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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국창건 75돐〉참다운 인민의 나라의 탄생

2023년 09월 09일 09:25 조국・정세

1948년 9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창건은 식민지망국노의 피눈물로 엮어진 수난의 력사를 끝장내고 참다운 인민의 나라 주체조선의 탄생을 알리는 세기적인 사변이였다. 김일성주석님께서는 기성리론이나 다른 나라의 경험에 구애됨이 없이 철저히 자주적립장으로부터 출발하시여 해방후 조선은 미국식《민주주의》나 쏘련식민주주의가 아니라 새로운 진보적민주주의길로 나아가야 한다는 독창적인 사상을 밝히시고 그것을 빛나게 구현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창건하시였다.

자주의 건국로선을 제시

조국해방의 만세소리가 삼천리를 뒤흔들던 그때 온 나라 인민은 민족의 영웅이신 김일성주석님의 조국개선을 일일천추로 고대하고있었다.

평양시와 평안남도의 각계각층 대표들은 김일성장군환영준비위원회를 뭇고 주석님을 영광의 단상에 높이 모시기 위한 준비를 서둘렀으며 대동군인민들은 주석님께서 탄생하신 만경대에서 그이를 제일먼저 맞이하게 되리라는 크나큰 기대를 안고 김일성장군환영향토준비위원회를 따로 조직하였다.

홍명희, 려운형, 허헌 등 각계층 인사들도 서울에서 김일성장군환영준비위원회를 내오고 민족의 영웅 김일성주석님을 맞이하기 위한 여러가지 성대한 준비사업을 벌렸다. 주석님께서 서울에 입성하신다는 소문을 듣고 손에손에 축하의 꽃묶음과 프랑카드를 들고 달려나온 사람들로 서울역전은 매일같이 붐비였다.

해방된 조국땅우에 어떤 나라를 세워야 할지, 어느 길로 나가야 할지 누구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있던 복잡다단한 정세속에서 형형색색의 사상가, 운동가들이 나타나 저저마다 인민들을 유혹하고 건국의 앞길에 어두운 그림자를 던지고있었다.

주석님께서는 수십성상 타향의 차디찬 눈비를 다 맞으시며 혈전의 수천수만리길을 헤쳐오시면서 언제 한번 잊으신적이 없는 고향과 조국이였건만 조국에로의 출발을 서두르지 않으시였다.

항일혁명투사들이 조국으로 돌아가면 새 조선건설로 언제 하루라도 쉬여보시겠는가고 하면서 항일전의 오랜 세월 쌓인 피로를 조금이라도 푸실것을 바랐건만 주석님께서는 새 조국건설의 명확한 로선을 마련하시기 위해 사색에 사색을 이어가시였다.

1945년 8월 20일 김일성주석님께서는 군사정치간부들앞에서 《해방된 조국에서의 당, 국가 및 무력건설에 대하여》라는 력사적인 연설을 하시였다.

주석님께서는 조국해방의 력사적위업이 성취됨으로써 이제 우리앞에는 새로운 투쟁과업이 나서게 되였다고 하시면서 우리는 승리한 성과에 기초하여 조선혁명을 계속 앞으로 전진시켜야 하며 조선인민자신의 손으로 부강하고 자주적인 독립국가를 건설해야 한다고 밝혀주시였다.

주석님께서 밝히신 건국로선에는 조국해방의 력사적위업을 우리 인민의 손으로 이룩한것처럼 새 조국건설도 그 누구의 손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손으로, 우리 나라의 실정에 맞게 우리 식으로 해나가야 한다는 투철한 자주적립장이 뚜렷이 반영되여있었다.

이렇듯 투철한 립장을 지니신 주석님이시였기에 조국해방을 앞두고 당시 쏘련공산당에서 해방후 조선인민의 건국투쟁에 어떤 형태의 지원을 주었으면 좋겠는가고 하였을 때에도 도와준다면 물론 고맙겠지만 우리는 될수록 자체의 힘으로 나라를 일떠세우려고 한다고, 힘들더라도 그렇게 하는것이 장래를 위해서 좋다고 생각한다고 확신에 넘쳐 교시하시였던것이다.

