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어머니조국과 운명을 함께 하며 창창한 미래에로 가는 총련의 힘찬 보무는 그 무엇으로도 막을수 없을것이며 그 성스러운 려정은 우리 공화국의 높은 존위와 더불어 찬연히 빛나게 될것입니다.》
자본주의 한복판에서 공화국기를 높이 날리며 굴할줄 모르는 조선의 정신과 기상을 과시하여온 총련, 조국청사에 깊은 자욱을 남긴 자랑스러운 로정을 돌이켜보는 동포들의 심정은 류다르다.그들은 말한다.위대한 조국이 있어 바람세찬 이역땅에서 강의한 조선사람, 그 영예를 떨쳐왔다고.
애국의 더운피 바쳐가겠다
그들은 80명이였다.
위대한 조선로동당에 대한 우리 인민의 절대적인 신뢰심과 다함없는 고마움의 정이 온 나라 강산에 더욱 뜨겁게 넘쳐흐르던 지난해 10월 조국으로 달려온 조선로동당창건 80돐경축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 충성의 편지이어달리기대표단 성원들은 재일본조선청년동맹(조청)과 재일본조선류학생동맹(류학동)의 일군들이였다.
혁명의 수도 평양에서 성대히 진행되는 조선로동당창건 80돐 경축행사들에 자기들이 참가하게 되였다는것을 알았을 때 그들은 흥분을 금치 못하였다.모두의 뇌리에 떠올랐다.
오늘도 조국인민들이 기억하는 총련의 모습은 손에손에 공화국기를 들고 은혜로운 어머니조국의 품에 안겨 감격에 울던 재일동포들과 애국적상공인들의 이름으로 불리워진 창조물들, 충성의 붉은 편지를 안고 달려오던 조청원들의 흐름이라고 하신 경애하는 원수님의 간곡한 말씀이.
총련 조선대학교 외국어학부 학생 조유나의 심정은 남달랐다.그의 외할아버지는 1982년 어버이수령님의 탄생 70돐을 경축하여 조국으로 달려왔던 재일동포들의 충성의 편지전달계주단(당시) 단장이였다.외손녀가 조국으로 가게 되였다는 소식을 듣고 외할아버지는 말하였다.
《정말 감개무량하구나.그때의 광경이 아직도 눈에 선한데 이제는 네가 그길에 나섰구나.바로 그것이 애국의 대를 이어나가는 모습이지.우리 동포들모두의 충성의 결의를 꼭 아뢰여라.》
대표단결성식에서 총련중앙상임위원회의 책임일군은 간곡히 당부하였다.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 조선로동당창건 80돐에 즈음하여 전체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의 열화와 같은 마음을 담은 충성의 편지를 삼가 증정하는 이 중대한 임무를 동무들에게 맡깁니다.》
이역의 청년일군들의 가슴은 세차게 설레이였다.
어서 가자,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계시는 그리운 조국으로, 영광의 대축전장으로!
이렇게 되여 그들은 조국땅에 발을 내디디게 되였다.지난해 10월 7일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 조선로동당창건 80돐에 즈음하여 삼가 올리는 충성의 편지증정모임이 진행되였다.
모임장소인 김일성경기장을 향해 달리는 그들의 귀전에 조국인민들의 열띤 목소리가 들려왔다.
《총련! 총련! 잘 싸운다!》
이역의 청년들은 눈굽이 쩌릿해졌다.
어머니조국이 우리를 성원한다.총련을 한시도 잊지 않고있는 조국인민들이여, 정말 고맙습니다!
조청 가고시마현본부 부장 리옥희는 이역에서 애국의 대를 이어나가는 우리 새세대들의 모습을 조국인민들에게 보여주게 된것이 정말 눈물나도록 기뻤다고 말하였다.
총련의 새세대들이라고 반갑게 맞아주고 뜨겁게 포옹하며 살뜰한 정을 부어주는 조국인민들의 모습을 통해 그들은 경애하는 원수님의 다심하신 손길을 뜨겁게 느끼였다.
대표단성원들은 경애하는 원수님을 몸가까이 모시고 조국을 위해 특출한 공훈을 세운 영웅들, 공로자들과 나란히 초대석에 앉아 경축행사들에 참가하는 특전을 누리였다.
