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아카운트

경추증치료에서 묘기를 가진 고려의사

2024년 05월 11일 07:26 공화국

함경남도고려병원 기술부원장 김진일씨

《내가 고려의사가 된데는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함경남도고려병원 기술부원장 김진일씨의 가문은 3대를 이어오는 의학자가문이다. 그의 할아버지는 의원이였고 아버지도 일본에서 고학으로 의학공부를 한 외과의사였다.

함경남도고려병원 기술부원장 김진일씨

량심적이고 진보적인 경향이 강하였던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1949년에 한국의 괴뢰《정부》의 탄압을 받아 현해탄을 건느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러나 민족차별이 심하고 실력보다 먼저 돈주머니부터 들여다보는 일본에서 의학자가 되려는 아버지의 희망은 실현될수 없었다.

그러던 아버지에게 운명의 전환점이 도래하였다. 세계가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에로의 민족의 대이동》이라고 평한 재일동포들의 조국에로의 배길이 열리였던것이다.

귀국후 아버지는 국가로부터 모든것을 보장받으며 의학과학연구사업을 진행하였다.

김진일씨도 마음껏 의학공부를 할수 있게 되였다. 그러던 어느날 아버지는 림상학부가 아니라 고려의학부에서 공부할것을 아들에게 권고하였다.

갑자기 전공을 바꾸라는 아버지의 말에 그는 당황하지 않을수 없었다. 이때까지 열심히 림상에 대한 기초지식을 다져나가던 그에게 있어 전혀 생소한 고려의학을 하라고 하니 그럴만도 하였다.

선뜻 결심을 내리지 못하고 주저하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자기의것을 사랑하고 빛내이는데 진정한 애국이 있다고 본다. 자기의것이라는것이 무엇이겠니. 우리 민족이 창조한 고려의학을 더욱 발전시키는것도 애국이라고 나는 생각한다.》라고 말하며 선조들의 슬기와 지혜가 깃들어있는 고려의학의 우월성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였다.

민족의 전통의학인 고려의학발전에 자기를 바칠 결심을 가지게 된 김진일씨는 어느날 어느한 병원에 실습을 나갔다가 얼굴에 피기가 없던 한 애기가 발바닥에 뜬 뜸 몇장으로 소생되는것을 목격하게 되였다.

그날 있은 일은 그로 하여금 고려의학에 더 심취되게 하였다. 그는 선조들이 남긴 고려의술을 더욱 파고들었으며 남다른 정열로 높은 치료기술도 소유하게 되였다.

그 나날 사색과 연구를 거듭하여온 그는 경장료법을 내놓았다. 약물을 생리적경로를 통해 병이 생긴 여러 장기에 직접 투약하는 이 료법으로 그는 적은 량의 약물로 그 효과성을 높여 많은 환자들을 치료하였다.

그후 그는 경추증치료라는 더 높은 목표에 도전하였다.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정신로동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그로 인한 경추질병환자들이 많이 생기였다. 그리고 경추증은 난치성질병으로서 신의학적치료로는 완치률이 높지 못하였다.

함경남도고려병원의 의사들과 함께

그는 약물을 쓰지 않으면서도 수기치료로 경추증을 치료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기 위해 모색하였다. 기본은 위치이상이 온 경추의 추체를 찾아 교정하여 추골동맥순환을 정상으로 회복시키는것이였다.

마침내 그는 척추교정에 의한 경추증치료방법을 확립하였으며 이 방법으로 수많은 환자들을 치료하였다.

김진일씨에게서 치료를 받은 사람들은 그를 두고 경추증치료에서 묘기를 가진 의사라고 평하고있다.

(조선신보)

Facebook にシェア
LINEで送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