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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70돐〉어느 군사가도 내놓을수 없었던 기발한 전법

2023년 07월 27일 06:08 조국・정세

제국주의련합세력을 격파한 주체적인 군사전략

조선전쟁에서 미국이 수행한 작전계획은 미국편에 선 서방나라들의 참모장들, 군사전문가들인 수십명의 장군들이 여러 차례 모여서 토의한 끝에 만든것이였다.

김일성주석님께서는 그것을 단독으로 격파하시였다.

적들의 불의의 침공에 대한 즉시적이고 전면적인 반공격, 전전선에서의 련속타격과 적집단에 대한 포위소멸전, 정규부대들에 의한 적후제2전선의 형성, 산악전과 야간전, 적극적인 진지방어전과 습격전, 저격수조운동, 비행기사냥군조운동, 땅크사냥군조운동 등 그 하나하나의 전략과 전법들은 동서고금의 그 어느 군사가도 내놓을수 없었던 명철하고 기발하며 탁월한것이였다.

즉시적인 반공격전략

김일성주석님의 호소를 받들고 용감히 싸우는 인민군대

김일성주석님께서는 전쟁발발초기에 적들의 불의적인 무력침공에 즉시적이며 결정적인 반공격으로 넘어갈데 대한 독창적인 전략을 제시하시여 전쟁승리의 길을 열어놓으시였다.

주석님께서는 전쟁초기에 전선의 군사정세와 적아간의 력량관계, 앞으로의 정세발전추이 등을 비범한 예지로 분석판단하신데 기초하여 적들을 전반적으로 급속히 격멸소탕할수 있는 요진통으로서의 중심고리를 38도선계선과 서울일대에 배치된 적기본집단을 일격에 소탕하는것으로 정하시였다.

이것은 기성의 군사행동규범이나 종래의 경험과는 전혀 다르게 적의 심장부에 력량을 집중하여 첫탕에 된매를 안김으로써 단 한차례의 공격작전으로 적의 기본집단을 전면적붕괴에로 몰아넣을수 있게 하는 대담하고 통이 큰 군사전략이였다.

주석님의 령활한 전략에 따라 적들의 불의의 침공을 즉시에 좌절시키고 반공격으로 넘어간 인민군대는 전쟁개시 3일만에 적들의 아성인 서울상공에 공화국기발을 휘날리였으며 한달 남짓한 기간에 공화국남반부지역의 90%이상과 인구의 92%이상을 해방하는 세계전쟁사상 보기 드문 혁혁한 전과를 거둘수 있었다.

정규전과 유격전의 배합

김일성주석님께서 창조하신 중요한 전법의 하나는 정규전과 유격전, 대부대전과 소부대전을 옳게 배합하는것이다.

정규전과 유격전에 관한 군사리론은 이미 오래전에 세상에 나왔다.

유격전을 적에게 강점된 부분적지역에서 벌어지는 보조적인 투쟁형식으로 본 그 리론은 지난 시기 전쟁들에서 수많이 활용되였다.

하지만 누구도 유격전을 정규전과 같은 군사전략사상의 지위에서까지 생각해보지 못하였으며 더구나 정규전과 유격전을 옳게 배합하는데 대하여서는 제기조차 하지 못하였다.

김일성주석님에 의하여 유격전이야말로 현대전쟁이 요구하는 독자적인 무장투쟁형식의 하나이라는 새로운 군사전략사상이 밝혀지고 정규전과 유격전의 배합의 실천적모범으로 놀라운 군사기적이 창조되였다.

그 대표적실례가 대전해방전투이다.

전쟁이 개시된지 며칠만에 서울을 함락당하고 《퇴각의 썰물》에 《철화의 불퇴진지》로 구축한 금강방어선까지 무너지자 미제는 막대한 유생력량과 무기, 전투기술기재들을 대전지역에 들이밀었다.

1950년 7월 16일 림진강철다리를 넘으시여 서울에 도착하신 주석님께서는 이곳에 자리잡고있던 전선사령부에서 대전포위와 관련한 작전회의를 소집하시였다.

