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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영웅도로건설자들이 추억하는 500만개의 《보약만두》

2024년 01월 30일 06:27 공화국

1999년 5월 어느날의 점심식사에 깃든 사연

20여년전에 완공된 청년영웅도로의 건설과정에는 가슴뜨거운 일화들이 많다.  500만개의 《보약만두》에 관한 이야기도 그렇다.

밀가루 같은것을 반죽하여 여러가지 소를 두고 빚은 음식인 만두는 많은 품을 들이지 않고 만들수 있는 음식이지만 당시 도로건설에 떨쳐나선 청년들에게 있어서는 가슴속에 영원히 잊지 못할 추억으로 간직된 음식이다.

건설이 한창이던 1999년 5월 하순 어느날 청년들은 김정일장군님의 은정에 의하여 마련된 점심식사를 하러 평양의 식당들에 가게 되였다. 이름난 옥류관, 청류관, 칠성각 등 큰 식당들마다에서는 청년들을  기다리고있었다.

청년들이 식당들에 도착하자 봉사원들이 달려나와 꽃목걸이를 걸어주고 예술인들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

청년돌격대원들은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청년들의 놀라움은 더더욱 커갔다. 청년들은 누구나 식당에 와서 조용히 식사나 하고 그냥 돌아가는것으로만 알고있었던것이다. 그런데 막상 와보니 여기저기에 청년돌격대원들을 열렬히 환영하는 구호와 선전화들이 걸려있었고 식당들마다는 말그대로 명절분위기였다.

식당에 들어선 청년들은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놓은 푸짐한 식탁을 마주하게 되였다.

큼직한 접시에 무드기 담겨진 기름기가 철철 도는 만두와 따끈한 밥, 향긋한 냄새를 물씬물씬 풍기는 김치, 거품이 부글부글 괴여오르는 맥주 등 보기만 해도 군침이 절로 도는 푸짐한 음식상이였다.

그러나 누구도 선뜻 수저를 들지 못하였다.

봉사원들을 통하여 그 푸짐한 음식상에 깃들어있는 사연을 알게 된 청년들은 어린애들처럼 소리를 내며 흐느껴 울기만 하였다.

청년들은 격정의 눈물을 흘렸다.

어느날 일군들을 부르신 장군님께서는 평양-남포고속도로(당시)건설에서 위훈을 떨치고있는 건설자들에게 먹이려고 500만개의 만두를 준비해놓았다고 하시면서 한사람당 차례질 만두의 수까지 가늠해보시고 날씨가 무더워지기 전에 빨리 조직사업을 하여 청년건설자들에게 푸짐히 먹여야 하겠다, 그러자면 만두만 가지고서는 안될것이다, 육체로동을 하는 청년들이기때문에 식사량이 일반사람들과 다른것만큼 그들에게 만두와 함께 밥과 김치도 해주고 맥주도 한조끼씩 주어야 한다고 간곡히 이르시였다.

푸짐한 점심식사가 마련되였다.

자신께서는 쪽잠과 줴기밥으로 머나먼 전선천리길을 이어가시면서 한두명도 아닌 수많은 돌격대원들에게 한시에 푸짐한 점심식사까지 마련해주시는 장군님의 다심한 사랑을 받아안은 청년들은 격정의 눈물을 흘렸다.

그날 청년들은  장군님께서 마련해주신 만두며 갖가지 음식들을 맛있게, 푸짐하게 먹었다.

그 이튿날부터 청년들은 너나없이 모두가 힘장사로 되였다고 한다.

당시 건설에 참가한 윤은미씨(평양시 평천구역 간성동 거주)는 《조선의 오늘》(dprktoday.com)에 보낸 투고글에서 이렇게 썼다.

《당시 나를 비롯하여 애어린 우리 처녀들은 보통 때에는 한개도 겨우 다루던(사실 다루었다고 하는것보다 끌고다녔다고 해야 더 정확하다.) 흙마대를 량옆에 하나씩 척 끼고 달렸는가 하면 대대적으로 제일 약골이라고 늘 놀림을 받던 총각은(후날 그는 나의 남편이 되였다.) 깊숙이 뿌리박힌 커다란 바위를 단숨에 들어내여 돌격대원들 모두의 입을 딱 벌어지게 하였다. 그런가 하면 탈이 나서 천막에 누워있던 여러 동무들도 그 만두를 먹고 말끔히 병을 털고 일어났다.

당시 청년들이 건설장에나붙은 선전화

당시 이러한 사연을 알게 된 사람들은 그것은 분명 보통 만두가 아니라 〈보약만두〉라고, 위대한 장군님께서 온갖 병을 털고 무쇠같은 힘이 용솟게 하는 약재로 만두를 만들어 청년돌격대원들에게 보내주신것이 분명하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였다.》

(조선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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