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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무용 《돈돌라리》, 《3인무》가 다시 태여나게 된 사연

2023년 08월 21일 07:34 공화국

민족의 고유한 춤가락에 깃든 령도의 손길

조선에서 계승발전되는 민족의 고유한 춤가락에는 김정일장군님의 령도의 손길이 깃들어있는것들이 많다.

민속무용 《돈돌라리》

1985년 3월 1일 장군님께서는 무대 및 영화예술부문 일군들앞에서 《우리 인민의 민족적감정과 시대적미감에 맞는 훌륭한 음악무용과 영화를 더 많이 창작하자》라는 력사적인 담화를 발표하시였다.

민속무용을 발굴하고 완성하는데서 나서는 원칙적인 문제와 무용작품창작에서 선차적으로 제기되는 문제 등을 구체적으로 밝혀주신 장군님께서는 민속무용에서 지방적색채를 살릴데 대하여 교시하시면서 민속무용 《돈돌라리》에서 음악의 성격부터 살려야 한다고, 그렇게 되면 춤가락도 힘있게 될수 있다는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조선민족은 예로부터 춤추기를 매우 즐겨하였으며 그 과정에 농악무, 부채춤을 비롯하여 고상하고 아름다우며 우아한 민속무용들을 수많이 창조하여왔다. 그중에는 민속무용 《돈돌라리》도 있다.

민속무용 《돈돌라리》

《돈돌라리》춤은 함경도의 동해바다가 지역들에서 오래전부터 전해오는 이 지방특유의 민속무용이다. 그러던것이 일제식민지통치시기 착취와 압박이 없는 자주적인 새 생활을 바라는 인민들의 지향과 념원을 반영하여 《동틀 날이 오리라》라는 말이 줄여진 《동틀날》로 그 의미가 달라지게 되면서 대중적인 춤으로 추어졌다.

당시 함경도인민들은 김일성주석님께서 령도하시는 항일무장투쟁에 고무되여 일제침략자들을 몰아내고 행복하게 살날이 동터올것이라는 확신을 담아 이 춤을 추며 유격대원호에 떨쳐나섰다.

민속무용은 마땅히 어느 지방의 풍속을 보여주는것인지 똑똑히 알려야 한다고 가르쳐주신 장군님께서는 민속무용작품들이 발굴되여 무대에 오를 때마다 하나하나 보아주시면서 잘된 점과 잘못된 점을 지적해주시고 훌륭히 완성시켜주시였다.

민속무용 《돈돌라리》에 대해서도 현실의 요구에 맞게 형상하여 잘 살린다면 인민들이 좋아할것이라고 일깨워주시며 무용창작사업을 이끌어주시였다.

장군님께서 원래의 《돈돌라리》의 음악과 춤가락을 살리면서 그것을 인민의 생활감정에 맞게 발전시키도록 세심히 이끌어주시였다. 하여 민속무용 《돈돌라리》는 어깨춤이 절로 나고 흥취나는 특색있는 춤으로 완성되여 인민들의 문화정서생활에 적극 이바지할수 있었다.

민속무용 《3인무》

오늘도 널리 전해지는 무용들가운데는 민속무용 《3인무》도 있다.

지난날 봉건사회에서 사당들이 추던 천박한 춤이라고 하여 무대에서 영영 사라질번 하였던 《사당춤》이 오늘처럼 민속무용 《3인무》로 다시 태여나기까지는 민속무용발전에 깊은 관심을 돌려오신  김정일장군님의 세심한 손길을 떠나서 생각할수 없다.

1970년 3월 5일, 장군님께서는 평양대극장에서 진행하는 3. 8국제부녀절 60돐기념 음악무용종합공연 시연회를 보아주시였다. 공연이 끝난 후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공연종목에 《사당춤》은 왜 빠졌는가고 물으시였다.

한 일군이 그 춤은 절간에서 나온 천박한 춤이기때문에 넣지 않았다고 그 사연을 말씀드리였다.

그 일군의 말을 들으신 장군님께서는 웃으시며 봉건시기 우리 나라에는 여기저기 다니면서 집뜨락을 무대로 삼고 노래와 춤으로 살아가던 사람들이 있었다, 당시 사람들은 그들을 가리켜 《사당》이라고 불렀다, 그들의 춤은 일정한 형식을 갖춘 작품이 아니라 그때그때의 놀이에 어울리는 즉흥적이면서도 재치있는 동작으로 된것이였다, 이러한 《사당춤》에는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운 춤가락과 민족적인 흥취가 적지 않게 반영되여있다고 하시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당》이란 말을 절간을 의미하는것으로 리해하고있었던 일군들은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그들은 너무도 면구스러워 머리를 들수 없었다.

장군님께서는 자책감에 몸둘바를 몰라하는 일군들과 창작가들의 마음을 눅잦혀주시며 《사당춤》이라고 부르는것이 쉽게 리해되지 않는다면 《3인무》라고 하여도 된다고, 《사당춤》 자체가 그 어떤 사상주제적내용을 담고있는것도 아니고 한갖 놀이적인 춤이므로 《3인무》라고 부르는것이 더 좋다고 하시며 이번 공연종목에 무용 《3인무》를 넣고 이미 준비한 배우들을 출연시켜야 하겠다고 하시였다.

민속무용 《3인무》

이렇게 되여 세월의 락엽속에 묻혀 사라질번 하였던 옛 《사당춤》은 《3인무》로 다시 태여나게 되였다.

《3인무》에는 두명의 남자무용수와 한명의 녀자무용수가 출연한다. 세개의 부분으로 구성되여있는데 첫부분에서는 빠른 음악에 맞추어 세명의 무용수들이 부채로 얼굴을 가리우고 빠른 걸음으로 달려나와 무대중심에서 인사를 한다. 둘째부분에서는 느리면서도 흥겨운 장단에 맞추어 흥취나게 춤을 추는데 이 부분에서 부채를 접으면서 무릎을 치는 동작, 머리우로 부채를 슬쩍 들어올리는 동작, 부채로 손바닥을 치고 다시 펴드는 동작 등이 매우 특징적이다. 셋째부분에서는 다시 빠른 음악에 맞추어 세명의 무용수들이 서로 앉고 서고 감싸돌면서 대화적수법으로 여러가지 재치있는 기교를 보여준다.

장군님의 령도의 손길아래 민속무용 《3인무》는 활달하고 약동적이며 락천적인 정서로 하여 조선인민의 열렬한 사랑을 받고있을뿐아니라 수많은 대외공연과 여러차례의 국제예술축전무대를 통하여 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지게 되였다.

(조선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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