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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손영희고문을 추모하는 모임/녀성동맹 교또부본부의 주최로

2025년 01월 21일 12:07 총련

녀성동맹 교또부본부가 주최하는 《고 손영희고문을 추모하는 모임》이 총련 교또부본부에서 엄숙히 거행되였다.

녀성동맹 교또부본부가 주최하여 《고 손영희고문을 추모하는 모임》이 지난해 12월 15일 총련 교또부본부에서 엄숙히 거행되였다.

녀성동맹 교또부본부 고문인 손영희동지는 지난해 10월 26일 심부전으로 인하여 92살을 일기로 애석하게도 세상을 떠났다.

모임에 앞서 고인을 추모하는 영상편집물이 상영되였다.

개회선언후 고인의 략력이 소개되였다.

1931년 11월 4일 혹가이도 유바리시(夕張市)에서 출생한 고인은 일제식민지시기 부친이 이곳 탄광에서 노예로동에 시달리다가 조국해방을 맞이하여 가족들과 함께 교또로 거처를 옮겼다.

고인은 《조선말을 배워야 한다.》는 부친의 지시에 따라 15살난 1946년부터 재일본조선인련맹 교또부본부 사무원으로 일하게 되였다.

그후 1947년 10월부터 녀성동맹 교또부본부 부원으로, 48년 9월부터 민청 교또부본부 부원으로, 49년 9월부터 녀성동맹 교또부본부 총무부장으로, 53년 10월부터 54년5월까지 녀성동맹중앙 조직부장으로 사업하였다.

휴가기간을 거쳐 1955년 6월부터 녀성동맹 교또부본부 총무부장, 선전부장, 조직부장, 부위원장 겸 조직부장을 력임한 고인은 1973년부터 19년간 녀성동맹본부위원장의 중책을 맡으며 부내의 광범한 동포녀성들을 불러일으켜 애국과업을 수행하며 조직을 강화하는데 헌신적으로 사업하였다.

고인의 한생은 김일성주석님과 김정일장군님, 김정은원수님을 충정으로 우러러 따르며 그이의 혁명사상을 구현하는 길에 자신의 한생을 깡그리 바친 견결한 녀성활동가의 귀중한 한생이였다.

대원수님께서는 고인의 공로를 높이 평가하시여 조국의 품으로 거듭 불러주시여 몸소 기념사진을 찍어주시는 높은 영예를 안겨주시였으며 주석님의 존함시계표창, 국기훈장 제1급, 제2급을 비롯하여 가지가지의 높은 국가수훈의 영예를 안겨주시였다.

추모모임에서는 총련중앙 허종만의장의 명의로 된 조전을 총련중앙 강추련부의장 겸 녀성동맹중앙위원장이 소개하였다.

이어 헌화가 진행된 후 녀성동맹 교또부본부 박순호위원장이 추도사를 하였다.

마지막으로 유가족을 대표하여 고인의 장남인 림두환씨가 사사를 하였다.

제2부에서는 회식이 있었다.

이 자리에서는 고인과 함께 사업한분들이 추억이야기를 피로하였다.

참가자들은 조국과 수령, 조직을 위하여 한생을 바친 고 손영희고문의 뜻을 이어 총련애국사업에 헌신해나갈 결의를 가다듬었다.

【녀성동맹교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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