규모와 형식에 있어서나 그 정치사상적수준과 예술적경지에 있어서 최상인 조선로동당창건 80돐경축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조선로동당 만세》, 웅장한 열병식과 군중시위 및 홰불야회 등은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이끄시는 조선로동당의 위대함과 그 무엇으로도 깰수 없는 수령과 인민대중의 일심단결의 위력을 가슴벅차게 느끼게 해주었다.
강국의 징표는 결코 령토의 넓이와 인구수, 경제력에 있는것이 아니라 수령의 위대성에 있다는 철리가 가슴속깊이 새겨졌다.
위대한 조선로동당의 80년력사가 있어 총련의 70년력사도 빛나고 우리 재일동포들도 이역에 사는 위대한 인민으로, 강한 조선사람으로 떳떳이 살아갈수 있는것이 아닌가.
출판기관인 학우서방에서 조청사업을 하는 문희영은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에서 출연자들과 관람자들이 호흡을 맞추어 애국의 노래를 합창하는 모습을 보면서 사회주의조국의 강대함, 위대한 단결력을 체감하던 순간을 영원히 잊을수 없다고 진정을 터놓았다.조국방문기간 그들이 목격한 눈부신 현실은 곧 애국에 대한 생동한 강의였다.보고 느낀 모든것이, 받아안은 사랑이 그대로 애국의 자양분으로 되였다.
모든것이 기적과도 같다.우리 조국은 기적으로 충만된 나라이다.
이것이 모두의 한결같은 심정이였다.
인민의 꿈과 리상이 당과 국가정책의 제1순위에 놓여지고 그 실현을 위해 멸사복무하는 국풍과 지방진흥의 새시대, 그 거창한 실체들을 직접 보고 체감하면서 대표단성원들은 형언할수 없이 감동되였다.사회주의건설의 어렵고 힘든 초소에 탄원하여 애국의 구슬땀을 흘리는 조국의 청년전위들의 숭고한 사상정신세계를 본받아 자기들도 경애하는 원수님과 사상과 숨결을 같이하는 청년핵심으로 더욱 튼튼히 준비해나갈 의지도 더욱 굳세여졌다.
류학동 교또지방본부 위원장 조영기는 조국방문기간 우리 80명이 다진 결의를 전체 동포청년들의 결의로 승화시키겠다고 다짐하였다.머지않아 졸업하게 되는 조선대학교 문학력사학부 학생 한명복은 조국과 총련이 부르는 애국의 초소로 솔선 달려나갈 결심을 피력하였다.
결성세대가 모진 풍파속에서 창조하고 오랜 세월 순결하게 고수해온 충실성의 전통, 단결의 전통, 애국애족의 전통, 총련의 이 본태를 굳건히 이어나가겠다는것이 그들의 한결같은 의지였다.
몸은 비록 이역땅 일본에서 살아도 사회주의조국을 열렬히 사랑하며 강대한 총련을 건설하는 투쟁에서 선봉대, 돌격대의 역할을 다하겠다고, 해외동포들의 전렬에서 주체조선의 국위와 명성을 빛내이는데 특색있게 이바지해나가겠다고 하면서 동포청년들은 돌아갔다.지금 그들은 그 결의를 실천하고있다.
어머니조국을 끝까지 받들어
지금으로부터 근 60년전의 이야기이다.
때는 1968년 1월하순 어느날 총련 조선신보사의 일과는 보통과 다름없이 흐르는듯싶었다.
그런데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우리 공화국의 령해에 도적고양이처럼 기여들어 정탐행위를 감행하던 미제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가 영용한 조선인민군 해군에 의해 나포되였다는것이였다.
《푸에블로》호의 나포, 그것은 우리 공화국의 정정당당한 자위권의 행사였으며 새 전쟁도발에 미쳐날뛰는 침략자들에 대한 응당한 징벌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제는 《푸에블로》호가 《공해상에서 나포》되였다느니, 간첩행위를 하지 않았다느니 하면서 도적이 매를 드는 격으로 우리를 위협해나섰다.
고급학교를 졸업한 후 동무들과 함께 조선신보사에 입직하여 문선공으로 일하던 한육구동포는 그때를 이렇게 회억한다.
《모두가 긴장한 표정이였지요.또다시 조국에서 전쟁이 일어나는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였습니다.》
그러나 미제는 영웅조선을 절대로 놀래울수 없었다.
