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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교육의 화원에서 다진 애국의 맹세 변함없으리

2025년 01월 14일 10:10 민족교육

14일부 《로동신문》에 게재된 글 《민족교육의 화원에서 다진 애국의 맹세 변함없으리-총련의 각급 학교 졸업생들의 추억담중에서》는 다음과 같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은 몸은 비록 이국땅에 있어도 조국과 민족을 위한 길에서 참다운 삶의 보람과 행복을 찾아야 하며 위대한 김정일애국주의정신을 높이 발휘하여 어머니조국의 대지우에 애국충정의 자욱을 뚜렷이 새겨나가야 합니다.》

재일조선인운동의 어제와 오늘, 래일을 애국의 피줄기로 굳건히 이어주는 민족교육의 화원 조선학교, 어머니조국의 따뜻한 손길이 어려있는 이 학교들에서 수많은 동포자녀들이 애국의 역군으로 미더웁게 자라났다.

졸업생들 누구나 잊지 못한다.애국위업의 미래를 걸머지고나갈 커다란 포부와 아름다운 꿈과 리상을 지니고 열심히 배우고 또 배우며 성장하던 그 나날을.

영원히 한모습으로 살자

《…성화동무, 이번엔 꼭 와야 하오.》

방금 동창생이 걸어온 전화는 김성화녀성을 몹시 흥분시키였다.

(우리 동창생들이 한자리에 모인단 말이지.이번엔 꼭 참가해야겠어.)

그는 조선대학교 문학부(당시) 39기 졸업생이였다.대학을 졸업한 후 그는 여러가지 일로 몹시 바빴다.특히 다섯 자식을 키우느라 동창생들과 무릎을 마주하고 회포를 나눌 기회를 얻지 못하였다.그것이 늘 마음속에 응어리져있었다.

며칠후 흥분된 심정을 애써 누르며 모임장소에 도착하니 벌써 많은 동창생들이 와있었다.대학시절 담임교원의 모습도 보이였다.졸업후 28년만에 만나는 동무도 있었고 눈물로 인사말을 대신하는 동무도 있었다.모두 반가운 모습들이였다.정말 기뻤다.

너무도 오랜 세월이 흘러 만난 동창생들과 무슨 이야기부터 해야 할지 몰라 김성화녀성은 처음 한동안 덤덤해있었다.하지만 옛 담임교원의 축하말이 있은 후 동창생들이 저저마다 추억의 실꾸리를 풀어나가기 시작하자 그의 마음은 인츰 명랑했던 처녀시절로 돌아갔다.

어느덧 화제는 조국에서 보낸 3개월간에 대한 이야기로 번져졌다.참관과 교류모임, 교육실습, 학술발표회 등으로 몹시 분망한 나날이였지만 그 드바쁜 일정들이 오늘에는 영원히 잊을수 없는 소중한 추억으로 남게 되였던것이다.울고웃으며 그때의 일들을 감회깊이 돌이켜보던 김성화녀성은 문득 둘째아들생각이 났다.

5년전 고급학교 졸업학년시기 둘째아들은 세계를 휩쓴 악성전염병사태로 인해 아쉽게도 조국방문을 할수 없었다.

그때 몹시 서운해하던 아들을 달래면서 김성화녀성은 이렇게 생각하였다.

(다섯 자식중에 이애만 조국에 못가보겠구나.)

그후 조선대학교에 입학한 아들이 어느덧 졸업학년에 들어서자 그는 어머니로서 더욱 조바심이 났다.

그런데 그 아들에게서 불쑥 희소식이 날아올줄이야.

《어머니, 우리도 조국으로 가게 되였어요.아버지원수님께서 우리를 불러주시였어요.》

아들은 웨치듯 말하였다.전화기에서 울려나오는 우는지, 웃는지 가늠하기 어려운 아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김성화녀성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였다.

(어머니조국의 사랑은 정말 따사롭구나.우리 둘째아들에게도 조국방문에 대한 소중한 추억이 남게 되겠구나.)

