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6일부 《로동신문》은 《조선신보》창간 80돐에 즈음하여 글을 발표하였다. 전문은 다음과 같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자본주의 한복판에서 공화국기를 높이 날리며 굴할줄 모르는 조선의 정신과 기상을 과시하여온 총련은 결성으로부터 오늘에 이르는 장구한 년대들에 어머니조국과 운명을 함께 하며 청사에 깊은 자욱을 남기였습니다.》
해외교포신문의 빛나는 본보기, 재일조선인운동의 기수, 나팔수, 총련일군들의 믿음직한 방조자…
이것은 총련중앙상임위원회기관지 《조선신보》에 대한 조국인민들과 재일동포들의 정에 넘친 부름이다.
얼마전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은 《조선신보》창간 80돐을 뜻깊게 기념하였다.그들은 절세위인들의 극진한 사랑과 은정속에서 애국운동의 승리의 력사를 수록해온 빛나는 로정, 재일조선인운동의 힘찬 전진을 떠밀어온 자랑스러운 행로를 감회깊이 더듬어보았다.그리고 그려보았다.부강번영하는 조국과 더불어 강성할 총련의 밝은 미래, 《조선신보》의 양양한 전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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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해방과 더불어 재일동포들이 제일먼저 시작한것이 학교를 내오고 신문을 발간하는 사업이였다.그해 9월에 벌써 나고야조선초급학교와 도꾜조선제4초중급학교를 비롯하여 여러 학교가 생겨났다.10월초순에는 《조선신보》의 전신인 《민중신문》이 창간되였다.빼앗겼던 우리 말과 글을 다시 찾아 자녀들에게 익혀주려는, 자기의 신문을 가지고싶어하는 동포들의 열망은 이토록 컸다.
예로부터 시작이 절반이라고 하였지만 신문발간은 말처럼 쉬운것이 아니였다.당시 동포사회에는 신문기사를 써본 경험이 있는 사람 즉 기자활동을 할수 있는 사람이 거의나 없었다.자금과 자재도 문제였다.제일 어려운것은 일본땅에서 우리 글활자를 도저히 구할수 없는것이였다.이런것으로 하여 창간이후 수개월간 등사기로 신문을 찍어내지 않으면 안되였다.
게다가 미일반동들은 갓 태여난 재일조선인들의 신문을 요람기에 말살하기 위해 갖은 비렬한 책동에 매여달리였다.
이런 어려운 조건에서도 이역의 언론인들은 절세의 애국자이시며 항일의 전설적영웅이신 김일성장군님께서 조국에 개선하신 감격적인 소식과 새 민주조선건설에 떨쳐나선 조국인민들의 들끓는 기세를 신속히, 격조높이 전함으로써 재일동포들에게 커다란 긍지와 자부심을 안겨주고 권리옹호를 위한 투쟁에로 힘있게 고무하였다.그들의 활약으로 절세위인에 대한 흠모심, 조국인민들과 생사고락을 함께 하려는 지향이 동포사회에 차넘쳤다.
영광스러운 우리 조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창건된 후 미일반동들은 공화국의 국장과 국기의 공식사용과 해설선전을 무작정 금지시키였다.이러한 때 《조선신보》는 결연히 공화국기사수투쟁에 앞장섰다.신문은 재일동포들에게 있어서 승리의 신심을 안겨주는 고무자, 정신적량식을 주는 벗이였다.
재일조선인운동의 초창기는 참으로 간고하였다.
조선전쟁도발을 앞두고 미제는 재일본조선인련맹(조련)과 재일본조선민주청년동맹을 강제로 해산하고 수많은 일군들의 정치활동을 금지시키는 폭거를 저질렀다.《조선신보》는 재일조선인운동의 선전교양자적역할뿐 아니라 조직동원자적역할까지 맡아안았다.
미제가 끝끝내 조선전쟁을 도발하였다.조국앞에 엄혹한 시련이 닥쳐왔다.이 준엄한 시기에 《조선신보》는 위대한 수령님의 력사적인 방송연설 《모든 힘을 전쟁의 승리를 위하여》의 내용을 신속히 보도하고 영웅적조선인민군의 혁혁한 전과를 전하였다.《조선신보》를 통해 조국인민들의 투쟁소식을 알게 된 재일동포들은 조국사수투쟁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섰다.
악에 받친 미일반동들은 조선전쟁을 일으킨지 두달도 안되여 이 신문을 강제페간시키였다.분격한 언론인들은 펜을 쥐였던 손에 항거의 마이크를 틀어잡고 거리로 달려나가 격렬한 투쟁을 벌리였다.2년만에 신문은 복간되였다.
해방직후의 창간때에도 어려웠지만 복간때에는 더욱 어려웠다.원쑤들이 신문을 페간시키면서 인쇄기자재들을 깡그리 파괴하고 빼앗아갔으므로 모든것을 새로 마련하지 않으면 안되였다.그중에서도 제일 난문제가 바로 활자였다.
