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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글】동창생 김명훈동무를 생각하며/김학권

2024년 03월 01일 18:17 기고

뜻하지 않은 부고를 받았다.

총련 니이가다현본부 죠에쯔(上越)지부 비전임위원장 김명훈동무가 2월 19일 애석하게도 우리의 곁을 떠났다는것이다. 향년 75세.

그는 나와 같은 도꾜조고 사범과 5기를 졸업하여 민족교육의 교단에 선 후 불고기점방을 하던 가업을 이으면서 지부사업을 맡아왔었다.

그의 아버지도 이곳에서 위원장을 오래 하신분이였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조일관계가 험악해지고 동포동네에서도 세대가 교체되는 등 제반 사정으로 지부는 한때 유명무실한 상태로 되였다. 아버지의 뜻을 이은 그는 비전임위원장으로서 동포동네를 한집한집 찾아다니며 드디여 지부를 다시 살아움직이는 지부로 재건하였다.

이곳은 눈이 많이 오는 광활한 지역이다. 한명의 동포를 만나자고 해도 자동차를 몰고 몇십분, 몇시간 가야만 한다. 나도 거주지에서 자전거를 타면서 동포집집을 찾아 분회를 재건한 일이 있었는데 이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의 활동은 《총련분회대표자대회-2020》에서 특별상을 수여받는 등 크게 평가되였으며 그후 《조선신보》를 통하여 널리 알려졌다. 잡지 《이어》에도 부부가 소개되였다.

그런데 그는 그 시기부터 무서운 병마와 싸우고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기 몸을 달래가며 지팽이를 짚으면서 지부활성화를 위해 동분서주하였다.

처음에 나는 그런 사연도 모르고 《동무의 활약에 언제나 힘을 얻고있다!》고 격려의 말을 건네였다. 그는 학생시기부터 정말 말수가 적은 동무였다. 그런 동무가 그곳에서 참으로 뜨거운 인생을 보내고있었던것이다.

올해 1월 이시까와현 노또반도지진(能登半島地震)때 나는 그가 걱정되여 안부를 물으려고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전화는 좀처럼 통하지 않았다. 3일만에 겨우 통화가 되였는데 그는 입을 열자마자 《강가에 사는 동포집이 무너졌어, 강물이 거꾸로 올라와서 자동차도 흘러가버렸다.┅》 하며 자기 집보다 동포집 걱정부터 하는것이였다. 병때문에 잘 알아들을수 없는 그의 말에 나는 몇번이나 《좀더 천천히 이야기해달라.》고 할수밖에 없었다.

이 통화가 명훈동무하고의 마지막대화가 되였다.

나는 사범과 동창생 4명으로 니이가다현 나오에쯔(直江津)를 향했다.

같이 간 아이찌의 황동무는 추도문을 써서 명훈동무의 관에 넣었다. 나오에쯔는 조용한 마을. 눈은 다행히도 안내렸지만 공기는 차겁고 맑았다.

명훈동무는 여기서 누가 보건말건, 평가를 받건말건 자기 신념대로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일편단심》으로 살아왔다.

나는 우리 도꾜조고 사범과 5기 동창생 김명훈동무에게 존경의 뜻을 담아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다시한번 옷깃을 여미며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한다.

(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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