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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우리 말과 나⑧/박재수

2024년 03월 27일 09:14 론설・콜럼

우리 말이 살아있는 곳

학생들의 학예회를 보다

2월말 손자들이 다니는 도꾜조선제3초급학교의 학예회를 보러 가족들과 회장인 도꾜조선문화회관을 찾았다. 이날따라 부슬거리며 내리는 찬비에 찬바람까지 불어 날은 추웠다.

교문에 들어서니 어디선가 아이들의 힘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학예회를 성공시키자!》 하는 학생들의 구호소리였다. 열기띤 그들의 목소리가 궂은 날씨와 추위를 날려보내는것 같았다.

오후 1시 반, 우렁찬 노래소리로 학예회가 시작되였다.

필자의 손자들이 다니는 도꾜조선제3초급학교 학예회

민족의 슬기 키워가는 우리의 학교

동포들의 지성어린 우리의 학교

세계유산 훈민정음 교실마다 차넘치는

우리 학교 천년만년 우리가 지키자

전교생이 부르는 《우리 학교행진곡》으로 시작된 학예회는 귀여운 학생들이 펼치는 무대로 하여 더욱 빛났다. 특히 학년마다 올리는 특색있는 공연은 올해도 학부모들의 절찬을 받았다. 나는 그중에서도 해마다 1학년생들의 공연을 기대감을 가지고 본다. 그것은 우리 말을 배워서 1년밖에 안되는 그들이 얼마나 우리 말을 하게 되였을가 하는 관심때문이다.

올해 1학년생들은 아동극 《양념마을의 이야기》를 무대에 올렸다. 김장철이 찾아온 양념마을에 사는 고추, 마늘, 파, 생강들이 제각기 자기만 있으면 맞좋은 김치를 담글수 있다고 우쭐거리면서 배추와 어울리지만 좋은 맛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모두가 함께 어울리니까 아주 맛좋은 김치가 되였다는 이야기이다.

내용도 좋았지만 그보다 나를 기쁘게 한것은 그들의 또렷또렷한 우리 말이다.

나는 1학년생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지난해 수업참관날을 떠올렸다.

그날 6학년과 3학년에서 배우는 손자들의 수업을 참관하고나서 교실을 나서니 아이들의 귀여운 목소리가 또랑또랑 들려왔다. 소리나는쪽으로 가봤더니 처음 우리 말을 배우는 1학년생들이였다. 입학하여 석달밖에 안되는데도 열댓명의 학생들이 쨍쨍 울리는 목소리로 신나게 국어책을 읽고있었다. 그뿐이랴. 선생님의 질문에도 제법 우리 말로 또렷하게 대답한다. 그것도 단어가 아니라 문장으로 말이다. 발음도 좋고 자세도 바르다. 사랑스러운 그 모습을 흐뭇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학부모들의 눈가에는 미소가 어려있었다.

그날부터 오늘까지 선생님들과 동무들의 말을 듣고 말하며 우리 말을 배워왔으리라. 그것이 학예회에서 큰 은을 나타낸것이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동무들과 즐겁게 사귀면서 자기 눈으로 보고 듣고 체험한것을 표현할 우리 말을 하나하나 배우고 익혀온것이다.

그들의 우리 말은 나서자라면서 부모들에게서 배운 모어가 아니다. 4세, 5세들인 그들의 우리 말이 비록 모어가 아니더라도 우리 학교에서 훌륭한 모국어가 되도록 하루하루 열심히 배우고있다.

그들에게 있어서 그 길은 이제 시작한데 불과하고 앞길은 아득히 멀다. 그들이 희로애락의 미묘한 감정이나 섬세한 느낌을 불편없이 표현할수 있게 되자면 넘어서야 할 산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 말과 글로 생활하자니 숨이 턱턱 막힐 때도 있겠지. 얄팍한 언어의 한계를 느낄 때도 있겠지. 그러나 우리 학교가 존재하는 한 그들에게는 우리 말이 열어주는 희망찬 미래가 있다.

우리 말을 쓰는 마당

우리 동포들의 결혼식에 참가할 때마다 느끼는것이 있다. 사회자의 구수한 우리 말로 시작되는 결혼식이 주례인사의 우리 말로 이어지고 신혼부부의 백년가약의 맹세, 래빈축사, 사사, 동네사람들과 동창생들의 축사와 노래, 신랑신부의 감사인사에로 이어진다. 마치 우리 말 계주를 하듯이.

결혼식에 참가할 때마다 나는 우리 말이 오가는 화기애애한 축하연회마당의 분위기에 취한다. 우리 말이 오가는 마당에서 마시는 반가운 술이 나를 더 취하게 한다.

