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소설】뜻밖의 편지/강소원
2025년 06월 05일 10:21 기고대학의 식당에서 저녁을 먹는둥마는둥하고 기숙사로 돌아온 윤희는 제정신이 아니였다. 솟구치는 화를 어떻게 눌렀으면 좋을지 몰랐다. 그러는 기미가 온몸에서 넘쳐나는지 호실의 동무들은 아무도 윤희에게 소리를 걸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그러는 윤희는 자신의 책상우에 본적없는 사무적인 차색 편지봉투가 있는것을 알아보았다. 봉투에는 《서윤희학생에게》라고 씌여졌다.
《윤희야, 읽어보지.》
한 동무가 윤희의 눈치를 살피며 작은소리로 하는 말이였다.
그러나 윤희는 좀처럼 편지봉투를 뜯어보려고 하지 않았다. 무슨 일에도 신경을 써볼 경황이 못되였던것이다. 윤희는 몸이 아픈 사람처럼 침대에 들어가서 누웠다.
…
자정이 넘어서였다.
윤희는 남들이 잠에 든것을 확인하고서야 겨우 편지를 뜯어보았다. 윤희는 누가 보낸것인지 짐작 못하는 편지에 이제와서야 가슴이 두근거리는것을 느꼈다. 봉투속에는 편지가 아니라 마치나 공책 한페지를 찢어서 거기에다 쓴것 같은 종이쪽지가 들어있었다. 단숨에 읽어내려간 윤희의 눈은 둥그래졌다.
종이쪽지에 꽉 차도록 갈겨쓴 편지에는 이렇게 씌여져있었다.
…
《사랑하는 윤희에게
윤희야, 잘 있니? 오랜만이구나. 날 제대로 기억하겠는지 모르겠는데 네가 설맞이공연으로 조국을 방문했을 때 만난 철수삼촌이야. 난 지금 옥류관에 나와있는데 총련대표단이 계시더구나. 반가운 나머지 나는 어디서 오셨는지 물어봤는데 대표단 성원속엔 조선대학교에서 오신 선생님이 계셨소. 실례인줄 알면서도 ○○현에서 대학에 온 서윤희를 아시느냐고 물어보았지. 그랬더니 아니나다를가 그 선생님께서 〈내 수업을 수강하는 학생〉이라고 하시지 않니. 어떻게 놀라지 않을수 있겠니. 그래서 이렇게 바쁘게 글을 쓰게 되였구나. 공부 잘해라. 네가 꼭 다시 조국에 오기를 바란다. 건강해라. 철수 삼촌씀》
…
철수삼촌은 1970년대 귀국한 할아버지의 남동생의 둘째아들이다. 윤희집안에서는 평양에 계시는 5촌 아저씨를 삼촌이라고 불렀던것이다.
비록 종이쪽지에 씌여진 편지이긴 했으나 편지를 읽은 윤희의 볼에는 뜨거운것이 흘러내렸다. 코로나재앙이후로 편지가 오가지 못하는 속에서 우연과 기적이 겹쳐 삼촌의 말을 《직접》 듣게 된 너무도 반가운 편지였던것이다. 저녁때의 화가 가셔지는듯 종이쪽지를 다시 봉투에 넣으려고 할 때 또 다른 한자의 편지가 들어있는것을 발견하였다. 거기에는 깨알같은 글씨로 《이 편지는 총련대표단으로 조국을 다녀오신 ○○○선생님께서 기숙사까지 찾아오시여서 주신거란다. 윤희가 방에 없었으니 내가 이 편지를 받았어. 네게 귀중한 편지인줄 알고 아까 읽어보라고 했는데…》라고 씌여져있었다. 윤희는 동무가 하는 말에 응하지 않았던 자신을 후회하지 않을수 없었다.
다음날 윤희는 편지를 가져다주신 선생님께 고마움의 인사를 드리려고 연구당을 찾아갔다. 선생님은 삼촌과 만난 이야기를 차근차근 들려주시였다.