주석님께서는 조국개선에 앞서 새 조선건설의 앞길을 환히 밝혀주시고서야 그리운 조국으로 향하시였다.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해방직후 남조선에 기여든 미제는 친미사대매국노들을 부추겨 《단선단정》조작책동을 악랄하게 벌리였다.

이러한 때인 1947년 10월 김일성주석님께서는 북조선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 중앙위원회 의장단회의에서 하신 력사적인 연설 《남북협상방안에 대하여》에서 민족분렬의 위기를 막기 위한 대책으로서 남북의 정당, 사회단체 대표들의 련석회의를 소집할데 대한 방안을 내놓으시였다.

주석님께서 제시하신 방안을 남조선의 진보적인 정당, 사회단체들은 물론 우익정당, 사회단체 대표들까지도 적극 지지하는 특별결의문을 채택하였고 신문, 잡지들도 그에 대해 대서특필하였다.

그러나 남북련석회의의 소집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미국은 민족주의정객들의 평양방문길을 차단하기 위해 갖은 위협과 공갈을 다하였다.

이런 속에 련석회의소집에 대해 큰 관심을 표시하던 인사들까지도 주저하고 동요하였다.

지난날 반공을 일삼은것으로 하여 평양에로 선뜻 발길을 돌리지 못하는 남녘인사들의 심정을 헤아리신 주석님께서는 과거불문의 원칙에서 극우익민족주의세력까지도 적극 포섭하기 위한 대담한 작전을 펼치시였다.

한편 남조선대표들에게 일군들을 파견하시여 련석회의방침을 구체적으로 해설해주고 동포애의 정이 담긴 초대장까지 안겨주도록 하시였으며 그들의 마음속고충과 외람된 요청까지 탓하지 않으시고 다 들어주시였다.

주석님께서는 후날 그때를 회상하시며 만일 우리가 감정에 사로잡혀 처신을 극단적으로 하며 민족주의자들을 적대시하는 방향으로 나갔더라면 통일전선은 지상공론으로만 남아있었을것이라고 교시하시였다.

그러시면서 통일전선을 위한 우리의 변함없는 노력과 성의앞에서는 김구와 같은 완고한 반공인사도 감동되지 않을수 없었다, 김구와 같은 민족주의자가 하루아침에 우리에게로 돌아섰다고 보아서는 안된다, 그가 상해림정을 인정하지 않은 미군정의 처사가 고깝고 또 단순히 리승만과 의가 맞지 않아서 반공대신 련공을 한것도 아니다, 항일의 나날로부터 뜨겁게 간직해오던 애국의 열정이 우리와 김구를 하나로 융합시킨것이다라고 감회깊이 회고하시였다.

남북련석회의성과를 지지하는 평양시민대회(1948년 4월 25일)

1948년 4월 19일 풍치수려한 평양의 모란봉극장에서는 북과 남의 56개 정당, 사회단체 대표들의 참가하에 력사적인 남북련석회의가 열리였다.

남북련석회의는 남북조선 정당, 사회단체 대표들이 해방후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여 구국대책을 론의한 민족대회합이였으며 하루속히 통일적민주주의정부를 수립하려는 전체 조선인민의 한결같은 념원을 반영한 력사적인 회의였다.

남북련석회의에서 주요하게 토의된 문제의 하나는 민주주의통일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대책과 관련한 문제였다.

김일성주석님께서는 남북조선 정당, 사회단체대표자련석회의 예비회의에서 하신 연설에서 우리는 일반적, 직접적, 평등적원칙에서 비밀투표의 방법으로 전국적인 선거를 실시하여 전조선최고립법기관을 구성하고 나라의 륭성발전과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복무하는 진정한 민주주의통일정부를 수립할것을 주장한다고 밝히시였다.

