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청결성 70돐〉애족애국운동의 선봉대로서의 역할을 다하여
2025년 08월 20일 12:00 단체・사업체조청결성이후의 70년간은 그 언제나 대원수님들과 원수님의 높은 뜻을 받들고 조직사상건설을 선행하면서 애족애국운동의 선봉대, 돌격대로서의 사명을 다해온 자랑찬 로정이였다.
튼튼한 조직적기반을 갖추어
조청은 자기앞에 부과된 과업을 수행하기 위하여 무엇보다 조직적기반을 닦는데 우선적인 힘을 돌렸다.
조청은 1961년부터 총련에서 모범분회창조운동이 벌어지는데 맞게 1963년에 1천여명의 참가밑에 조청반열성자 제1차대회를 열고 《모범반창조운동》을 대중적으로 벌려나갔다.
결성직후 동맹대렬을 조직사상적으로 튼튼히 꾸리는 방침을 내놓고 《맹원 50%획득 사회주의경쟁》을 벌린 조청은 김일성주석님의 1974년 9.24교시접수후 《조선청년찾기소조운동》(1975년) 등의 다양한 대중운동으로 광범한 청년들을 조직의 두리에 묶어세워나갔다.
공화국창건 30돐을 사업성과로 맞이하기 위한 《4개월혁신운동》(1978년)기간에는 수백개의 《혁신반》이 나오고 수많은 반들이 결성, 재건됨으로써 조청운동이 더욱 대중적으로 벌어지게 되였다. 공화국창건 40돐을 앞두고는 《우수지부, 우수반쟁취운동》이 전 동맹적인 운동으로 힘차게 전개되여 조청사업은 전례없는 앙양기를 맞이하게 되였다.
1980년대 후반에는 《2만명 조선청년방문담화 50일간 집중행동》을 벌린데 이어 《5만명 조선청년방문담화운동》을 전개하여 동포청년들속에 깊이 뿌리박는 조직으로 면모를 일신해나갔다.
동시에 조청은 다양한 형식과 방법으로 선전교양사업을 벌렸다.
공화국창건 20돐을 앞둔 《100일간혁신운동》과 조선로동당 제5차대회(1970년)를 향한 《120일간혁신운동》기간에는 주석님의 로작과 혁명력사를 비롯한 조국의 서적들을 학습하는 기풍을 세워 조청원들이 주석님의 혁명사상과 혁명전통으로 무장해나갔다.
1981년 10월 24일 김일성주석님과 김정일장군님께서 사로청 제7차대회 재일조선청년학생축하단과 재일조선청년학생들의 충성의 편지전달계주단을 친히 접견하여주신것은 재일조선청년학생들속에서 주석님과 함께 장군님을 높이 모시고 주체위업의 대를 이어나갈 결심을 다지는 중요한 계기가 되였다. 그후 조청조직에서는 도서 《김정일지도자》, 《자주시대의 향도성》에 대한 아침학습, 감상발표모임, 지상토론 등이 활발히 진행되였다.
2012년 조청원들은 대원수님들을 모시듯이 김정은원수님을 받들어모실 굳은 결심을 가다듬고 다양한 대중행사를 조직진행하면서 위대한 김정은시대에 더욱 위용떨쳐갈 조선청년들의 기개를 내외에 크게 과시하였다.
권익옹호, 동포봉사의 앞장에서
조청은 재일조선인들의 권익을 지키고 동포들을 위하여 봉사하는데 앞장섰다.
재일동포들이 제3국에로의 왕래권리를 쟁취한 후 1973년에는 조청대표단이 베를린에서 열린 제10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하였다. 주석님께서는 대표단 성원들에게 축하문을 보내주시여 고무적힘을 안겨주시였다.
조청원들은 조선학교 졸업생들의 대학수험자격획득투쟁, 고체련(高等学校体育連盟)가입투쟁 등 청년학생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투쟁에서 자기 역할을 수행하였다.
2000년대에 들어 조청은 고등학교무상화제도에서 조선고급학교를 제외하려는 일본정부의 교활한 책동의 본질을 동포청년들속에 해설침투하고 조선고급학교에 대한 제도적용을 촉구하는 가두선전사업과 서명운동에 그들을 불러일으켰다.
대학조청원들을 비롯한 동포청년들은 고등학교무상화적용을 요구하여 금요행동의 바통을 이어갔으며 노래 《소리여 모여라 노래여 오너라》를 제작보급하여 권익옹호투쟁을 앙양시키였다.
한편 조청은 《한사람천엔운동》을 비롯하여 조선학교를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사업도 다양하게 벌렸다.
조청은 70년간 동포청년들속에서 민족성을 고수하기 위한 활동을 일관하게 벌려왔다.
조청은 주석님탄생 70돐을 앞둔 300일간 애국혁신운동기간에 《청년학교 1천개설치운동》을 전개하여 1,060개소에 약 5천명을 망라하였다.

《청년학교 1천개설치운동》을 힘차게 벌릴데 대하여 호소하는 선전물

서머스쿨을 통하여 일교재학생들에게 민족의 넋을 심어주었다.
2000년대초에는 조고조청원들의 《1만명일교생동무찾기운동》, 일교생들의 여름강습(서머스쿨)과 문화공연도 진행하여 1만여명의 일교재학생들에게 민족의 넋을 심어주었다.
청년학교를 우리 말을 알아듣고 회화하며 쓸줄 아는 민족인재양성의 거점으로 더잘 꾸릴 전망밑에 청년학교강사와 담당일군들의 강습회를 해마다 조직하고 중앙적인 교재 《조선어》를 제작보급하여 청년학교를 체계적으로 운영하였으며 학생회활동을 통하여 련계를 맺은 일교생들을 여름강습에 망라하였다.
동포청년제일주의구호를 높이 들고
김일성-김정일주의는 본질에 있어서 인민대중제일주의라고 하신 김정은원수님의 말씀을 높이 받들고 조청은 동포들속에서 살아숨쉬며 멸사복무하는 조직으로 그 면모를 일신시킬 안목밑에 《조청봉사대》활동을 줄기차게 벌려나갔다.
조청은 시대의 변천에 따라 더욱 다양화되는 동포청년들의 요구를 실현하고 그들의 실리를 도모하는 사업을 벌렸다.
2000년대 도호꾸와 호꾸리꾸지방에서는 흩어져사는 동포청년들을 빠짐없이 조청에 망라하기 위해 지방위원회를 내오고 현본부를 넘어선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2018년에는 력사상 처음으로 조청 가고시마현본부를 결성하였다. 또한 최근시기 많은 중소본부들에서는 블로크마다 교류모임을 조직하고 합동운동을 활발히 전개함으로써 조청원들에게 교류의 마당, 배움의 마당을 제공하고있다.
스무살을 맞는 청년들을 위한 축하모임은 1980년대부터 오늘까지 계속 진행되고있다.

스무살을 맞는 동포청년들의 축하모임이 해마다 각지에서 진행되고있다.
특히 불의에 들이닥친 코로나재앙속에서도 《새시대개척24》를 힘차게 추진하여 조청의 활동을 동포청년들속에 더 깊이 들어가는 방문형, 봉사형으로 전환해나갔다.
조청의 70년의 력사는 령도자의 높은 뜻을 받들고 애족애국의 길에서 동포청년들의 힘을 하나로 모아 총련의 대를 꿋꿋이 이어온 력사이다.
조청은 그 자랑찬 전통을 계승하여 총련의 새로운 10년투쟁기에 애국애족의 새로운 본보기를 창조해나갈것이다.
【조청중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