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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학동 80년의 궤적②1955~1960〉조국을 받드는 주체적해외학생조직으로

2025년 07월 04일 19:21 단체・사업체

재일본조선류학생동맹(이하 류학동)은 올해 9월에 결성 80돐을 맞이한다. 류학동은 일본의 대학과 전문학교에 다니는 재일조선인학생들을 위한 단체로서 그 원류는 일제식민지시기에 일본으로 류학하여 일본땅에서 조선독립을 웨치며 투쟁한 조선류학생들의 활동에 있다. 총련의 산하단체들가운데서도 가장 오랜 력사를 가진 류학동은 이 조선류학생들의 뜻을 이어받아 오늘에 이르기까지 일관하게 조국과 민족, 동포사회의 발전에 이바지하고 재일동포들과 조선류학생들의 민주주의적민족권리옹호를 위하여 활동해왔다. 80년의 력사를 되돌아보는 이번 련재의 집필은 류학동중앙이 맡는다.(월1번 게재)

우리 말학습을 하는 류학동 맹원들(1960년대)

1950년대 류학동 학생들은 경제적으로 매우 곤난하였다. 알바이트를 하지 않는 학생은 없을 정도로 모두가 고생하였다고 한다.

그런 속에서 1957년 조국에서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이 보내여왔다. 일본대학에 다니는 재일조선인학생들에게도 장학금이 지급되였다. 이는 많은 류학동 맹원들에게 더없는 힘이 되였다.

조직과 많은 동포들의 지원에 의하여 1963년 도꾜 오쯔까에, 1964년 교또 가쯔라에 류학동 맹원을 위한 기숙사가 건설되였다. 많은 학생들이 침식을 같이하면서 매일 동맹원으로서의 학습을 깊이는 등 기숙사는 류학동활동의 중요한 거점이 되였다.

재일조선인학생들의 큰 고민거리였던 문제가 조국에서 보내온 장학금과 류학동기숙사의 건설에 의해 해결된것은 류학동의 운동을 크게 고조시키는 계기로 되였다. 동맹원들은 조국과의 이어짐을 실감하며 《지식 있는 사람은 지식으로》 조국과 동포사회에 이바지하겠다는 각오로 학문연구와 류학동활동에 매진하였다.

류학동교또 기숙사(년대 불명)

류학동도꾜 기숙사 제8차총회(년대 불명)

당시 류학동은 대외활동에 특별히 힘을 기울였다. 일본학생은 물론 아시아, 아프리카의 류학생들과의 련대운동을 적극 전개하였으며 일본대학 학장을 비롯한 교원들도 여기에 망라하였다.

당시 동맹원들은 고등학교 학생들에게도 관심을 돌렸다.

1969년 신입생환영모임(오사까)

1968년 호세이대학 학원제에서

오사까에서는 《재판조선인고등학생의 모임》을 조직하고 일본학교에 다니는 조선인학생들에게 《고민을 털어놓자, 진로를 함께 생각하자.》고 호소하였다. 문화제에서의 발표회와 조고생들과의 교류마당을 조직하였으며 여기에 망라된 고등학생들이 각성하여 졸업후 조선대학교에 진학하거나 류학동에 가맹하였다.

수많은 청년들을 망라하여 운동을 벌리는 과정에 동맹원들은 조선인으로서의 세계관을 확립하고 력사의 주체로서 행동하였다.

이렇게 문제의식이 싹든 동맹원들이였기에 한국에서 숙군쿠데타로 박정희가 정권을 가로챘을 때 이를 규탄하며 반파쇼투쟁을 벌렸다. 1964년부터 65년에 걸쳐 《한일회담》과 《한일조약》을 반대하는 투쟁을 집중적으로 전개하였으며 련일 강연회, 삐라살포, 가두선전, 시위투쟁, 서명운동을 벌렸다. 일본의 신문사를 찾아가 부당한 《한일조약》에 반대하는 재일조선인학생들의 립장을 강력하게 주장하기도 하였다.

한편 동포학생들을 위한 활동도 적극 벌렸다.

민족교육을 받지 못한 학생들을 망라하여 함께 우리 말을 배우고 력사와 사회에 관한 학습을 깊였다. 학과별연구토론회, 하기강습회, 하기대야영모임, 각 대학 학원제에서의 전시회 등 현재도 계속되는 많은 활동이 바로 이 시기에 시작되였다.

하기대야영모임이 진행되였다.(1963년)

1963년 하기강습회 개강식의 한 장면

1938년에 태어나 1960년 오사까시립대학(大阪市立大学)에 입학하고 격동의 60년대에 류학동오사까에서 활동한 후 총련 오사까부본부 부위원장, 총련 교또부본부 위원장을 력임한 김정문씨(86살)는 류학동오사까결성 50돐기념지 《시대를 넘어서~미래의 주인공들에게~》(1995년발간)중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단결하여 투쟁하고, 투쟁하면서 단결을 강화했다. 조국, 민족과 잇닿은 해외류학생들의 행동의 밑바닥에는 장학금까지 보내주신 주석님의 사랑과 배려에 보답하려는 일념이 있었다. 오늘의 학생들과는 기질도 환경도 조건도 다르지만 조국과 민족을 생각하는 청춘의 본질은 어느 시대나 변함이 없다. 문제는 〈조국과 민족〉이 학생들의 머리속에 있는가 하는것이다. 그것이 출발점이 된다. 무엇을 위해 배우는가. 개인의 희망, 개인의 욕망추구가 참된 삶의 목적이 될수 있는가.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이것은 우리 선배들, 일제식민지시기의 류학생들로부터 이어받은 류학동활동의 근저에 관통되여있는 사상이다.》

(조선신보)

-년표

1957.4.19 김일성주석님께서 동포자녀들을 위하여 첫번째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보내시심
1958. 11.1 《귀국실현서명운동》일본 각지에서 전개
1959.5.18 귀국실현을 요구하여 일본외무성에 항의요청
1959. 12.5~7 《제4차 학과별연구토론회》를 처음으로 조선대학교와 함께 개최
1963.4 류학동도꾜 기숙사완성(大塚)
1964.3.12 류학동교또 기숙사완성(桂)
1965.3.1 《한일조약》을 반대규탄하는 대회를 개최
1965.12.19 류학동결성 20돐기념중앙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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