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가극단2024〉훌륭한 역군이 되여 보답하리/새로 입단한 단원들
2024년 06월 27일 11:38 문화금강산가극단결단 50돐이 되는 뜻깊은 올해, 새로 2명의 동포청년들이 주체예술을 떨치는 전문예술인으로 새 출발을 하였다. 조선대학교를 졸업하고 가극단에 입단하게 된 이들은 앞으로 훌륭한 역군이 되여 이제까지 자라온 동포사회와 동포들에게 보답할 굳은 결의로 가슴을 불태우고있다. (한현주, 박충신기자, 사진-로금순기자)
《예술복》 누릴수 있는 무용수로
올해 새로 가극단 무용수로 입단하게 된 장선려단원(효고현출신)은 효고현 고베시에서 태여났다. 과거 가극단 무용수였던 어머니 리금령씨의 영향도 있어 자라나면서 자연스럽게 무용을 좋아하게 되였다. 니시고베초급 2학년시기에 시내에 있는 무용연구소에서 무용을 시작한 그는 그후 고베초중 중급부, 고베조고 고급부시절에도 무용소조에 들어 계속 조선무용에 접해왔다. 그러한 과정에 《자신의 온 힘을 다하여 무용을 추구함으로써 나를 키워준 동포사회에 은혜를 갚고싶다는 마음이 점점 커져갔다.》고 한다. 한편 조고졸업을 앞두고 《조국과 우리 력사, 자기 존재에 대하여 더 배우고싶다.》는 욕심도 있어 조선대학교 정치경제학부로 진학하게 되였으며4년간의 대학생활을 끝내고 입단의 날을 맞이하게 되였다.
어머니와 같은 길을 걸어가게 된 그의 첫 무대가 된 가나가와공연(6월11일). 그 무대에서 피로한 군무《가고파》는 어머니가 현역시절에 조국의 무용선생님에게서 전습을 받아 주역을 맡은 작품이였다. 그 작품에 자신이 출연하게 된데 대해 《운명을 느꼈다.》고 하는 그의 꿈은 조국에서 공연을 올리는것이다.
장선려단원은 《가극단의 무대 그리고 나의 무용을 통해 조국인민들에게 총련조직의 힘을 보여주고싶다.》며 《주체예술을 떨치는 금강산가극단의 단원으로서의 자질을 갖추어나가겠다. 동포들과 가깝고 그들과 함께 〈예술복〉을 누릴수 있는 참된 무용수가 되겠다.》고 힘주어 이야기하였다.
주어진 역할, 《책임다하겠다》
《첫 공연의 무대에 섰을 때 객석이나 관객들의 얼굴이 잘 보일줄만 알았는데 그리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 어두운 곳에서 들려오는 박수소리며 관객들의 열기, 환호소리가 얼마나 따뜻했는지…또한 함께 무대에 선 선배단원들의 모습을 보면서 가극단의 단원된 영예와 긍지를 느꼈다.》
장선려단원과 함께 올해 가극단 무용수로 입단한 강향리단원(도꾜도출신)은 첫 공연에 대한 감상을 감격에 넘쳐 말하였다.
그 또한 조선대학교(교육학부)를 졸업하여 전문예술가의 길을 나아가게 되였다. 조선무용과의 만남은 도꾜제4초중에 다니던 초급부 4학년시절에 거슬러 오른다. 그후 중고급부에서 《당연히》 무용소조에 들어 《무용이자 곧 학창생활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조선무용에 몰두하였고 무용작품을 통해 조국을 알았다.》
고급부 졸업을 앞둔 시기, 그는 무용을 하는 자신의 어머니를 비롯하여 주변사람들에게서 등을 밀어받아 가극단심사를 받았다. 그러나 결과는 불합격이였다.
《당시 조선대학교에로의 진학을 망설이던 나였기에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강향리단원)
대학을 간 후 다시한번 심사를 받자고 마음먹게 될 계기가 온다. 그가 대학 3학년시기, 조대생들이 총련 제25차 전체대회의 공연에 출연하게 되였는데 합창하는 그의 앞에서 가극단 무용수들이 춤을 추고있었다. 《나도 그들처럼 춤추고싶다!》
이제는 주변사람들이 등을 떠밀어주어서가 아닌 강향리단원 자신의 결심이였다.
입단한지 약 2개월, 그에게는 책임감을 가지고 공연과 그 준비사업에 림하는 선배단원들의 모습이 인상깊다고 한다.
강향리단원은 《앞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무슨 일이든 배우며 도전하는 자세를 잊지 말고 단원생활을 누려나가겠다.》며 앞으로 자신의 무용수 인생에서 원점이 되는 단원 1년째에 기술 및 정신육체적으로 성장할 결의를 가다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