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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우리 말과 나⑥/박재수

2024년 01월 18일 10:36 론설・콜럼

말놀이

외손자와 말놀이를 즐기다

어린이들은 놀이라면 오금을 못 쓴다. 우리 외손자들도 놀이를 무척 좋아한다. 쌍둥이인 셋째와 넷째는 우리를 보기만 하면 《할배, 할매 같이 놀자.》라고 하면서 졸라댄다.

얼마전에 딸네집을 찾아갔을 때의 일이다. 외손자들은 우리를 보자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대뜸 놀자고 하는것이였다. 내가 《숙제를 다 해야 놀지. 숙제는 했냐?》라고 물었더니 쌍둥이는 이중창을 하듯 《예~》 하고는 《할배, 주패놀이 하자!》라고 하는것이다. 우리는 외손자들과 재미나게 주패놀이를 하였다.

외손자들과 지내는 즐거운 한때(오른쪽 우가 필자)

얼마 안 있어 셋째가 《다른 놀이를 하고싶어.》라고 했다. 《그럼 말꼬리잇기를 할가.》라고 하니 《예!》라고 대답한다. 둘째도 들어와서 말꼬리잇기를 하기 시작했다.

《학교→교실→실내화→화산→산보…》. 제법 말들을 이어간다. 그러다 셋째가 막히자 넷째가 《이겼다!》 하면서 기뻐했다.

말꼬리잇기에 이어 물어보기놀이도 하였다. 물어보기놀이란 《왜》라고 하면서 하나의 질문을 하고 그 답에 대해 련속적으로 《왜》라는 질문을 하는 말놀이이다. 우리는 누가 대답을 더 오래 련속적으로 할수 있는지를 겨루기로 하였다.

저 아이는 왜 울고있을가? → 아파서.

왜 아플가? → 넘어져서.

왜 넘어졌을가? → 뛰다가.

왜 뛰였을가? → 학교에 늦어서.

왜 학교에 늦었을가? → 늦게 일어나서.

왜 늦게 일어났을가? → 늦게 자서.

왜 늦게 잤을가? → 만화책을 보아서.

왜 만화책을 보았을가? → 재미있어서.

처음은 힘들어하던 외손자들도 익숙되니까 재미를 붙이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왜》라는 질문을 하면서 대답하는 말놀이는 아이들의 생각하는 힘을 키우는데 좋은 놀이이다.

이어서 빠른말놀이도 하였다.

가고가고 기여가고 걸어가고 뛰여가고 …

나는 빠른말놀이를 하면서 문학부 학생들과 조국을 방문했을 때에 빠른말을 비롯한 여러가지 화술지도를 해주신 조국의 고마운분들의 얼굴을 그리운 마음으로 떠올리였다.

오늘 우리 학교 학생들이 입에 올리는 빠른말은 조국강습에서 배운 우리 국어교원들과 대학생들이 보급한것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마냥 설레이고 흐뭇하였다.

우리 학교에서 배운 우리 말로 이렇게 말꼬리잇기나 물어보기놀이, 빠른말로 놀이를 할수 있는 외손자들이 볼수록 대견스러웠다.

내가 즐기는 말놀이

내가 말놀이에 관심을 가진것은 40여년전, 교또조선제2초중급학교 김순영선생이 유치반 아이들이 쓰던 약 4,000개의 일본말 단어와 유치원생들의 일상생활언어를 모은것을 우리 말로 번역해달라고 부탁해온것이 계기가 되였다. 나는 그것을 번역하는 과정에 어린이말에 흥미를 가지게 되였으며 어린이들의 언어습득에 필요한 재미나는 말놀이그림책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였다.

번역이 끝난 후에 북과 남의 어린이용 그림책과 만화책을 모으고 아이들의 말, 의성어와 의태어의 자료집을 만들었다.

말의 반복이나 의성어, 의태어가 들어간 말놀이그림책을 만들어 재미나게 읽어주면 리듬과 운율이 반복되는 소리를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즐거운 놀이가 될수 있고 그들의 언어감각과 사고력을 키울수 있다고 생각했기때문이다.

1990년에 필자가 발간한 《어머니와 아이를 위한 우리 말 공부 씨리즈1 》

나는 조선청년사의 담당자와 의논하여 《어머니와 아이를 위한 우리 말 공부 씨리즈1 <놀자요>(1990년)》를 출판하였다. 씨리즈2에 《먹자요》, 이어서 의성어와 의태어로 노는 말놀이그림책들도 준비했었는데 아쉽게도 여러 사정으로 중단되고말았다.