그때를 돌이켜보며 김성화녀성은 동창생들을 새삼스럽게 여겨보았다.

(우리가 맺은 정, 그것은 어머니조국이 이어준 참다운 애국의 정이다.앞으로도 계속 서로 힘과 용기를 주고받으며 변함없는 애국의 한모습으로 살자.)

참된 길로 떠밀어준 모교를 못잊어

얼마전 일본 도꾜의 어느한 곳에서는 이채로운 광경이 펼쳐져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서로서로 정다운 이름들을 부르며 반갑게 부둥켜안는 사람들, 학창시절의 성격이 별로 변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웃음꽃을 피우는 이들은 총련 도꾜조선중고급학교 23기 졸업생들이였다.못잊을 사람들사이의 오래간만의 상봉으로 장내는 한동안 떠들썩하였다.어느덧 일흔고개에 들어섰지만 마음은 언제나 그 시절에 사는 사람들이였다.일본학교들에서는 상상도 못할 따뜻한 사랑과 인정이 넘치는 해빛밝은 교정에서 그들은 친형제같은 사이로 되였고 그 정은 오늘도 여전하다.

그들이 학창시절을 보낸 시기는 참으로 다사다난하였다.전 총련적인 행사가 많이 진행되는 도꾜조선문화회관이 학교구내에 웅장하게 들어앉아 일본사람들을 놀래웠고 또 3호교사가 번듯하게 일떠서 동포사회에 기쁨을 더해주었다.일본우익반동들의 악랄한 테로행위로 학교의 분위기가 몹시 긴장한 때도 있었다.

《집단체조를 하던 때가 생각나나?》

누군가 문득 이런 말을 하자 모두 얼굴이 환해지며 그때의 일들을 긍지스럽게 떠올렸다.

1965년 가을 공화국창건 17돐경축 집단체조 《영광스러운 우리 조국》이 도꾜 고마자와경기장에서 성대히 진행되였다.이 집단체조에서 그들은 배경대성원으로 활약하였다.자기들이 형상한 글자와 그림들이 배경대에 펼쳐질 때 경기장에서 터져나온 동포들의 탄성이 오늘도 귀전에 울려오는듯싶어 모두가 가슴들먹이였다.

조국의 《만경봉》호를 니이가다항에서 열렬히 환영하던 일, 조국축구팀과의 교류도 인상깊었다.

재일조선인중등교육실시 20돐을 맞으며 도꾜체육관에서 진행된 대음악무용서사시 《조국의 해빛아래》에서도 그들은 한몫 단단히 하였다.그때 불렀던 조국에 대한 노래를 어깨겯고 합창하는 그들의 눈시울은 축축하였다.

회포를 나누며 보니 총련일군으로 애국위업의 일선에서 활약한 동무들이 있는가 하면 미더운 교육자, 애국적인 상공인으로 불리운 동무들도 있었다.

모교를 나서면서 함께 다진 맹세를 변치 않고 애국의 자욱을 새겨왔다는 생각에 졸업생들의 가슴은 세차게 부풀어올랐다.

뜻깊은 모임을 마치며 그들은 자기들의 심정을 이런 내용의 글로 피력하였다.

《우리에게 민족의 넋을 심어주고 애국의 길로 떠밀어준 정다운 모교여, 그대를 영원토록 가슴에 안고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애국의 한길을 변함없이 걸어가겠습니다.》

《우리가 머리에 흰서리가 내린 오늘까지도 이처럼 두터운 우정을 나누는것은 바로 우리 학교, 민족교육의 화원이 있기때문입니다.앞으로도 동포사회와 민족교육의 고수발전을 위해 있는 힘을 다합시다.》…

애국의 키를 자래워준 정다운 모교에 대한 졸업생들의 사랑과 긍지는 이토록 뜨겁고 가슴벅찬것이였다.그들이 언제나 마음속에 안고 사는 모교, 그것은 곧 조국의 따사로운 품, 총련조직의 미더운 모습이다.

(조선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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