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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대 박재수 이전 학부장을 추모하여/제갈단

2025년 02월 10일 13:31 기고

마지막 작품 《인생찬가》를 더듬으며

지난해 9월 29일에 진행된 교또중고 제9기생 희수(77세)기념 동창회에서 발표된 시 《인생찬가》가 그의 마직막 작품으로 될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시창작을 박재수동무에게 부탁한것은 지난해 6월초였다. 그는 쾌히 승낙해주어 1주일후에 완성시켜 보내주었다. 그러면서 동창회에 참가해서 발표하겠다고 말하군 하였다.

그러던 8월에 련락이 와서 몸이 아파서 참가 못하겠다고, 불치의 병을 앓고있다는 뜻밖의 련락이 왔다.

그는 병마와의 투쟁을 벌리고있었던것이다.

동창회 당일, 그를 대신해서 내가 이 시를 발표했다. 모두들 이 시가 참 좋다고, 우리 동창회의 정신을 잘 표현하고있다고 이구동성으로 찬양했다.

참가자모두들 그가 하루빨리 건강을 회복하여 다시 만나자고 기원하였다.

그리하여 10월 19일에 그가 입원중인 사이다마의 병원에 동창회 보고를 겸해서 문병갔다.

그때는 무척 건강하게 보였으며 불치의 병에 걸리고있다는것을 상상도 못했다.

9월 29일에 진행된 우리 동창회가 참 잘되였고 기념사진과 기념품을 전달하고 참가자모두가 하루빨리 건강을 회복하여 계속 애국사업에 나서기를 바라고있다고 격려하였다.

그후 이 시는 그가 생전하던 지난해 10월 28일부 《조선신보》에 게재되였다.

《조선신보》에 발표되자 그가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른다.

그가 발표한 시에서 모교애가 잘 나타나고있는 구절이 있다. 우리 교또중고가 교또의 유명한 5개 산중의 하나인 다이몬지야마(大文字山)기슭 은각사(銀閣寺)뒤에 자리잡은 모교의 통학길을 묘사한 부분이다.

《철학의 길 (哲学の道)》의 벗꽃이여,

《은각사의 (銀閣寺)》의 단풍이여,

꿈속에 그린

내 고향의 모습으로

파란만장 우리 인생

가슴속에 묻어두고

남은 인생

사랑만을 가슴에 안고

오래오래 살아보자

가족사랑,

학교사랑,

동포사랑으로

 

이 시에서는 그가 교또증고에서 배운 나날을 남기고싶었던 정신세계가 잘 나타나고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박재수동무에게 류다른 감정을 가지고있는것은 청춘시절의 깊은 추억이 있기때문이다.

우리가 고급부 3학년이였던 시기는 총련결성 10돐을 맞이하여 온 조직이 들끓고있었던 시기였다.

박재수동무는 조청 조고위원회 위원장의 중책을 지니고 학습과 조직생활에서 맹활약하고있었다.

이럴 때 그에게 아프리카 알제리에서 진행되는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재일조선청년학생대표단 성원으로 모든 조고생들의 대표로 선발된것이였다.

당시는 일본을 출국하면 재입국을 못하는 시기였다.

그래서 조청 조고위원회 림시대회를 가지고 위원장 후임을 정하였는데 후임으로 내가 선출되였다.

그런데 뜻하지 않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세계청년학생축전이 진행되는 알제리에서 군사쿠데타가 있어 축전은 중지되고말았다.

박재수동무는 위원장으로 된 청소한 나를 음으로 양으로 받들어주고 아낌없는 방조를 주었다. 참으로 그 나날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있다.

조고졸업후 박재수동무는 조선대학교에 진학하고 나는 조청전임일군으로 나서게 되였다. 초소는 서로 달라도 조국과 민족을 위한 길에서 다시 만날 굳은 약속을 해서 정든 교정을 떠났다.

박재수동무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교수, 언어학박사이며 조선대학교 문학력사학부 학부장으로서 수많은 제자들을 배출했으며 총련의 우리 말운동의 선구자적인 역할을 놀았다. 이에 대해 나는 교또중고 제9기생의 동창으로서 긍지와 자랑으로 여기고있다.

그는 앞으로도 계속 우리 말과 글을 고수발전시겨나가는데서 큰 역할을 놀아야 하는데 작년 12월 11일, 77살나이로 너무도 일찌기 우리의 곁을 떠났다.

나는 생전에 그가 이루지 못한 애국의 뜻을 이어 애국의 한길을 계속 걸어나갈 결심을 가다듬고있다.

(교또시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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