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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버지에 그 딸》,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안경상점 경리

2024년 04월 08일 07:01 공화국

송성희씨가 계승한 아버지의 애국심

평양에는 안경과 더불어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있는 녀성이 있다.

평양안경상점 경리인 송성희씨는 안경과 남다른 인연을 맺고있다.

인연은 아버지대부터 시작되였다.

평양안경상점 경리 송성희씨

송성희씨는 이렇게 말한다.

《해방된 다음에 우리 나라에서 문맹퇴치사업이 활발히 벌어졌습니다.

그러다나니 누구에게나 연필이 필요하였습니다.

저의 아버지 송대관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뜻을 받들어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연필을 생산한 기업가였습니다.》

힘있는 사람은 힘으로, 지식있는 사람은 지식으로, 돈있는 사람은 돈으로!

해방된 조국땅에서 김일성주석님의 개선연설을 크나큰 격정속에 접한 후 송대관씨는 절약하고 또 절약하며 마련한 많은 재부를 나라를 위한 일에 돌리였다.

1950년대중엽 나라에서 벼랭상모도입을 위해 모판용기름종이를 요구할 때 그것을 지체없이 생산공급했고 유리제품이 필요할 때에는 유리공장을 일떠세웠다.

1980년대초에는 거듭되는 실패속에서도 시험생산을 중단없이 내밀어 주체사상탑의 봉화를 제작하는데 필요한 투명강질유리생산과제를 성과적으로 수행하였다.

송대관씨는 시력이 좋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안경제작에도 정성을 기울이였다.

송대관씨는 광학유리생산을 전문으로 하는 일터에서 오랜 기간 사업해오면서 시력이 좋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안경제작에도 정성을 기울이였다.

그때를 돌이켜보며 송성희씨는 말한다.

《아버지의 그 모습에서 언제나 자신보다 나라를 먼저 생각할줄 아는 애국의 마음을 느꼈습니다.

그런 아버지의 정신을 이어가는것이 자식의 마땅한 도리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송성희씨는 아버지의 뜻대로 의사로부터 안경전문가로 방향전환을 하였다. 인민들의 요구에 맞게 안경을 높은 질적수준에서 제작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자체로 안경봉사에 필요한 현대적인 설비들도 갖추어놓고 안경봉사를 다양한 형식과 방법으로 진행하였다.

상점에서 찾아오는 손님들에 대한 안경봉사를 친절하게 진행하는 한편 검덕과 무산, 송림과 흥남 등 전국각지의 수많은 공장과 기업소, 건설장들을 찾아다니며 이동봉사도 자주 하였다. 과학자들의 사무실과 작가들의 집필실들에까지 찾아가 시력검사를 진행하였다.

그 과정에 송성희씨는 박사의 학위를 지니였고 사회주의애국공로자라는 값높은 영예를 받아안았다.

송성희씨의 나이는 70고개를 넘어섰다. 고령의 몸임에도 불구하고 예나 지금이나 나라를 위한 일에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쳐가고있는 그를 두고 사람들은 그 아버지에 그 딸이라고 정답게 부른다.

(조선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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