주석님께서는 포위진을 빨리 치는것과 동시에 포위한 적들을 짧은 시간안에 소멸하도록 하시였다.

주석님께서 펼쳐주신 작전방안에 따라 인민군대가 하루밤사이에 100여리 강행군으로 적들의 퇴로를 차단하여 대전포위환이 성공적으로 형성되고 대전시가에 대한 공격에 앞서 2대의 땅크와 2개의 보병구분대 및 정찰구분대가 먼저 기동하였다.

전쟁력사에 없는 기계화수단을 리용한 유격전과 소부대전의 선제타격, 기습전에 의해 적의 군용렬차와 연유창고, 집결된 자동차와 곡사포진지, 적통치기관과 유생력량은 소멸되였으며 적들은 혼란에 빠졌다.

7월 20일 대전시가에 대한 총공격명령이 내리자 인민군련합부대들은 일제히 공격으로 넘어가 순식간에 적들을 압축소멸하였다.

정규전과 유격전, 대부대전과 소부대전의 리상적인 배합으로 현대포위전의 빛나는 모범을 창조한 대전해방전투는 미국의 수치스러운 몰골을 세계앞에 드러내보였다.

독창적인 진지방어전

종래는 방어전이라고 하면 적이 력량상우세를 차지하고 아군이 군사정치적으로 불리한 정황에 놓였을 때 진행하는 피동적이고 소극적인 전투형태로 인정되여왔다.

하지만 김일성주석님께서는 주체적립장으로부터 출발하시여 전투에서 주동이냐 피동이냐 하는것은 공격이냐 방어냐 하는 싸움방식에 있는것이 아니라 그것을 적용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상정신상태를 지니고 전법을 어떻게 쓰는가 하는데 있으며 비록 군사기술적으로 미약하고 력량이 적어도 전술을 적극적으로 령활하게 잘 쓰기만 하면 방어전에서도 얼마든지 주동을 틀어쥘수 있다고 보시였다.

이런 관점에서 창조하신 방어전법이 적극적인 진지방어전이였다.

조국해방전쟁이 제4계단에 들어서던 1951년 6월에 이르러 38도선을 경계로 전선은 기본적으로 고착되였다.

적들은 한개의 작은 고지를 공격하는데도 수십대의 전투비행기들로 며칠씩 폭격하고 수십문의 포로 고지와 그 주변을 불바다로 만든 다음에야 보병들을 전투에 진입시켰다.

현실은 그 어떤 타격수단에도 끄떡없이 견딜수 있고 전투인원과 무기, 전투기술기재들을 보호할수 있는 우리 식의 진지방어전법을 요구하였다.

주석님께서는 우리 나라 지형조건의 특성과 적아간의 력량관계, 기술적우세에 의존하고있는 적들의 전술, 현대전의 요구를 깊이 통찰하시고 갱도를 기본으로 하는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그에 의거하여 주동적으로 싸우는 새로운 전법을 창조하시였다.

갱도전법은 갱도화된 영구축성물과 그와 련결된 참호, 교통호, 화점 등 야전진지와 배합하여 요새화된 진지를 꾸리고 그에 의거하여 적들의 현대적무기에 의한 모든 타격으로부터 유생력량과 무기, 전투기술기재를 믿음직하게 보호하며 차지한 방어선을 지켜낼수 있게 하는 위력한 전법이였다.

1951년 여름 어느날 최고사령부의 한 공병일군을 부르신 주석님께서는 갱도전의 우월성에 대하여 밝혀주시면서 갱도화공사 첫 단계의 대상을 지적하시고 거기서 쌓은 경험에 기초하여 점차 모든 진지들을 갱도화할데 대하여 가르쳐주시였다.

세상에 널리 알려진 1211고지전투의 승리도 다름아닌 갱도전법이 가져다준 빛나는 결실이기도 하였다.

적들은 1952년 한해동안에만도 1211고지를 중심으로 한 지역에 1㎢당 평균 4,160개의 폭탄과 52만 7,260발의 포탄을 퍼부었다.