조대 문학부 37기생들의 동창회에 초대되였다.(앞줄 가운데가 필자)

지난해 11월, 문학부 37기생들의 동창회에 초대되여 참가했을 때의 일이다. 어느 제자가 식사하면서 한 말이 나의 귀전에 들려왔다.

《몇해만인가, 이렇게 우리 말을 쓰는것은. 정말 이런 마당이 아니면 언제 우리 말을 쓰겠는가.》

그 말에 나는 오늘 우리가 놓인 현실을 새삼스레 생각하게 되였다.

일본에 사는 우리가 우리 말을 평생 쓰며 산다는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어릴 때는 집단적으로 사는 동포동네가 일본 방방곡곡에 있었다. 나 역시 그런 동네에서 1세들의 우리 말을 들으면서 살았다. 그런 동포동네가 20세기 70~80년대에 들어서서 세대교체가 일어나고 동포들이 흩어져 살게 되면서 우리 말을 하는 마당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오늘은 3세가 동포사회의 주역으로 되였고 4세, 5세가 학교에서 배운다.

보통 외국에서 살다가 3세, 4세가 되면 완전히 그 나라 말만으로 살게 된다. 하물며 재일동포들이야 말해 못하겠는가. 그렇다고 조선사람인 우리가 일본말만 하면서 살아가겠는가. 우리가 그렇게 살면 일본사람이 되고만다. 다행히도 우리들 2세, 3세들만이 아니라 4세, 5세들인 우리 아이들도 우리 말과 글을 듣고 말하며 쓸줄 안다. 우리 학교에서 우리 말과 글을 배웠기때문이다.

우리 학교가 있어 학교는 물론 결혼식장, 동창회, 문화체육행사장들에서 우리 말이 오간다. 우리 학교가 있어 우리 말은 동포사회에 기적적으로 뿌리내리고있다.

우리 말을 지키기 위한 우리의 책무

오늘 우리들앞에는 우리 말과 글을 배우고 쓰는것이 그 어느때보다 긴요하고 중요한 문제로 나서고있다.

우리가 우리 말과 글을 배우고 쓰는것은 이역에서 살아도 조선민족의 정신으로 사는 참된 삶의 길에 잇닿아있기때문이다.

우리 말과 글이 살아있는 곳에 민족정신이 살고 우리 말과 글이 쓰이는 곳에 애국동포들이 산다.

오늘 우리가 쓰는 말이 모어화자처럼 능숙하지 않아도 그들과 의사소통을 할수 있다. 더 열심히 배우면 모어화자이상으로 우리 책을 거침없이 읽어낼수 있으며 제대로 독해하고 쓸수도 있다.

조선사람다운 감정이나 정서를 완전히 배양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우리 말을 배우고 쓰는 노력을 밥먹듯 꾸준히 해나간다면 모어화자들의 언어세계에 다가갈수 있을것이다.

우리에게 그렇게 사는 과정이 소중하다. 왜냐하면 그 과정이 우리를 조선민족의 정신과 문화를 간직한 조선사람으로 만드는 과정으로 되기때문이다. 이것이 애국으로 사는 시간일것이다.

우리 말을 잘 배우는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것이 있다. 그것은 우리 말로 평생 살겠다는 굳은 각오를 가지는것이다. 각오와 결심이 우리 말을 배우고 쓰는 행동을 낳기때문이다. 우리 말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 각오가 우리 말을 지키는 힘이 되기때문이다. 이 힘이 있으면 말하고 쓰고 듣고 읽는것이 아무리 어려워도 넘어설수 있다. 설사 좀 어색한 우리 말로 모어화자와 말을 주고받아도 주눅이 들지 않을것이다.

우리가 우리 말과 글을 알고 쓰는것은 단순한 지식으로 끝나는것이 아니다. 언어는 인간생활의 무기이며 사람들의 삶과 사고에 큰 영향을 미친다. 우리의 말과 글은 우리의 삶이며 우리 민족의 정신이다. 우리 말과 글이 우리 동포들의 민족정신과 문화, 력사를 만들어나간다. 지식에 불과한 언어는 생명력을 잃은 공허한 말에 불과하다.

세상에서 가장 뛰여나고 가장 아름다운 우리 말과 글로 자기 생각을 바르게 표현하는 학생들의 모습에서 그들의 빛나는 미래를 나는 본다.

비록 시간이 걸린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우리 말이 모어처럼 든든히 뿌리내릴수 있도록 사랑하는 우리 꽃봉오리들에게 물을 듬뿍 뿌려주자. 그것이 우리 총련조직과 일군들의 책무일것이다.

【경력】1966년 3월 교또조선중고급학교 졸업(9기생), 1970년 3월 조선대학교 문학부 졸업(12기생), 문학부 및 문학력사학부 학부장, 조선어연구소 소장 력임, 현 한글능력검정협회 상담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교수, 언어학박사

(조선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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