력사의 흔적을 찾아서/간사이
2024년 08월 15일 07:02 력사아무리 부정해도 사라지지 않는 력사의 흔적들이 지금도 일본각지에 남아있다. 조선에 대한 일본의 식민지지배의 력사, 조선반도와 일본의 인연이 깃들어있는 곳들을 소개한다.
망각되던 희생자/供養塔
미에현 이가시(伊賀市)에는 구아오야마(旧青山)동굴사고희생자들의 명복을 비는 비석이 있다. 1928년부터 30년까지 진행된 철도동굴공사중의 사고로 인하여 16명의 로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그중 8명이 조선사람이다. 비석은 30년에 세워졌으나 이 지역의 력사기록(町史)에는 조선인희생자에 관한 서술은 없었다. 02년에 이곳 일본중학교 학생들이 비석에 새겨진 희생자수와 지역의 력사기록 서술이 차이나는것을 발견한것을 계기로 조선인희생자들의 존재가 알려졌다. 그후 매해 위령제가 진행되고있다.
조일친선의 상징/귀국기념비석
1959년에 시작한 재일동포들의 사회주의조국에로의 귀국을 기념한 비석은 60년에 미에현 上野市의회와 자치체의 관계자들에 의하여 미에현 이가시(伊賀市) 이가우에노성(伊賀上野城)앞에 세워졌다. 비석의 주변에는 귀국을 기념하여 벗나무가 식수되였다. 이곳 지역에서 비석과 벗나무는 조일친선의 상징으로 되여왔다. 19년에 이가시(伊賀市)는 이 비석을 성이 위치한 공원구석에 이동시켰다. 총련본부를 비롯한 관계자들에게는 아무런 통지가 없었다.
어항에 담겨진 력사/室津海駅館
효고현 다쯔노시(たつの市)에 있는 무로쯔(室津)는 조선통신사가 11번에 걸쳐 머무른 곳이다. 어항으로서 자연지리적조건이 갖추어진 이곳에는 조선통신사의 력사를 전시하는 室津海駅館이 있다. 이곳으로 입항한 통신사들의 모습이 그려진 옛 그림이나 통신사의 모형, 그들에게 차려진 음식들의 재현품 등이 전시되고있다.
조선통신사의 묘비/竹林寺
오사까시(大阪市) 니시구(西区)에 위치한 竹林寺에는 《김한중》이라고 새겨진 묘비가 있다. 김한중은 조선통신사의 성원으로서 일본을 찾아와 이곳에서 병사한 조선사람이다. 竹林寺 근처의 松島公園에는 《구죠지마(九条島)와 조선통신사의 비석》이 서있다. 효고현 무로쯔를 떠나 오사까에 온 통신사일행은 이곳에서 휴식을 하고 교또로 향하였다. 비석에는 통신사의 水夫들이 竹林寺에 머무른 사실 등이 새겨져있다.
방치된 비석들/唐人雁木旧趾
오사까에서 교또를 향해 淀川를 거슬러 올라간 조선통신사 일행은 현재의 교또시 후시미구(伏見区) 노소쬬(納所町)에서 륙로로 이동하였다. 요도역주변에는 그 상륙지임을 알리는 《唐人雁木旧趾》가 있다. 《唐人》은 조선사람을 가리키고 《雁木》는 강으로부터 륙지로 올라갈 때 쓰이는 계단을 의미한다. 이 비석은 2개 있는데 요도죠공원에 있었던 비석은 사라지고 그것은 공원에 린접한 신사부지에 방치되여있었다.
이곳 관광협회에 의하면 《아이들의 안전》을 요구하는 주민들의 목소리가 있어 신사가 《관리》하고있다고 한다.
조선통신사의 자욱/本圀寺跡, 三条大橋
교또중심부에는 조선통신사의 력사와 관련한 유적, 비석들이 적지 않다. 교또시(京都市) 사꾜구(左京区) 가끼모또쬬(柿本町)에는 통신사가 7번이나 숙박한 本圀寺跡의 비석이 있다. 本圀寺는 1971년에 야마시나구(山科区)에 이전되였다. 本圀寺跡의 비석옆에는 안내판이 있는데 거기에는 조선통신사와 이곳의 력사가 씌여져있다. 이곳을 떠난 통신사일행은 三条大橋를 건너 도까이도(東海道)를 걸어 에도(江戸)를 향하였다.
(조선신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