하지만 인민군대는 인원과 무기, 전투기술기재들을 믿음직하게 보호하면서 갱도방어진지에 의탁한 적극적인 방어전투로 적들에게 심대한 타격을 주었으며 적들로 하여금 동부전선의 어느 구역에서나 한걸음도 침입하지 못하게 하였다.

비행기사냥군조운동

적비행기를 사냥하고있는 근위 제6보병사단 경기관총수와 보총수

미제침략자들은 공중우세를 자랑하며 야만적인 《초토화작전》과 《교살작전》을 미친듯이 벌리였다.

김일성주석님께서는 주체적립장에서 비행기사냥군조운동을 창조하시였다.

적비행기와의 투쟁에 고사포뿐 아니라 중기관총과 보병총을 비롯한 각종 저격무기까지 다 동원할데 대한 방안은 오직 주석님께서만이 밝히실수 있는 우리 식의 전법이였다.

그것은 항일무장투쟁시기 처창즈유격근거지와 남패자부근에서 보병총으로 일제침략군 비행기를 쏴떨군 귀중한 경험에 기초하여 누구나 다룰수 있는 저격무기로 적비행기와 싸울수 있게 하는 위력한 전법이였다.

사리원의 경암산에 화력진지를 설치하고 저격무기로 적비행기를 쏴떨구는 사냥전법을 시험해보도록 하신 주석님의 가르치심에 따라 인민군전투원들은 적비행기사냥을 벌리였다. 결과 이틀만에 비행기 1대를 격추하는데 성공하였다.

실천을 통하여 비행기사냥전의 경험을 쌓고 우월성을 확증하신데 기초하여 1950년 12월 29일 주석님께서는 최고사령관명령으로 전반적부대들에서 비행기사냥군조를 광범히 조직하며 적비행기와의 투쟁을 대중적으로 벌리도록 하시였다.

비행기사냥군조의 전투성과를 실은 당시의 신문자료

공중우세를 떠들면서 오만하게 날뛰던 미제침략군비행기들이 저공비행으로부터 고공비행으로, 주간비행으로부터 야간비행으로, 단독비행으로부터 편대비행으로 전술을 바꾼 사실은 인민군대의 비행기사냥군조와 비행대의 눈부신 활동에 대하여 웅변으로 증명하고있다.

두해동안에 근 3,000대의 적기를 격추시킨것은 세계전쟁력사에서 그 류례를 찾아볼수 없는 하나의 기적이였다.

직사포를 고지에로

김일성주석님께서는 우리 나라의 지형적특성에 맞는 독창적인 포병전법들을 창조하시고 그것을 군사작전수행에 널리 리용하도록 이끄시였다.

전선에서 치렬한 격전이 벌어지던 어느날 주석님께서는 한 지휘관을 만나시여 포를 고지에 올려놓고 적을 족쳐야 한다고, 그러므로 시급히 포를 전연에 내가도록 하라고 밝혀주시였다.

현대전에서 포화력의 리용은 매우 중요시되여왔으나 지난 기간에는 일반적으로 개활지대에서의 포병의 집중리용에 대하여 강조되였을뿐이였다. 산악지대에서의 포병행동을 조직할 경우에도 그것을 박격포를 비롯한 곡사포에 국한시키고있었다.

언제나 주체적립장에서 우리 나라의 구체적실정에 맞는 전투방법을 가르쳐주고 이끌어주시는 주석님께서는 곡사포를 깊은 종심으로부터 끌어내여 전연에 바싹 접근시켜 기동성있게 포진지를 옮기면서 적을 타격하며 우리 나라의 지형상특성에 맞게 직사포를 고지에 올려놓아 포화력의 위력을 남김없이 나타낼수 있게 하시였다.

하여 전선에서는 대대적으로 증강된 여러가지 곡사포와 직사포로 화력밀도가 비할바없이 높아졌으며 적들에게 집중적인 포화력으로 섬멸적인 강타를 먹일수 있게 되였다.

【평양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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