밤을 밝혀가며 나무로 활자를 깎고 끼니를 번지며 조판을 하느라 신보사성원들의 눈에는 피발이 섰다.
(아, 활자만 있었으면!)
모두가 이런 생각에 사무쳐있었다.
1953년 3월 아직 가렬한 전쟁이 한창이던 그 준엄한 시기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선신보사에 국문활자를 보내주실줄을 누군들 생각이나 할수 있었으랴.
조국에서 보내온 함의 뚜껑을 열었을 때 기자, 편집원들속에서는 《야!》 하는 탄성이 울려나왔다.정성담아 포장한 여러가지 호수의 윤기나는 국문활자들이 가득 들어있었던것이다.
모두가 너무 기뻐 서로서로 손을 부여잡고 어쩔줄 몰라하였다.난관과 애로가 아무리 겹쌓여도 눈물을 보이지 않던 굳센 사람들의 눈가에 뜨거운것이 맺히였다.
어버이수령님의 따뜻한 손길에 의해 수만리길을 거쳐 전해진 국문활자들은 천금보다 귀중한 사랑의 생명소였다.
이역의 언론인들의 가슴마다에는 강력한 애국의 무기, 멸적의 총탄인 이 활자로 원쑤들의 악랄한 탄압과 반동공세를 짓부실 의지가 샘솟았다.
후날 조선신보사의 책임일군으로 성장한 한 동포는 그때의 심정을 이렇게 회억하였다.
《우리는 펜으로가 아니라 온넋으로 글을 썼다.일편단심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을 충성으로 받들려는 신념의 맹세를 담아.》
재일조선인운동이 진통을 겪던 어려운 시기에 조선신보사 기자, 편집원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내놓으신 로선전환방침을 견결히 옹호하고 널리 해설선전함으로써 주체적인 해외교포단체인 총련을 결성하는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총련이 결성된 후 《조선신보》에는 이런 격조높은 글이 실리였다.
《우리들은 이제야 진실로 전체 조선인민이 걸어가는 승리에 찬 거창한 총로선우에 확고부동하게 올라서게 되였다.
재일동포들은 이 총련합회를 성공적으로 성취함으로써 영광스러운 조국-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수령의 배려에 보답하는 첫 사업에서 위대한 승리를 획득하였다.
이것은 오로지 선진적인 조국과 영명한 수령 김일성원수를 모시는 우리들만이 능히 달성할수 있는 자랑이며 또 하나의 승리이다.…》
총련의 결성과 함께 《조선신보》는 총련중앙상임위원회의 기관지로서 새로운 발전의 길에 들어서게 되였다.
《조선신보》는 절세위인들의 불멸의 령도업적과 위대성을 널리 해설선전하는것을 주선으로 확고히 틀어쥐고 총련조직안에 주체의 사상체계, 령도체계를 확립하는데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또한 총련과 재일동포들의 리익과 의사의 대변자, 총련의 집단적인 선전자, 교양자, 조직자로서의 임무와 역할을 수행하여왔다.사회주의조국을 견결히 옹호하고 재일동포들의 권리를 튼튼히 지키며 세계 진보적인민들과의 국제적련대성을 강화하기 위한 투쟁도 힘있게 벌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혁명과 건설을 령도하시느라 그토록 바쁘신 속에서도 조선신보사 사업을 료해하시며 크나큰 사랑과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어느해 화창한 봄날 재일조선인기자단 단장으로 조국에 체류하고있던 조선신보사의 한 일군은 뜻밖의 영광을 받아안게 되였다.어버이수령님께서 외국의 한 국가수반을 위해 마련하신 국가연회에 참가하게 되였던것이다.조국의 몇몇 주요간부들만 참가하는 그 연회에 총련의 평범한 언론인인 자기를 불러주신것이 너무도 꿈만 같아 그는 좀처럼 마음을 진정하지 못하였다.
이날 연회참가자들과 잔을 찧으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건강축원의 인사를 삼가 드리는 그를 알아보시고 곁에 있는 외국수반에게 총련에서 온 기자단 단장이라고, 우리의 혁명동지라고 소개해주시였다.
순간 그는 어깨를 세차게 들먹이였다.이역의 언론인들에 대한 어버이수령님의 크나큰 믿음이 가슴을 울려주었기때문이였다.
이 가슴뜨거운 사실을 알게 된 조선신보사 기자, 편집원들도 감격의 눈물로 옷깃을 적시였다.
언제인가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총련일군들에게 이렇게 간곡히 가르치시였다.
