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고】《잣씨어머니》가 준 지팽이/한창도
2024년 02월 27일 10:09 기고(아이구!! 아파…)
새해를 맞으며 맡은 사업에서 보다 많은 성과를 거두리라 굳게 결심다지던 나는 시작으로부터 창피하게도 다리를 부상하였다.
그것은 축구경기를 하다가 뽈을 쫓아갔을 때였다. 허벅다리뒤 근육이 분명히 단절되는 소리가 들려 그 순간 신경을 세게 쑤신것과 같은 아픔이 온몸을 달렸다. 곤충채집이랑 하면서 야외를 자주 다니기에 축구쯤이야 괜찮겠지 싶었는데 망신을 당한셈이다. 겨우 집으로 돌아왔으나 이날 저녁도 아파서 잠을 제대로 못잤다. 그러나 그 고달픔속에서 문뜩 조국의 묘향산에 계시는 한 어머니 생각이 났다.
2018년6월.
김일성종합대학의 통신박사원에 소속하여 연구를 진행하던 나는 곤충류의 조사를 위해 향산군을 찾았다. 그래서 묘향산의 하비로에서 차를 세우다가 오랜만에 거기서 《잣씨어머니》와 감동적인 상봉을 하게 되였다. 어째서 내가 그분을 《잣씨어머니》라 부르게 되였는가 하는 자초지종은 다음과 같다.
조선대학교 연구원생으로서 2008년에 야생동물의 조사사업으로 묘향산을 방문했을 때, 큰비가 와서 몇시간을 만폭동에서 지내지 않으면 안되게 되는 일이 있었다.
그때 한 아주머니가 매점에서 나오시고는 나에게 다가오면서 무슨 작은 《나무쪼각》같은것을 건네주는것이였다. 아직도 풋내기연구자였던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어째서 이 아주머니가 쓰레기같은걸 나에게 넘겨줄가?) 하고 의심스레 그를 쳐다보았다. 그런 내 모습이 얼마나 어색해보였는지 아주머니는 허탕하게 웃으시면서 《야-! 이 선생이 잣씨(잣나무의 씨)를 못알아보는구나!》 하면서 《향산에는 잣나무가 많은데 이 씨를 먹으면 몸에도 좋구 힘도 나는데! 어서 먹어보라구!》라고 말을 이으시는것이였다.
나는 그런줄도 모르고 잣씨를 무슨 쓰레기라 오해한것이다. 나는 그 잣씨를 함께 나누어먹으며 우리를 위해 매점에서 휴식도 시켜주고 향산의 아름다움과 살기 좋음에 대해서 차근차근 이야기해주신 아주머니의 품성에 완전히 마음이 녹았다. 그런 일이 있은 후로부터 그분을 《잣씨어머니》라 다정하게 부르며 지내게 된것이다.
내가 오늘은 무슨 일로 하비로에 계시는가고 물어봤더니 조고학생방문단이 이곳에서 점심시간에 불고기모임을 예정하는데 국내사람들에게도 이 자리가 인기있으니 자신이 아침일찍 나와 먼저 자리를 확보하는중이라고 하시는것이였다.
이 사연을 듣고 또다시 어머니의 배려에 감동을 금할수 없었다. 나는 그후 이날 있은 일을 숙박했던 청천려관일군에게 이야기했더니 그분이 바로 향산의 관광부문에 오래 종사하시면서 모든 사람들로부터 높은 신망도 받고있고 누구나가 따르는분이시라는것을 알게 되였다. 바로 내가 다정하게 부르던 《잣씨어머니》는 향산군의 《우리 어머니》였던것이다.
묘향산을 떠나는 날 나는 작별인사를 드리러 어머니를 찾았다.
어머니는 나를 반갑게 맞아주시고는 《이국땅 일본에서도 조국의 아름다움, 향산의 풍치를 잊지 말고 우리 이곳에서 다시 만나자!》라고 하시면서 나에게 손잡이가 룡의 대가리모양으로 되여있는 지팽이를 선물로 주셨다.
그 지팽이는 내 연구방에서 오늘까지 소중히 보관되고있다.
….
다음날 아침, 아픈 다리를 절면서 나는 대학을 향했다.
언제나보다 몇배나 멀게 느껴지는 로정인데도 그 지팽이를 쥐니 내 마음은 앞으로 앞으로 달렸다.
아름다운 묘향산의 든든한 나무로 만들어진 조국의 향기가 풍기는 멋진 지팽이.
조국을 몹시 가까이 느끼게 해주는 어머니의 조국애와 동포애가 깃든 지팽이.
잣씨어머니!
향산의 맑고 푸른 하늘과 아름다운 강산을 그리며 나도 어머니처럼 조국과 동포사회를 위해 열심히 일해나가겠습니다!
(조선대학교 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