말놀이는 가지수가 많다. 그중에는 내가 즐기는 말놀이도 있다.

내가 즐기는 말놀이는 결혼축하시, 수자놀이, 가나다라놀이 등이다. 결혼축하시는 신랑과 신부의 이름과 결혼축하라는 글자를 머리글자로 하여 짧은 시를 짓는것이다. 나는 이 결혼축하시를 지금까지 20여편 만들어 결혼하는 제자들에게 선물하였다.

수자놀이나 가나다라놀이 같은 말놀이도 방법은 같다. 수자놀이로 만든 《수자풀이놀이》가 12월 16일부 《조선신보》에 실렸는데 그것을 보면서 오래전에 가나다라놀이로 만든 《가나다라순 인생풀이》를 그리운 마음으로 추억하였다.

 

《가나다라순 인생풀이》

가 –  가는 세월 그 누구도 붙잡을수 없기에

오는 시간 천금보다 귀중하여라

나 –  나 혼자만 생각하며 사는 그 인생

천년이면 무엇이고 만년이면 무엇이랴

다 –  다 산 뒤에 남길것을 말해보아라

돈이더냐 재부더냐 명예이더냐

라 –  라면처럼 뒤엉켜진 이 세상살이

무엇을 바라고서 헤쳐가는가

마 –  마음속에 뿌리내린 량심에 비춰

진심으로 소리높이 말하여보자

바 –  바쁘게도 길을 걸어 땀흘린 끝에

너와 내가 이를 곳은 그 어디메냐

사 –  사랑에 불타는 애정의 골짜긴가

호의호식 무르녹은 단란한 가정인가

아 –  아무리 생각해도 둘러보아도

그런것을 인생이라 할수가 있나

자 –  자기를 다 바치여 얻고싶은것

한생을 걷고걸어 가닿고싶은 곳

차 –  차거운 얼음장이 녹아내리는

봄날같이 따뜻한 동포사랑 민족사랑

카 –  카텐을 거두고 해빛을 받자

맑고맑은 창유리로 스며드는 태양자애

타 –  타향이라 이국이라 서러워 말고

단군민족 태양아래 한가정되자

파 –  파란만장 우여곡절 헤치고 넘어

애족애국 한길만을 가고 또 가면

하 –  하나밖에 없는 인생 빛내여주는

조선사람 그 넋이 영원하리라

 

수자놀이나 가나다라놀이는 만드는 사람마다 그리고 지을 때마다 내용이 달라지니 재미있는 놀이이다.

글을 짓는것을 어려워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긴 시를 만들기 어려우면 한 글자만을 머리글자로 하여 단시를 만들어 놀수도 있으니 말이다.

말놀이가 키워주는 힘

말놀이는 어린이들뿐아니라 초중고 학생들, 대학생들, 우리같은 어른들도 즐길수 있는 놀이이다.

말놀이는 사람들의 어휘력을 높여줄뿐만아니라 상황에 맞는 말을 류창하게 할수 있는 표현력도 키워준다.

와글와글, 바글바글, 부글부글처럼 소리가 비슷한 말들을 함께 익히는 사이에 언어에 대한 감각과 상상력, 문장리해력도 자란다.

흥미로운 말놀이로 생각의 폭이 넓어지고 깊어지는것이다.

말은 생각의 수단이기도 하다. 생각이란 머리를 써서 헤아리는것만큼 언어가 중요한 밑바탕이 된다. 어릴 때 언어자극을 많이 주면 언어뿐아니라 두뇌발달에도 도움이 된다. 출렁출렁, 살랑살랑처럼 리듬감있는 말들을 반복하여 듣고 말하고 읽다보면 어느새 말이 훌쩍 늘고 두뇌발달도 같이 이루어진다. 부모가 아이에게 음절이 반복되는 말이나 의성어, 의태어를 자주 말해주다보면 그 리듬감에 좌뇌뿐아니라 우뇌도 활성화되는것이다.

뜻있는분이 귀에 쑥쑥, 입에 착착, 따라 하면 말이 느는 신기한 그림책을 만들어주었으면 하는것이 나의 소원이다.

【경력】1966년 3월 교또조선중고급학교 졸업(9기생), 1970년 3월 조선대학교 문학부 졸업(12기생), 문학부 및 문학력사학부 학부장, 조선어연구소 소장 력임, 현 한글능력검정협회 상담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교수, 언어학박사

(조선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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