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학동 80년의 궤적⑤1990년대〉차별시정을 요구하는 운동을 전개
2025년 10월 01일 09:00 단체・사업체재일본조선류학생동맹(이하 류학동)은 올해 9월에 결성 80돐을 맞이한다. 류학동은 일본의 대학과 전문학교에 다니는 재일조선인학생들을 위한 단체로서 그 원류는 일제식민지시기에 일본으로 류학하여 일본땅에서 조선독립을 웨치며 투쟁한 조선류학생들의 활동에 있다. 총련의 산하단체들가운데서도 가장 오랜 력사를 가진 류학동은 이 조선류학생들의 뜻을 이어받아 오늘에 이르기까지 일관하게 조국과 민족, 동포사회의 발전에 이바지하고 재일동포들과 조선류학생들의 민주주의적민족권리옹호를 위하여 활동해왔다. 80년의 력사를 되돌아보는 이번 련재의 집필은 류학동중앙이 맡는다.(월1번 게재)
조선학교출신생의 대학입학자격문제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전반에 걸쳐 조선학교 학생들의 JR통학정기권문제나 일본고등학교야구련맹(고야련), 전국고등학교체육련맹(고체련) 가입문제 등 민족교육에 대한 차별의 시정을 요구하는 운동이 활발히 벌어졌다.
류학동도 민족교육권옹호를 위한 운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조선학교출신생의 대학입학자격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힘을 기울이였다.
1990년대 중반까지 조선고급학교 졸업생이 수험할수 있는 대학은 공립 및 사립을 포함하여 40%정도에 불과했다. 국립대학교에 이르러서는 한곳도 존재하지 않았다. 많은 경우 《대학입학자격검정(大検)》을 수험해야 했는데 1999년 7월까지는 대검의 수험자격에도 《中卒이상》이라고 명시되여 각종학교인 조선학교 졸업생은 수험자격이 인정되지 않았다. 그로 인해 일본대학입시를 희망하는 학생들은 일본의 야간제고등학교에도 재학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1990년대 중반이후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였다.
1993년 11월 류학동교또가 《조선학교의 대우개선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전개하였고 이후 운동은 일본각지에도 확산되였다.
1994년 류학동교또가 중심이 되여 《민족학교 출신자의 京大수험자격을 요구하는 련락협의회(민수련)》를 결성하였다. 민수련은 95년 6월 교또대학에 1,505명몫의 서명과 요청서를 제출하였다. 8월에는 대표가 유엔인권소위원회에서 당시의 차별실태에 대해 발언하였다.
1996년에는 민수련의 조직을 확대하여 《민족학교 출신자의 대학수험자격을 요구하는 전국련락협의회(민전련)》가 결성되었다. 조선학교에 대한 처우개선을 호소하기 위하여 민전련은 96년 8월, 98년 8월에 유엔인권소위원회에 대표를 보내고 98년 5월에는 유엔아동권리위원회에 대표를 보내였다. 또한 전국국공립대학의 입시자격상황을 조사하고 문부성과 직접 교섭도 하였다.

1996년 유엔인권소위원회에서 발언하는 대표들
2003년 3월 6일 문과성은 미국과 영국의 학교평가기관의 인정을 받은 인터나쇼날학교에 입시자격을 부여하고 조선학교는 계속 배제하는 방침을 발표하였다. 이에 항의하여 도꾜의 청상회, 조청, 류학동이 합동으로 13일부터 1주일간 중의원회관앞에서 시위행동을 벌렸다.

문과성앞에서 시위행동을 벌렸다.(1997년)
문과성은 이해 9월 일정한 《탄력화조치》를 발표하였다. 《각 대학이 개별심사를 통해 인정한자》에게 대학입시자격을 부여한다는 내용이였다. 이에 따라 거의 모든 국립대학은 입시자격을 인정하게 되였고 공립 및 사립 대학도 이 흐름을 따랐다.
이처럼 류학동의 운동은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다. 류학동은 현재도 민족교육권옹호를 위한 다양한 운동을 전개하고있다.
【류학동중앙】
수험자격문제의 그후
조선학교출신생의 대학입학자격문제는 2003년에 큰 전진을 이룩하였으나 결코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현재도 조고출신 학생에 대한 입시거부사건이 발생하고있다.
류학동 효고, 교또, 오사까는 2021년에 3부현내 160개 대학의 입시요강을 조사하였다. 《공모추천입시》에 한정하여 적절한 기술이 되여있는지를 확인하였다.
그후 재일본조선인인권협회의 협력을 받으며 문제가 있었던 대학에 대한 앙케트조사를 실시한 결과 조선고급학교 학생들이 여전히 불안정한 립장에 놓여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였다. 이러한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조선학교 졸업생들의 대학수험자격에 대한 견해와 립장을 밝히지 않고 사실상 각 대학의 판단에 맡기고있는 문과성의 태도에 있다고 할수 있을것이다.
년표
1991.8.1-4 | 동포학생페스티벌 《마당91》개최 |
1993.10 | 류학동 히로시마지부 재건 |
1993.11 | 류학동간또, 조선대학교, 일본인학생들과 공동주최로 《일조우호친선을 위한 프렌드십93》개최 |
1994.1 | 류학동오사까 《일조학생프렌드십콘서트》개최 |
1995.2-6 | 《한신아와지대진재》피해자구호운동 전개 |
1995.5.14 | 류학동 니시도꾜본부 결성 |
1996.6.11 | 류학동 가나가와현본부 결성 |
1996.10.26 | 류학동 사이다마현본부 결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