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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우리 말과 나③/박재수

2023년 09월 27일 09:12 론설・콜럼

우리 말 사전은 나의 친근한 벗

《조선말사전》편찬에 기여한 일군들에게 국가수훈의 영예가 안겨졌다.(8월 28일 조선회관)

감회도 새로운 《조선말사전》편찬사업

7월초순이였다. 학우서방 일군이 나의 손전화와 콤퓨터, 판콤에 전자판 《조선말사전》을 설치해주었다. 집에 돌아와서 서툰 솜씨로 이것저것 단추를 누루면서 검색을 해보았다. 감개무량했다.

2010년말에 사전편찬사업을 시작하여 출판까지 10여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에 있은 일들이 눈앞에서 자꾸 얼른거렸다. 편찬사업을 하던 나날들에 있은 일들을 떠올리니 오늘의 현실이 꿈만 같았다. 우리 학생들에게 《조선말사전》을 안겨주게 되였다고 생각하니 저절로 눈굽이 뜨거워졌다.

편찬사업을 하던 기간에 뜻밖에 들이닥친 중단위기는 한두번이 아니였다. 그것을 이겨내여 오늘의 사전출판을 보게 되였으니 편찬위원으로서 어찌 기쁘지 않으랴.

처음 중단위기는 참으로 충격적이였다.

사전편찬사업을 시작하여 1년이 지나갈무렵 편찬사업에서 중심적역할을 놀던 조선대학교 한성구선생이 중병으로 눕게 된것이다. 그바람에 사전편찬사업이 일시 마비상태에 빠졌다. 퇴원후 그는 고모네집에서 절망속에 시간을 보냈었다. 전화를 해도 나오지 않았다. 아까운 시간만 흘러가니 우리 편찬위원들의 마음은 복잡하고 답답하기만 하였다.

우리 편찬위원들이 그를 찾아가보니 형편은 심각했다. 우리의 말에 응답조차 하지 않았다. 그를 여러번 찾아가면서 우리는 조국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우리의 설득으로 그는 조국에 가서 치료를 받게 되였다.

조국에서는 그를 동포애적사랑으로 성심성의 치료해주었다. 후유증으로 몸은 불편하였으나 치료과정에 사전편찬사업에 대한 그의 의욕이 되살아난것은 우리를 기쁘게 했다.

그는 조국에서 치료를 받으면서 사전편찬을 계속할수 있게 되였다.

조국은 그에게 전문의료진을 꾸려주고 우리의 사전편찬사업에 대한 강력한 대책도 세워주었다. 사회과학원 언어학연구소와 김일성종합대학을 비롯한 조국의 유능한 연구자들이 동원되였다. 사전편찬사업은 이렇게 재개되였다.

관계자들의 깨끗한 량심과 열정이 우리의 《조선말사전》을 내놓게 하였다.(사진은 사전원고의 일부)

그런데 얼마 안있어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이번에는 학우서방의 류수옥편찬책임자가 사경을 헤매는 중병을 앓게 되였다. 그러나 이 고비도 본인의 강한 생명력과 치료로 기적적으로 회복되여 계속 편찬사업을 밀고나갈수 있었다.

사전편찬작업이 마감단계에 들어섰을 때 또다시 코로나재앙으로 작업이 중단되였다. 그러나 새시대의 요구에 맞게 종이사전으로 준비하던것을 전자사전으로 전환하여 2023년 5월에 드디여 《조선말사전》을 세상에 내놓게 되였으니 어찌 감회가 깊지 않겠는가.

불현듯 우리 학생들의 미래를 담보해주는 사전편찬을 제기한 그날의 추억이 뜨거워지는 감회속에 어제일처럼 되살아났다.

나는 2000년을 전후하여 학생들의 학력이 날로 떨어지는 현실을 보면서 위기감을 느끼고있었다. 학생들의 학력저하가 교과서의 글, 교원의 말을 잘 리해하지 못하고있다는데 기인한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1986년에 출판된 《조선말소사전》의 재고가 떨어져나가는것을 보면서 재일동포자녀들을 위한 사전편찬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때 학생용조선말사전편찬은 나의 인생 마지막사업이라고 속다짐했다. 그 꿈이 이렇게 빨리 실현될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고생끝에 락이 온다고 우리 학우서방 일군들과 편찬위원들, 조국의 연구자들의 깨끗한 량심과 열정이 세상에 둘도 없는 우리의 《조선말사전》을 내놓게 하였다.

우리 말 사전을 벗 삼아 60여년

돌이켜보면 나의 인생에서 사전은 특별한 존재였다. 그중에서도 우리 말 사전은 내가 보람찬 인생을 걷는데서 한몫 단단히 해주었다.