며칠후 《조선신보》에는 《미제침략자들은 함부로 날뛰지 말라!》라는 표제를 달고 총련중앙상임위원회 성명이 발표되였다.
전해야 할 소식이 너무도 많아 신문을 조간, 석간으로 발행하지 않으면 안되였다.조국의 주요신문들에 실린 주요사론설, 론평 등을 따로 묶은 신문도 수시로 찍어냈다.말하자면 호외였다.
당시 조선신보사에서는 《조선신보》외에도 《조선청년》, 《조선녀성》 등 각 단체 기관지들도 찍어내고있었다.
평소에도 일감이 많았는데 《푸에블로》호사건으로 더 큰 부하가 걸리게 되였다.
당시는 활판인쇄방식이여서 기자가 펜으로 쓴 원고가 전달되면 문선공들이 필요한 활자를 골라 틀에 배렬하군 하였다.보통때에도 무척 품이 많이 드는 일이였다.한육구동포도 이 일을 하였다.
그런데 정세가 긴장해져 거의 종일토록 신문을 인쇄하여야 하였으니 얼마나 힘들었겠는가.매일 밤늦게 지어 이른새벽까지 그 일을 하고나면 온몸이 녹초가 되군 하였다.빈혈로 쓰러지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물러서지 않았다.일터를 떠나지 않았다.조국의 승리를 믿어의심치 않았기때문이다.
당시 조선신보사 직원의 3분의 2가 조청원들이였다.여느때면 하루일을 마치고 조국으로 귀국하는 동포들을 환송하는 역전에 달려나가 영생불멸의 혁명송가 《김일성장군의 노래》를 우렁찬 취주악으로 연주하던 그들이였다.《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를 탐독하며 굴할줄 모르는 정신으로 무장하던 이역의 새세대들이였다.
정세는 비록 엄혹하지만 두려울것은 없다, 우리 조국은 반드시 이긴다, 우리 조청원들이 한몫할 때가 왔다고 하면서 그들은 억척같이 버티였다.
한육구에게는 조선신보사에서 함께 일하는 과정에 사랑이 무르익어 일생을 약속한 처녀가 있었다.결혼식날자까지 잡았었다.3월 13일이였다.하지만…
(정세가 극도로 긴장한데 무슨 결혼식인가.미루자.)
두 청춘남녀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알게 된 조선신보사의 한 일군이 그들을 찾아와 머리를 저으며 말하였다.
《아니, 바로 이런 때일수록 오히려 보란듯이 결혼식을 해야 하오.걱정마오.김일성장군님께서 이끄시는 우리 조국은 필승불패요.》
이렇게 류다른 환경속에서 진행한 결혼식의 매 순간순간을 80고령의 오늘까지도 한육구동포는 생생히 기억하고있다.
조선신보사 일군들과 동무들은 며칠 휴가를 받아 친정집에 갔다오라고 신혼부부의 등을 떠밀었다.그 성의에 못이겨 신혼려행을 결심하였던 한육구는 신보사에 나가보았다가 그만 온몸이 굳어졌다.
모두가 얼굴이 퉁퉁 붓고 정상이 말이 아니였던것이다.하지만 동무들은 피로한 기색을 애써 감추고 웃음지으며 다시한번 결혼을 축하한다고 말하는것이였다.한육구는 말없이 일손을 잡았다.
신혼부부가 세낸 집은 합숙처럼 되였다.세대주가 거의나 퇴근하지 않다보니 조선신보사에서 밤늦게까지 일을 하고 집에 돌아가지 못한 안해의 녀동무들이 들어와 자군 하였던것이다.
마침내 그해 12월하순 미제는 굴복하였다.
《조선인민앞에 미제는 또다시 무릎을 꿇었다!》
《조선신보》는 이런 큼직한 제목으로 승리의 보도를 전하였다.…
《힘들었지만 보람있었수다.우리의 지면에 담은 영웅조선의 모습이 동포들에게 힘을 준다고 생각하니 말이요.》
그 나날을 떠올리며 한육구동포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확신에 넘친 어조로 말하였다.
《비상히 강대해지는 어머니조국과 더욱 굳건해지는 총련조직의 높은 존엄과 위상을 빛내이는 길에 우리 후대들도 모든것을 다 바쳐갈것입니다.》
(조선신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