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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들의 발걸음을 더듬다-3

2024년 08월 02일 13:36 력사

이역땅 일본에 건너온 1세동포들은 일제식민지시기는 물론 해방후 온갖 고생속에서도 조국을 위해, 조직을 위해, 동포들을 위해 꿋꿋이 살아왔다. 재일조선인 1세들의 목소리를 소개한다.

차별을 극복하여

문수범씨/효고

문수범씨

문수범씨는 1935년에 경상남도 하동군에서 태여났다. 37년 봄 어머니, 누나, 2명의 형들과 함께 련락선으로 야마구찌현 시모노세끼시에 건너왔다. 2살때 일본에서의 생활이 시작된셈이다. 가족보다 먼저 오이따현의 광산에 징용으로 끌려온 아버지를 만나 가족으로 생활하게 되였다.

소학교에서는 동화교육과 차별, 멸시를 받았다. 그런 나날을 보내는 과정에 조선민족에 대한 렬등감을 가지게 되였다.

45년 소학교 4학년때 일본이 패전하였다. 집근처에서 고물상을 하던 동포들과 함께 귀국하기 위해서 짐을 싸고 오이따항(大分港)으로 향하였는데 《웬일인지 배가 오지 않아 귀국을 단념하였다.》고 한다.

일본소학교에서 계속 배우던 어느날, 도서관에서 읽은 책에서 노예해방선언을 호소한 미국인 링컨에 대해 알게 되고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였다.

당시 썼던 일기는 지금도 소중히 간수하고있다. 거기에는 중학교시절에 당한 차별체험이나 자신의 미래상을 그린 그의 갈등이 씌여져있다.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취직시험에 합격하였는데 《조선사람》을 리유로 고용되지 않았다. 어쩔수 없이 그때 하던 신문배달을 계속하면서 3년간 야간학교를 다녔다.

어느날 중앙예술단(금강산가극단의 전신)의 단원이 된 지인이 그의 집을 찾아왔다. 문수범씨는 그 지인과 함께 온 가와사끼출신 단원의 할머니집을 찾아 가와사끼를 찾았다. 그후 55년 그가 19살때 도꾜 메구로에 있는 도꾜도립대학부속고등학교에 편입하여 신문판매점에서 더부살이를 하면서 공부하였다.

어느날 치마저고리를 입은 도꾜조고생들을 만났다. 문씨는 그들에게 《조선학교에 데려가달라.》고 부탁하였다. 이를 계기로 조선대학교를 찾은 그는 56년에 조대에 입학하였다.

대학졸업후 니시와끼초급 (당시), 고베조고에서 교원으로 사업하였다. 그후 총련 효고현본부나 관하 지부, 상공회에서 약 40년간 전임일군으로서 활동하였다.

그는 《민족적뿌리에 대한 긍지를 느끼지 못한 인생을 보낸 나와 같은 경험을 우리 아이들이 되풀이하면 안된다.》고 하면서 재일조선인으로서 살고있는 지금에 대해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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