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고】박재수선생의 비보에 접하여/김학권
2024년 12월 26일 09:10 문화재일조선동포사회에서 아직 많은 일과 역할을 놀아야 할 국어선생이 불치의 병으로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슬프고 원통합니다.
2024년 12월 11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교수, 박사이고 전 조선대학교 문학력사학부 학부장이였던 박재수선생의 비보를 받았습니다.
조금전 자신의 병상태에 대하여 알려 주었는데 정말 너무도 빠른 비보였습니다.
아마 일본 각지에 있는 그의 제자들, 국어선생들, 우리 말 운동의 선두에 서있는 분들 모두가 큰 충격을 받고있을것입니다.
77살은 너무나 빨랐습니다. 더 많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어야 했고 우리 말을 지키기 위한 기발을 흔들어 주어야했습니다.
해외에 살면서도 자기 나라 말과 글로 시를 짓고 글을 쓰는 사람을 나는 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우리 말, 《조선어》자체를 연구하는 학자는 정말로 적고 귀합니다.
선생은 일본에서 나서자라면서도 우리 민족의 가장 중요한 징표인 우리 말, 《조선어》를 연구하는데 평생을 바치셨습니다.
일반적으로 해외에 살면서 자기 나라의 언어를 연구한다는것은 힘든다고 합니다. 그것은 하나의 말뜻과 그 유래, 그리고 지방의 사투리까지 연구하자면 방대한 자료를 찾아야 하고 그를 위해 여러 곳을 다녀야 하기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그것이 힘듭니다. 그러나 선생은 반대로 해외에 있기때문에 찾을수 있는 자료도 있다고 하시며 일본대학의 와국어학자들과의 사업도 하면서 조국에서는 얻지 못하는 자료들도 얻군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새 시대에 맞는 《우리 말 대사전》의 편찬사업에도 해외를 대표하여 참가하여 자신이 놀아야 할 역할을 당당히 놀았습니다.
또한 선생은 그런 연구를 하면서도 평생 조선대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쳤습니다. 대가 바뀐 젊은 학생들에게 민족의 존엄을 지키는 가장 기본인 우리 말을 지켜야 할 그 넋을 심어왔습니다.
그 품에서 자란 학생들 얼마나 많습니까.
또한 민족교육의 핵인 국어교육의 교과서 편찬사업에도 중심적인 역할을 놀아왔습니다.
대학을 퇴관한 후에는 《한글검정》사업에 참가하여 우리 말 보급사업에 크게 이바지하면서 《조선신보》를 통하여 우리 말을 지키기 위한 글을 계속 써서 련재하여왔습니다.
선생님의 마음은 언제나 조국과 같이 있었고 민족의 징표인 《우리 말》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선생님은 앞으로도 더 많이 일을 하셔야 했습니다. 정말로 아쉽습니다.
나 개인적으로도 전임일군을 졸업한 후에 자신이 할수 있는 일은 무엇이고 또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서로 찾고 서로 자극을 주고받고 왔습니다. 이 원통함은 무엇으로 표현하겠습니까.
사람은 언제인가 가야합니다.
그 사람이 생전에 무엇을 했는가는 그가 간 후 그의 뜻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어 가는가를 보면 안다고 합니다.
아마 지금 각지에 있는 그의 제자들이 결의를 다지고있을것입니다.《동포사회속에서 우리 말과 글을 지켜나가겠다.》고. 나 역시 그들과 같은 결의를 다집니다.
박재수선생, 믿으십시오. 그리고 웃으면서 《얼마나 하는지 어디 보자.》고 지켜보십시오. 선생님의 뜨거운 생 이어가겠습니다. 박재수선생님, 고이 잠드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