우리 말과 글을 배우고 가르치던 나날에 조선말사전은 나의 머리속을 새 지식으로 메워주었다.

중1과 중2 여름에는 산속에 있던 집(함바)에서 국어와 조선력사교과서를 우리 말 사전으로 조사하면서 공부했다. 하나의 단어를 조사하는데 1시간이상 걸린것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고생끝에 찾아냈을 때에는 절로 탄성을 올리기도 했다. 이것이 계기가 되여 중고시기에 늘 사전을 가지고 다니게 되였고 모르는 말이 나오면 곧 사전을 펴보군 하였다. 그러는 사이에 사전을 펴는것이 습관으로 되였다.

대학생시절에도 그 습관은 이어졌다. 특히 대학교원이 된 후 그 습관은 더 몸에 배이게 되였다.

교수준비에 사전은 필수적이다. 사전의 도움으로 어휘소유량이 부쩍 늘어났고 새 지식도 얻게 되였다. 사전으로 조사하는 과정에 비슷한말의 뜻차이, 성구나 문법적구, 문법적관용표현 등에 대한 관심이 커졌으며 그것을 조사하는데 재미를 느꼈다. 이렇게 사전으로 조사하는 재미로부터 언어연구에 대한 흥미와 관심이 날을 따라 커갔다.

조금이라도 의문되거나 모르는 말이 있으면 사전으로 조사하는 습관이 어느새 몸에 배여 사전을 펴지 않으면 안절부절 못하였다.

그 습관은 그후의 나의 교원생활과 연구사업의 밑거름이 되였다.

사전으로 조사하는 습관을 통하여 나는 사전이 사람의 인생도 바꿀수 있는 큰 힘을 가진다는것을 확신하게 되였다.

나의 인생길은 이렇게 우리 말 사전과 함께 걸어온 나날이였다.

《조선말사전》과 우리 학생들

우리 말 사전은 나의 언어능력을 높이는 무기가 되였다.

사전으로 말의 의미를 조사하고 새 지식과 정보를 얻는 과정에 말에 대한 리해가 깊어지고 국어실력이 높아졌다. 국어실력이 높아지면서 우리의것을 더 잘 알게 되였고 전문지식에 대한 리해력도 높아졌다.

나는 지금도 모르는 말이 있을 때에는 남에게 묻지 않는다. 모르면 먼저 자기가 사전으로 조사하는것이 보다 정확한 지식과 정보를 얻을수 있다고 생각하기때문이다.

사전으로 얻은 지식이나 정보는 말을 하거나 글을 쓰는데서 큰 재산으로 되고있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여야 보배라는 말이 있듯이 사전도 써야 빛난다.

나는 사전을 리용하는 과정에 《주체적으로 배우는 힘》,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힘》이 몸에 배이게 되였다고 자부한다.

모든 공부는 국어실력이 안받침되여야 탑을 쌓을수 있는 법이다.

세살적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다.

사전으로 찾는 습관이 없는 어른은 어릴 때에 사전을 펴본적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러기에 초급부시기부터 국어사전을 활용하는 습관을 키우는것이 중요하다. 초급부시기에 어휘력이 뒤지면 학습에 지장을 받게 되고 나아가 학습의욕이 낮아지고 책을 읽는것도 싫어하게 된다. 모르면 재미를 느끼지 못하기때문이다.

학생들이 초급부시기에 사전을 펴보는 습관을 키우지 않으면 중고에 가서도 모르는 어휘를 사전으로 찾아 스스로 확인하면서 리해하려 하지 않을것이다. 습관이란 그렇게 무서운것이다.

초급학교 학생들은 호기심의 덩어리이다. 척 하면 물어보고 알려고 한다. 사전은 그런 학생들의 의문을 풀어주고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지식과 정보의 보물고이다.

그러니 교원들은 학생들이 말의 뜻을 모를 때에는 《조선말사전》으로 찾아서 확인하고 리해하는 습관을 키워주어야 할것이다. 그것이 교원의 맑고 깨끗한 량심이고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자면 우리 학생들에게 모르는 말은 《조선말사전》으로 찾아서 배우는 재미를 느끼게 하는것이 중요하다. 재미가 학습의욕을 돋구게 하기때문이다.

동포자녀들의 미래를 가꾸어가는 길에서 《조선말사전》이 우리 학생들과 동포들의 친근한 길동무, 힘있는 무기가 되리라 믿는다.

【경력】1966년 3월 교또조선중고급학교 졸업(9기생), 1970년 3월 조선대학교 문학부 졸업(12기생), 문학부 및 문학력사학부 학부장, 조선어연구소 소장 력임, 현 한글능력검정협회 상담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교수, 언어학박사

(조선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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