동무들도 고리끼가 쓴 장편소설 《어머니》를 보았겠지만 거기에는 혁명이라는 말이 한마디도 없으나 소설을 읽고나면 혁명을 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조선신보》도 사람들의 감정과 기호에 맞는 소리를 하여 사람들스스로가 《조선신보》를 보고 진리를 찾게 해야 한다.…
신문을 동포들의 준비정도를 고려하여 다양하면서도 수가 높게 편집할데 대한 문제, 천편일률적인 편집방식에서 벗어나 대상화, 통속화할데 대한 문제 등 그이의 고귀한 가르치심들은 《조선신보》가 침체를 모르고 동포대중의 사랑을 받는 신문으로 끊임없이 강화발전될수 있게 한 휘황한 등대로 되였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조선신보》가 총련의 애국위업을 추동하는 위력하고 종합적인 언론보도 및 선전교양수단으로서의 역할을 다하도록 걸음걸음 이끌어주고계신다.이번에 《조선신보》창간 80돐을 맞으며 공로있는 일군들과 기자, 편집원들에게 공훈기자칭호와 국가수훈의 영예를 안겨주시고 기념우표까지 발행하도록 하여주신데도 총련의 언론인들에 대한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각별한 은정이 어리여있다.
이처럼 뜨거운 사랑과 현명한 령도의 손길아래 《조선신보》는 총련애국위업의 강화발전에 적극 이바지하는 정치사상적무기, 재일동포들의 투쟁과 생활의 길동무로 될수 있었다.
몇해전 미야기현에서 사는 한 동포로인이 조선신보사앞으로 편지를 보내여온적이 있다.총련 도호꾸조선초중고급학교에서 오래동안 사업하였던 그는 《조선신보》에 실리는 기사와 사진들에서 쟁쟁한 총련일군으로, 이름있는 예술인으로 성장한 옛 제자들의 이름과 모습을 찾아보고 환성을 올린적이 한두번이 아니였다고 한다.그럴 때가 제일 기쁘다고 하면서 로인은 애국열의로 끓어번지는 각지 동포사회의 소식을 신속히, 자상히 알려주는 《조선신보》가 있어 스승과 제자들사이의 반가운 상봉은 계속되고있다고, 우리 신보가 제일 좋다고 자기의 심정을 터놓았다.
《조선신보》를 보아야 총련조직이 어떻게 움직이고있고 어떤 사업을 해나가야 하는가를 알수 있다.《조선신보》를 보지 못하면 동포들의 마음의 문을 열수 없다.우리에게는 위대한 조국이 있다는 신심을 북돋아주고 총련조직의 힘이 크다는것을 느끼게 하는 무기가 바로 《조선신보》이다.…
동포들속에서 울려나오는 진심의 목소리, 찬사의 목소리이다.
창간이후 오늘에 이르는 80년세월 반동들의 온갖 파괴암해책동과 악랄한 폭압공세를 짓부시며 재일조선인운동의 승리적전진을 힘있게 떠밀어온것으로 하여 《조선신보》는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의 두터운 사랑과 신뢰를 받고있다.
그리운 조국소식과 함께 재일조선인운동의 새로운 전성기를 열어놓기 위해 떨쳐나선 총련조직과 동포사회의 숨결이 글줄마다, 사진마다 느껴지는 《조선신보》는 재일동포들의 마음의 길동무로 되고있다.
평양에 상주하는 조선신보사 기자들은 창조와 건설로 들끓는 조국의 방방곡곡을 찾아 우리 인민의 보람찬 투쟁모습을 글과 사진에 담고있다.그들이 전송하는 기사와 사진들은 재일동포들은 물론 일본인민들과 세계 여러 나라 인민들에게 주체조선의 참모습을 전하고있다.
《조선신보》지면에 실리는 여러 기사는 국제사회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있다.많은 나라 언론들이 그 내용을 집중적으로 인용보도하고있다.
조국과 운명을 함께 해온 격동의 나날에 조선신보사는 우리 공화국의 최고훈장인 김일성훈장을, 《조선신보》는 국기훈장 제1급을 수여받았으며 수많은 일군들과 기자, 편집원들이 김일성상계관인으로, 로력영웅, 인민기자, 공훈기자로 자라났다.
《민중신문》이라는 제호로 창간되여 《해방신문》, 《조선민보》, 《조선신보》로 그 이름이 여러번 바뀌였지만 신문의 애국적인 성격과 내용에서는 변함이 없다.
지금 조선신보사의 전체 일군들과 기자, 편집원들은 결성세대의 정신과 전통을 계승하여 위대한 김정은시대의 새로운 주체적해외언론사를 자랑스럽게 써나갈 굳은 의지를 가다듬고있다.재일조선인운동의 새 전성기개척의 도약대를 마련하는데서 성스러운 사명과 역할을 다해나갈 결의에 넘쳐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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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세계에서 출판보도물의 수는 이루 헤아릴수 없다.그중에는 해외교포들의 권리와 리익을 대변하는것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조선신보》처럼 자기 조국에 그토록 참답게, 그토록 충실하게 복무하는 위력하고 권위있는 해외교포출판보도물은 그 어디에도 없다.
(조선신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