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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성, 임진조국전쟁시기 의병대의 위훈을 전하는 유적 발굴

2025년 06월 03일 06:00 공화국

평양시 강남군 상암리에서

지난해말 평양시민족유산보존사에서는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 연구집단과 협력하여 평양시 강남군 상암리에서 서진성을 새로 발굴하였다.

서진성은 상암리소재지로부터 동북쪽으로 약 1.2㎞정도 떨어져있는 야산에 임진조국전쟁(1592-98년)시기 이 지방의 400여명의 인민들로 조직되였던 림중량(1542-1606년)의병대가 축성한 성이다.

서진성발굴장소

서진성은 야산의 낮은 둔덕을 따라서 빙 둘러가며 쌓았다.

현재 성벽은 야산에서 높은 지대인 동쪽과 북쪽에 남아있으며 낮은 지대인 서쪽과 남쪽은 토지정리과정에 없어지고 일부 구간에 흔적으로만 남아있다.

성의 크기를 보면 동쪽벽은 약 375m, 서쪽벽은 약 370m, 남쪽벽은 약 140m, 북쪽벽은 약 125m로서 성둘레는 1 010m정도이고 너비는 3m, 남아있는 성의 높이는 1m정도이다.

성의 단면상태

성의 북쪽과 서쪽은 급한 경사지를 이루고 남쪽은 밋밋하게 경사진 야산우에 있는데 옛날에는 이곳을 직산 또는 얼음진재라고 불렀다.

얼음진재라는 의미는 직산의 동쪽끝에 있는 등성이로서 임진조국전쟁시기 의병들이 성을 급히 쌓으면서 주변에 돌이 없어 벌판에 깔려있는 수수대로 울타리를 엮고 그속에 벼겨를 넣은 다음 물을 부어 얼구어 성벽을 높인 얼음담장이라는 뜻에서 빈쟁이라고도 하였다고 한다.

성의 동쪽부분에 설치되였던 해자자리로는 지금도 물이 흐르고있다.

남쪽에서 본 성상태

서쪽벽의 중심부분을 발굴한 결과 성벽은 암반우에 2층으로 형성되여있는데 먼저 아래층에 2단으로 기초시설을 하고 그우에 여러 단으로 웃층성벽을 쌓은 다음 겉에 흙을 씌워 급한 경사각을 보장하는 방법으로 토성을 축조하였다.

현재 밭으로 리용되고있는 성안과 성벽에서는 조선봉건왕조(1392-1910년)시기의 자기와 도기쪼각들도 나왔다.

도기유물

이 성을 서진성이라고 부른것은 당시 중화지방에 3개의 진이 설치되여 왜적들과 싸웠는데 그중에서 림중량의병대의 진이 서쪽에 위치하고있었기때문이다. 현재 황해북도 중화군에는 국가보존유적인 동진성이 있다.

성벽축조상태

임진조국전쟁시기 림중량의병대는 농쟁기를 모아 무기를 만들어 무장을 갖추는 한편 부단한 기습전으로 대동강남쪽에서 움직이는 적들과 평양―황주사이를 오가는 적들을 소멸하였다.

전쟁 첫해인 1592년 초겨울 수천의 적들을 토성으로 유인하여 전부 멸살시킴으로써 임진조국전쟁개시이래 보기 드문 대승리를 이룩하였다.

이처럼 서진성은 임진조국전쟁시기 평양의병대의 위훈을 전하는 귀중한 력사유적이다.

림중량의 묘

발굴된 성의 서쪽 200m지점에는 의병대의 지휘관들인 림중량, 윤붕 등 13명의 애국렬사들의 공훈을 길이 전하고 해마다 그들의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1597년에 세운 사당건물인 의렬사와 의병대장 림중량의 묘와 묘비, 13명 렬사들에게 추증된 벼슬이름을 새긴 비석인 서진순절공신유허비가 오늘까지 보존되여있다.

서진성은 국가보존유적으로 등록되였다.

(조선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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