주석님께서는 회의 두번째 날에 하신 력사적인 보고 《북조선정치정세》에서 조선의 분렬을 꾀하는 미제의 책동을 전면적으로 폭로하시고 망국적인 《단독선거》를 저지파탄시키고 민주주의적원칙에서 통일적중앙정부를 세워 조국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거족적인 투쟁에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우려하는 모든 사람들이 한결같이 떨쳐나설데 대하여 호소하시였다.

회의에서는 주석님의 보고정신을 반영하여 남조선에서의 《단독선거》를 반대배격하며 통일정부를 수립할데 대한 결의를 담은 《조선정치정세에 관한 결정서》와 격문 《전조선동포에게 격함》이 채택되였다.

남북련석회의와 더불어 전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미제와 그 주구들의 범죄적인 《단선단정》조작책동을 짓부시고 전조선적인 통일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투쟁이 세차게 벌어지게 되였다.

전체 인민의 의사와 요구

1948년 6월말 김일성주석님께서는 외세에 의한 나라의 분렬을 막고 진정한 인민의 국가를 건설하실 구상을 안으시고 남북조선 정당, 사회단체들의 지도자협의회를 소집하시였다.

그이께서는 협의회에서 우리는 지체없이 조선인민의 의사를 대표하는 전조선최고립법기관을 세우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을 실시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남북조선 정당, 사회단체 대표들로써 전조선정부를 세워야 한다는데 대하여 밝혀주시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승인과 그 실시에 관한 결정을 발표한 신문자료

김일성주석님께서는 조선인민의 의사와 리익을 반영한 참다운 인민의 헌법을 제정하도록 하시였다.

이미 작성된 림시헌법초안을 전인민적토의에 붙이도록 하신 주석님께서는 그 과정을 통하여 인민들이 이제는 나라의 기본법까지도 제손으로 만드는 새 조선의 참된 주인이라는 높은 자각과 크나큰 긍지를 안고 통일적중앙정부수립을 위한 투쟁에 적극 떨쳐나서도록 하시였다.

1948년 2월 중순부터 두달 남짓한 기간에 진행된 림시헌법초안토의사업에는 북조선의 각 정당, 사회단체들과 국가기관들, 공장, 기업소, 농촌, 어촌을 비롯한 모든 부문, 모든 단위의 각계각층 인민들은 물론 남조선의 광범한 인민들도 참가하였으며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였다.

1948년 7월 북조선인민회의 제5차회의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실시에 대한 결정서가 만장일치로 채택되였다.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장면과 선거장의 분위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장면과 선거장의 분위기

김일성주석님께서는 남북총선거를 성과적으로 보장하도록 이끄시였다.

주석님께서는 북조선에서는 합법적으로, 민주주의적으로 선거를 실시하여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직접 선거하도록 하시였고 남조선에서는 조성된 정세에 맞게 선거자들의 서명을 받는 방법으로 인민대표자들을 선출한 다음 그들이 북반부에 들어와 남조선인민대표자대회를 열고 대의원을 선거하도록 하시였다.

1948년 8월 25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를 위한 남북조선총선거가 승리적으로 진행되였다.

북조선에서는 총 선거자의 99.97%가 선거에 참가하여 210여명의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선출하였다.

남조선에서는 전체 선거자의 77.52%가 선거에 참가하여 1 080명의 인민대표를 선거하였다.

선출된 인민대표들은 해주에서 남조선인민대표자대회를 열고 360명의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선거하였다.

김일성주석님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립후보자로 추대하고 100% 찬성투표한데 대한 내용이 실린 신문자료

1948년 9월 평양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제1차회의가 열리였다.

최고인민회의는 전체 조선인민의 한결같은 의사와 념원을 반영하여 김일성주석님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 수상, 국가수반으로 높이 추대하였다.

9월 9일 주석님께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를 조직하시고 공화국창건을 온 세상에 선포하시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창건은 세계지도에서 빛을 잃었던 조선이 존엄있는 자주독립국가로, 주체의 나라로 솟아오르게 한 획기적인 사변이였으며 조선인민이 국가와 사회의 참다운 주인으로, 그 누구도 감히 건드릴수 없는 자주적인민으로 되였음을 알리는 력사적선언이였다.

【평양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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