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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미리》에 깃든 이야기/한창도

2023년 07월 25일 11:33 기고

올해도 심한 무더위와 함께 여름방학을 맞이하였다.

나는 방학이 시작될 때면 교육학부 교육학과 학생들을 인솔하고 야영실습을 나간다. 올해는 신형코로나비루스의 감염방지규제가 완화되여 5년만에 배를 타고 이즈오오시마(伊豆大島)로 갔다.

그곳에서 3일간 학생들과 함께 바다에서 놀기도 했는데 어릴 때부터 그런 놀이보다도 생물채집이나 낚시질을 좋아하던 나는 바다속 깊은 곳이나 바위틈을 살펴보면서 《오늘의 식사》를 마련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그러던 때 갑자기 수십마리의 공미리(さより)의 무리가 앞을 지나갔다. 나는 그 순간 조국에서 경험한 공미리의 추억이 주마등처럼 떠올라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것은 2017년, 연구를 위해 조국을 방문했을 때 일이다.

나는 그 당시 마식령산맥에서 꼭 곤충채집을 하고싶다는 소원을 갖게 되였는데 그를 해외동포사업국 지도원한테 제기하였다. 마식령에는 산세가 하도 심하여 말도 쉬여간다는 유래가 있다. 그 드높은 봉우리까지 울창하게 숲을 이루는 모습을 보고는 언젠가 저곳에서 곤충채집을 하고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것이다. 지도원은 나의 소망에 대해 심중히 검토하고 《조국으로 오실 때마다 선생님이 하나라도 많은 새 경험을 해서 돌아가셔야 하는데 우리 함께 잘해봅시다!》 하여 마식령산맥의 일정한 곳에서 채집을 하면서 원산의 송도원려관에 숙박하고 평양으로 돌아오는 일정을 잡아주었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곤충을 순조롭게 채집하지 못하고 시간만이 무정하게 지나갔다. 그로 인하여 당초의 예상과는 달리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한채 저녁에 려관으로 들어오게 되였던것이다. 조국을 찾아온 나에게는 솔직히 안타까움을 금할수 없었다. 게다가 엎친데 덮친격으로 다음날에는 큰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를 접하게 되였다. 어쩔줄 몰라 대책을 세우느라 지도원을 찾았는데 호실에도 려관내에도 안계시는것이였다.

(무슨 잘못된 일이 있었는지…)

19시가 넘도록 식당에도 오시지 않으니 나의 불안은 점점 커지기만 했다. 그러나 내가 혼자 식사를 끝내고 방으로 돌아와보니 온몸에서 땀을 폭포처럼 흘리며 지도원이 느닷없이 나타나고는 이런 말을 하시는것이였다.

《자! 선생님! 제방에 어서 오십시오! 이건 빨리 먹어야 맛이 있습니다! 》

사연도 모르는 나는 지도원의 뒤를 따라 방으로 들어갔는데 거기에는 물고기회와 함께 초장과 술병이 놓여있었다.

《선생님, 원산에 오면 꼭 공미리를 먹어야만 힘도 나고 연구사업도 더 잘됩니다! 자, 많이 드십시오!》하고는 나의 접시에 은색으로 반짝반짝 빛이 나는 길죽하게 토막낸 회를 푸짐히 담아주시는것이였다.

그때 나는 공미리가 도대체 어떤 물고기인지 몰랐는데 지도원이 하라는대로 초장에 찍어 그 회를먹고서야 그것이 일본에서는 《사요리》라고 불리우는 물고기임을 알았다. 부드러운 식감에다 비린내가 전혀 나지 않고 초장과 잘 어울리는 신선한 회의 맛에 크게 감탄하면서도 나는 (일본에서는 선도를 유지하기가 매우 어려운것으로 알려진 공미리의 회를 아무런 조리도 하지 않고 이런 식으로 먹을 기회가 흔치 않는데 도대체 어떻게 지도원이 마련하셨을가? ) 하는 의문이 생겼다.

그런 나의 내심을 헤아렸는지 자리를 같이한 운전수가 자초지종을 이야기해주어서야 그 폭포처럼땀을 흘리는 까닭을 비로소 알게 되였다.

《선생님의 기죽은 모습을 보고 지도원동지가 어떻게 하든 힘을 북돋아주자고 원산항에서 낚시질을 하는 인민들에게 부탁을 하여 낚은 공미리를 얻어왔단말이야. 그래서 늦은거지.》

보충해서 지도원이 말하기에는 공미리가 잘 낚기는 곳이 려관에서 4키로쯤 떨어진 곳인데 려관에 돌아오자마자 짐을 곧장 그곳까지 달려가 나를 위해 얻어왔다는것이였다.

《선생님이 조국으로 오시면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할수 있도록 하자는게 우리의 목표인데 그 목표는 오늘 달성된것이 아니겠습니까?》

지도원은 그렇게 말하고는 자신은 현지에서 한번 맛보았으니 이젠 필요없다고 하면서 계속 나한테 더 먹으라고 권하였다. 또 우연히 함께 숙박한 후배들까지도 불러와 함께 먹자고 하면서 자신은 그 마당에서는 끝끝내 입에 대지 않았다. 늘쌍 남을 먼저 생각하는 지도원덕분에 그 마당이 즐겁고 의의깊은 자리가 되였다. 무거워졌던 내 마음은 어느새 사라졌다.

이날 나는 연구성과에 못지 않은 기쁨과 감명을 맛보았다고 당당히 말할수 있다.

조국의 아름다운 동해바다에서 자란 공미리의 맛에 감탄한것도 그렇지만 그보다 지도원의 어진 마음이 너무나도 고마웠다. 무엇보다 나의 마음을 뜨겁게 한것은 이국땅에서 자란 나를 아직은 미숙한데도 동지애와 믿음으로 열성적으로 도와주신 모습이고 그 정성이였다.

그때 바다가에서 나를 알아차린 공미리의 무리가 화살같이 헤염쳐 재빨리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러나 나의 마음은 더 빨리 그리운 조국을 향해 달려나가는것이였다.

어서 조국으로 가고싶구나!

어서 조국의 동지들과 만나고싶구나!

마식령산맥에서 곤충채집을 하는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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