《우연히 이야기를 나누게 됐는데 갑작스레 윤희이름이 나오니 놀랐네. … 그분은 윤희한테 꼭 내 이야기를 전해달라고 간절히 부탁하셨지. 그래서 내 수첩을 꺼내서 여기에 편지를 쓰시면 어떤가고 말씀드렸었네.》
…
(선생님의 수첩이였구나.)
윤희는 편지쪽지에 깃든 사연을 듣고서 가슴은 더욱 뻐근해졌다. 그리고 그 순간 얼른 답변을 쓰고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기숙사로 돌아가서는 곧 하늘색 편지와 봉투를 꺼내여 답장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다 지금은 편지를 보낼수가 없다는것을 새삼스레 인식하게 되였으나 펜은 그냥 달렸다. 삼촌에게 전하고싶은 말은 명확했다. 그것은 잘 지내고있다는것, 이역에서 살아도 나는 언제나 조국을 그리며 떳떳한 조선사람이 되려고 배우고있다는것을 알리고싶었다. 윤희는 정성껏 이렇게 썼다.
…
《존경하는 철수삼촌께
편지 너무도 놀랐습니다. 실은 저는 편지를 받아보는 직전까지 동무들에 대한 노여움을 금치 못했었습니다. 전 지금 조선대학교에서 국어부를 맡는데 대학의 우리 말운동이 궤도에 오르지 못해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날 식당에서 일본말로 회화소리가 들렸으니 우리 말을 쓰라고 지적하려고 다가갔습니다. 놀랍게도 일본말을 쓰던것은 우리 반의 동무들이 아니겠습니까. 그들은 제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뻔히 알면서도 저를 무시하고 그냥 일본말을 쓰는것이 아닙니까. 저는 대학생들이 가장 마음이 편해지는 식당에서 그들을 꾸짖게 되였습니다. 기숙사에 돌아가서도 저는 마음속에서 그런 동무들이 반동무라는것을 믿지 못한다고, 그들은 우리 반에서 빠져주었으면 좋겠다고까지 느끼군 했습니다.
전 삼촌의 편지를 읽고서야 자신의 언행이 잘못한것이였다고 알게 되였습니다. 삼촌, 편지를 읽으면서 8년전에 조국에서 삼촌과 나눈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습니다. 삼촌은 기억하십니까? 친척들과 함께 식사를 같이한 날 제가 한 말을, 다음에는 떳떳한 조선대학생, 우수한 인재가 되여 반드시 조국에 다시 오겠다고 한 말입니다. 전 정말로 나날이 조국을 우러르며 살았습니다. 아직 미숙한 부분이 많지만 지금은 조선학교의 교원이 될 꿈을 안고 열심히 배우고있습니다. 그러는 제가 다른 동무들의 마음속을 헤아리기도전에 그저 화가 난다고 기분이 안 좋다고 앞날의 동지들을 엄하게 꾸짖고 심지어는 소중한 반동무가 우리 반에서 빠져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품었댔으니 … 정말 부끄럽습니다.
삼촌, 아시겠지요? 작년 여름 조국에서 돌려주신 각별한 배려로 조선대학생들이 선참으로 조국을 방문할수 있었다는것을. 이제곧 졸업반으로 진급하게 되는 제게도 그런 행운이 차례질수 있지 않겠습니까. 저는 삼촌을 하루빨리 만나 류창해진 우리 말로 8년간의 빈 시간을 함께 메꾸고싶습니다. 그때까지 몸 건강히 지내주십시오.
조선대학교 기숙사에서 2025년 ○월 ○일 서윤희드림》
…
윤희는 편지를 봉투에 넣고 우표도 붙여놓았다. 자기가 먼저 조국을 찾아가게 되는지 이 편지가 먼저 조국에 가닿을지 윤희 자신도 몰랐지만 이러고싶었다.
윤희의 동무들에 대한 마음속 노여움은 말끔히 가셔졌다. 오늘은 그들을 웃으며 만날수 있을것 같았다.
(문학력사학부 어문학과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