들》이라고 일컬었던것처럼 미제와 리승만도당의 무력간섭과 침략책동으로 하여 38선일대에서는 크고작은 전투들이 끊임없이 벌어졌으며 사실상 그때부터 이미 전쟁상태에 들어간것이나 다름없었다.

1950년 3월 어느날 퇴근길에 올랐던 시인과 작곡가는 가두고성기앞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귀를 기울이고 서있는 광경을 보게 되였다. 가두고성기에서는 괴뢰군이 또다시 38선을 넘어 공화국북반부지역에 침공하여 온갖 만행을 감행한데 대한 보도가 흘렀다.

격분을 금할수 없었던 두 창작가는 약속이나 한듯 집으로가 아니라 창작실로 발걸음을 옮기였다.

다시는 빼앗길수 없는 귀중한 조국에 대한 열렬한 사랑, 김일성장군님께서 찾아주시고 꿈같은 행복을 안겨주신 삶의 보금자리를 짓밟으려는 원쑤에 대한 불타는 증오심이 그대로 가사가 되고 선률이 된 첫 전시가요 《조국보위의 노래》는 이렇게 전쟁이 일어나기 석달전에 창작되였다.

1950년 6월 25일, 미제가 끝끝내 침략전쟁의 불을 지르자 이 노래는 전체 인민을 조국수호의 성전에로 불러일으키는 우렁찬 함성이 되여 온 나라를 진감시키였다.

로동자, 농민, 청년학생들이 이 노래를 부르며 앞을 다투어 용약 인민군대입대를 열렬히 탄원해나섰으며 해방후 일제를 대신하여 기여든 미제의 군화발밑에서 신음해온 남조선의 애국적청년들도 이 노래를 새기며 너도나도 의용군에 입대하였다.

인민군용사들은 적들의 침공을 좌절시키고 즉시적인 반공격전에로 넘어갈데 대한 김일성주석님의 명령을 높이 받들고 남으로 진격하였다.

조국을 지키기 위해 견결히 싸우는 인민군용사들

이때 전선에서는 새로운 전시가요 《진군 또 진군》이 힘있게 울려퍼졌다.

진격의 대오에 선 병사가 된 격정을 안고 한 종군작곡가가 전쟁개시후 7일만에 창작한 이 노래는 서울을 해방하고 한강을 건너 수원으로, 금강방어선을 돌파하여 대전해방전투를 승리적으로 결속하고 대구와 진해, 부산으로 줄기차게 이어진 진격의 길에 우렁차게 울려퍼졌다.

남조선인민들의 환영을 받는 인민군용사들

멸적의 함성이 노래로

일명 《섬멸의 노래》라고도 불리운 전시가요 《결전의 길로》는 누구나 피가 펄펄 끓게 하는 판가리복수전의 노래였다. 주석님께서는 이 노래를 거듭 들으시고 노래 《결전의 길로》는 들을수록 멸적의 힘이 나고 승리의 신심이 솟구치게 한다고, 이 노래는 백만대적이 덤벼들어도 끄떡없이 영웅적으로 싸워 이기는 우리 인민군대의 불굴의 기상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높이 평가해주시였다.

이 노래만이 아닌 수많은 전시가요들이 가렬처절한 전투마당에서 태여났다.

해방후 시 《백두산》을 창작한 혁명시인 조기천선생은 가벼운 안개도 힘겨워 오르지 못하는 높은 령, 적의 요새가 겹겹이 도사린 고개를 단숨에 돌파한 인민군용사들의 투쟁소식을 끝없는 격동속에 받아안고 지체없이 불비쏟아지는 문경고개에 올라 붓을 달려 세계적인 명곡 《문경고개》를 썼다.

어느한 해군군관과 작곡가는 단 4문의 포로 5만여명의 대병력과 수많은 함선, 비행기 등을 동원한 미제의 인천상륙을 3일간이나 저지시킨 월미도 해안포중대원들의 투쟁모습을 가요 《해안포병의 노래》에 담았다.

달도 없는 야밤에 전선으로 달리는 인민군수송전사들의 전투적이고 랑만적인 투쟁모습은 《자동차운전사의 노래》를 낳았고 적후에서 용감히 싸운 소년들의 위훈을 담은 《소년빨찌산의 노래》가 태여났다.

이렇게 시인이나 작곡가의 창작적환상에서가 아니라 희생된 전우들의 복수를 부르는 병사들의 웨침과 원쑤를 기어이 쳐물리칠 맹세를 다지는 용사들의 멸적의 함성이 그대로 노래가 된 전시가요들은 삽시에 전 전선에 퍼졌고 무서운 힘의 폭발로 전선과 후방을 진감하였다.

노래 《문경고개》를 부르며 유명무명의 영웅전사들이 조국의 고지들에 청춘의 붉은 피와 목숨을 바쳤고 《비행기사냥군조의 노래》를 부르며 인민군용사들은 미제의 거만한 공중비적들을 추풍락엽으로 만들었으며 영용한 해군용사들은 《해안포병의 노래》를 부르며 바다의 《제왕》이라고 으시대던 미제의 침략선들을 단숨에 수장시키는 빛나는 위훈을 세웠다.

이처럼 세계전쟁사에 그 전례를 찾아볼수 없는 인민군용사들의 혁혁한 위훈은 모두 전시가요와 함께 태여났다.

(조선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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