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아카운트

【투고】도꾜조선제2초급학교를 찾아서/김리우

2024년 07월 05일 09:00 기고 민족교육

조선대학교 외국어학부 3학년생들이 하루실습으로 도꾜제2초급을 찾았다.

6월 19일, 우리 조선대학교 외국어학부 3학년은 하루실습으로 東京都江東区 枝川에 있는 도꾜제2초급을 찾아갔다. 학교에 도착하니 선생님과 학생들이 우리를 따뜻이 맞아주었다. 우리는 먼저 김두식교장선생님의 안내에 따라 교내를 돌아본 후 학생들의 수업을 참관하였다.

우리 글을 또랑또랑 읽고 열심히 문제를 풀어보려고 애쓰는 학생들의 모습, 그런 학생들을 따뜻이 대하고 때로는 엄하게 방조하는 선생님들의 모습을 목격하였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진심으로 대화하며 학생들이 조선사람으로 자라나는 민족교육의 참모습이다고 느꼈다.

수업참관을  끝낸 우리는 오래동안 우리 학교에서 교편을 잡으시고 도꾜제2초급 교장을 력임하신 리화숙선생님과 함께 에다가와주변의 필드워크로 나섰다. 리화숙선생님께서는 朝日児童遊園, 朝凪運河, 영화《박치기》의 촬영지 등 여러곳에 우리를 안내해주셨으며 거기에 깃든 사연, 투쟁의 력사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셨다.

리화숙선생님과 함께 에다가와주변의 필드워크로 나섰다.

《동무들, 투쟁해야 합니다! 》이것은 필드워크중 리화숙선생님께서 거듭 하신 말씀이다.

에다가와동포들은 투쟁을 통해 우리 학교와 학생들을 지키기 위한 권리들을 획득해왔다. 옛날 학교주변은 뻐스정거장조차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에다가와동포들의 피타는 투쟁의 결과 학교앞에 枝川一丁目라는 뻐스정거장이 설치되였다.

그뿐아니다. 에다가와동포들은 《도꾜제2초급을 위하는것을 마땅한 임무》로 간주하고 투쟁을 한시도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리화숙선생님의 말씀대로 도꾜제2초급을 보물처럼 여기고 헌신적으로 투쟁해오신 에다가와동포들의 억센 신념과 의지가 여기에 스며있다고 간직하게 되였다.

필드워크가 끝난 후 우리는 초급부생들과 점심을 함께 하였다. 나는 5학년생 3명과 함께 하였는데 그들은 좋아하는 과목이나 소조의 이야기, 선생님의 이야기 등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선대학교에 관한 알아맞추기

그후 우리는 리화숙선생님의 강의를 받았다. 1940년대 조선사람들은 도꾜올림픽의 개최(전쟁으로 중지)로 인하여 에다가와지역에로의 이주를 강요당하였다. 에다가와지역은 당시 매립지여서 비위생적이며 사람 사는곳이 아니였다고 한다. 그러나 동포들에게는 그러한 비참한 처지에서의 생활밖에 차례지지 않았다.

그런 렬악한 환경속에서 동포들은 자녀들을 참된 조선사람으로 키우기 위하여 교사를 아담하게 세우고 민족교육을 시작하였다.

그런데 도꾜도는 동포들이 투쟁을 통해서 얻어낸 학교토지를 《불법점령》하고있다고 운운하면서 2004년 石原都知事시기에 학교를 상대로 소송을 일으킨것이다.

리화숙선생님께서는 그 재판투쟁의 귀중한 이야기를 들려주시고난 후 지금 우리를 둘러싼 정세를 파악하려면 학습을 더 잘해야 한다는것, 동포들은 조선대학교 학생들에게 큰 기대를 하고있다는 격려의 말씀을 주시면서 강의를 맺으시였다.

강의후 우리는 학생들과 함께 운동모임이며 조선대학교에 관한 알아맞추기 등을 통해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도꾜제2초급 재학생들과 외국어학부 학생들

학교를 떠나기 전  김두식교장선생님은 《우리 교원들에게는 학생들의 웃음을 지켜낼 임무가 있다.》고 하면서 조대생들도 앞으로 자신의 임무, 사명을 간직하여 학과학습에 림해줄것을 당부하였다.

이번 도꾜제2초급 실습을 통하여 나는 에다가와동포들이, 아니 일본각지의  동포들이 어째서 온갖 탄압을 무릅쓰고 우리 학교, 민족교육을 지켜내려고 하는가 하는 물음의 답을 이곳 선생님들, 동포들의 모습에서 찾을수 있었다.

나는 도꾜제2초급에서의 따뜻한 만남을 힘으로 앞으로 민족교육의 고수발전을 위한 투쟁의 무기를 갖추기 위하여 대학에서 학습과 조직생활에 주인답게 림할 결심을 새로이 하였다.

(조선대학교 외국어학부 3학년)

Facebook にシェア
LINEで送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